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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계 캐나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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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계 캐나다인은 오스트레일리아계 혈통을 가진 캐나다 시민 또는 거주자이다. 오스트레일리아계 캐나다인은 오스트레일리아 이민자, 오스트레일리아 이민자의 후손, 캐나다에 거주하는 오스트레일리아 국외 거주자 세 그룹으로 나뉜다. 2021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완전 또는 부분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 혈통을 주장한 캐나다인은 46,765명이었다.[1]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오스트레일리아계 캐나다인은 캐나다 서부 주에 거주했지만,[2] 2016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이민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도시가 밴쿠버와 토론토였다.[1] 오스트레일리아계 캐나다인의 수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적지만,[1] 캐나다에서 취업 비자로 일하는 오스트레일리아인의 수는 매우 많다.[3][4][5]
두 나라는 가장 선진국에 속하며 역사적 연결, 언어, 유사한 관습을 공유한다. 또한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는 모두 영연방 왕국으로서 찰스 3세를 국가원수로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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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는 모두 과거 영국 식민지였으며, 이는 양국 간 초기 이동 및 이주의 기반이 되었다.[2] 그러나 19세기에는 주로 캐나다에서 오스트레일리아로 죄수들이 유배되면서 이동이 이루어졌다.[6] 역사가들은 오스트레일리아계 캐나다인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를 두 나라 모두 이민에 의존하고 영국 출신 이민자들을 놓고 경쟁했기 때문으로 본다.[7][2]
1867년 캐나다 연방 결성 이후, 그리고 다시 1901년 오스트레일리아 연방 결성 이후, 양국 간 정부 관계가 강화되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캐나다로의 이민이 증가했다.[7] 1941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태생 캐나다인이 2,800명이었는데, 대부분 캐나다 서부 주에 거주했다.[2]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많은 오스트레일리아 전문직 종사자들이 경제적 기회를 찾아 캐나다로 이주하면서 오스트레일리아계 캐나다인의 수가 점진적으로 증가했다.[2][7] 1960년대에는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의 근무 조건이 비슷했지만, 캐나다의 임금이 더 높아서 당시 오스트레일리아 이민자들에게 매력적이었다.[7] 따라서 1960년대에 오스트레일리아계 캐나다인의 수가 증가하여 1967년에는 일이나 교육을 위해 캐나다에 입국한 오스트레일리아인이 5천 명으로 정점을 찍었다.[7] 1960년대부터 2000년까지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제가 침체되면 캐나다로 이주하는 오스트레일리아인의 수가 증가했고, 경제가 개선되면 감소했다.[2] 1976년 캐나다 이민법 시행 이후, 캐나다인이 해당 역할에 자격이 있을 경우 외국인이 일자리를 찾기 어렵게 되면서 캐나다로 이주하는 오스트레일리아인의 수가 감소했다.[8]
21세기에는 캐나다의 워킹 홀리데이 및 학생 비자가 쉬워지면서 강력한 오스트레일리아 국외 거주자 문화가 형성되었고, 2006년에서 2016년 사이에 캐나다에 거주하는 오스트레일리아인의 수가 두 배로 늘었다.[1] 2015년 이후, 오스트레일리아와 캐나다, 그리고 영국과 뉴질랜드 간의 거주 이전의 자유 개방에 대한 지지와 논의가 있었으며, 이는 오스트레일리아인이 비자 신청 없이 캐나다에서 자유롭게 살고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을 허용할 것이다.[9] 2016년 오스트레일리아계 캐나다인 중 23.5%는 2011년에서 2016년 사이에 도착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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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통계
요약
관점
2016년 캐나다 인구조사에서 42,315명이 오스트레일리아를 자신의 민족 출신으로 밝혔으며, 이 중 14,370명은 1세대 캐나다인, 16,410명은 2세대 캐나다인, 11,530명은 3세대 캐나다인이었다.[1] 캐나다로 이주한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도시는 밴쿠버와 토론토로, 각각 4,520명과 3,775명의 이민자 거주자가 있어 전체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1]
이민 패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이주한 사람들
오스트레일리아계 캐나다인 인구조사 데이터의 신뢰성
존 파월(John Powell, 2009)은 오스트레일리아계 캐나다인의 수가 19세기와 20세기 인구조사 데이터에 나타난 것보다 실제로 더 많았다고 주장했다.[7] '민족 출신'의 측정은 해석 방식 때문에 캐나다 내 오스트레일리아인의 수를 과소평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부 사람들에게 '민족 출신'은 마지막 거주지나 부분적 혈통보다는 '가장 초기 조상의 국가'를 의미할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이민자들의 나라이기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캐나다로 온 많은 이민자들이 이전에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을 왔거나 1세대 오스트레일리아인일 수 있다고 주장된다.[7]
오스트레일리아계 캐나다인에 대한 인구조사 데이터의 과소평가에 기여한다고 주장되는 또 다른 요인은 두 나라의 문화적 유사성이다. 문화가 유사하고 민족적 차이가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개인들이 자신의 오스트레일리아 유산과 덜 동일시하고 따라서 설문 조사에서 이를 '민족 출신'으로 보고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된다.[7][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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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오스트레일리아 국외 거주자 커뮤니티
요약
관점
캐나다의 오스트레일리아 국외 거주자(expats)는 캐나다에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거주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시민을 의미한다. 이 그룹은 영주권자가 아닌 워킹 홀리데이 비자나 학생 비자로 캐나다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인구조사 데이터에 완전히 반영되지 않는다.
캐나다 전역에는 스포츠 행사 및 사교 활동을 통해 오스트레일리아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도록 하는 여러 국외 거주자 그룹이 있다.[12] 오스트레일리아 풋볼 리그(AFL) 경기는 6개 캐나다 주에서 열리지만, 오타와와 온타리오에서 가장 인기가 많다.[13]
워킹 홀리데이
국제 경험 캐나다(IEC) 취업 허가는 젊은이들이 캐나다에서 최대 24개월 동안 일하고 여행할 수 있도록 한다. 상호 청소년 이동 협정(Reciprocal Youth Mobility Agreement)에 따라 18세에서 35세 사이의 오스트레일리아인은 IEC 비자를 신청할 자격이 있다.[3] 이전에는 상한 연령이 30세였지만, 2019년 IEC 시즌에 35세로 상향 조정되었다.[5][4]
오스트레일리아인에게는 세 가지 IEC 범주가 있다.[3][4]
- 워킹 홀리데이: 비자 소지자가 고용주와 장소를 변경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오스트레일리아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IEC 허가이다.
- 영 프로페셔널: 이 비자 소지자는 신청 전에 직업을 얻어야 하며, 이는 숙련된 직업으로 간주되어야 하며 후보자의 확립된 경력 경로, 전문 분야 또는 학업 분야에 속해야 한다.
- 국제 협동 과정 (인턴십): 오스트레일리아 학생들이 캐나다에서 직장 체험 및 고등 교육 학점 취득을 위해 직장 배치를 완료할 수 있도록 한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신청자들이 할당량에 따라 선정되지 않는 유일한 IEC 국가이며, 이는 무제한의 IEC 취업 허가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4] 오스트레일리아인은 캐나다 IEC 워킹 홀리데이 방문객 전체의 17.7%를 차지하며, 이는 시민권 국가 중 가장 높은 순위이다.[3] 워킹 홀리데이로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목적지는 휘슬러와 밴프이다.[3][4] 오스트레일리아 역시 워킹 홀리데이로 캐나다인들에게 매우 인기 있는 목적지이며, 이는 목적지 인기의 상호성을 강조한다.[5]
캐나다의 오스트레일리아인 학생들
캐나다 유학 허가는 오스트레일리아 학생들이 대학이나 칼리지 학위 기간 동안 임시 거주자가 될 수 있도록 한다.[14] 2018년에는 캐나다에 거주하는 유학 허가 소지 오스트레일리아인이 710명이었다.[15] 2000년 이후 캐나다 유학 허가 소지 오스트레일리아인 수가 가장 많았던 해는 2001년으로, 1210명의 학생이 있었다.[15] 그러나 유학 허가가 교환 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데 필요하지 않으므로, 캐나다에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인 학생의 총수는 훨씬 더 많다.[14] 오스트레일리아와 캐나다 문화의 유사성은 오스트레일리아 학생들이 캐나다에서 유학을 선택하는 강력한 이유이다.[16][17] 또한 캐나다 정책은 국제 교육 전략의 일환으로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이 학업을 마친 후에도 캐나다에 계속 거주할 기회를 제공한다.[14]
국제 유학 프로그램
모든 오스트레일리아 대학에 다니는 오스트레일리아 학생들은 유학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학생들은 유학 허가 없이도 오스트레일리아 학위의 일부로 캐나다 대학에서 최대 1년 동안 공부할 수 있다.[16] 2001년에는 해외에서 유학하는 오스트레일리아 학생 전체의 15.7%가 캐나다에 있었지만, 아시아 국가들의 유학 목적지로서의 인기가 증가하면서 이 수치는 감소했다.[16][18] 2012년에는 1,277명의 오스트레일리아 학생만이 캐나다로 교환 학생을 갔다.[18] 2015년에는 캐나다에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교환 학생의 3분의 2가 인문학 또는 비즈니스 관련 과정을 공부하고 있었다.[16]
현재 오스트레일리아와 캐나다 정부 모두에서 캐나다 내 오스트레일리아 학생들을 위한 자금 및 장학금 기회가 제공되고 있다. 여기에는 학비 지원 장학금, 펠로우십, 연구 보조금이 포함된다. 또한 양국 정부는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이 대학 학위의 일부로 캐나다에서 참여할 수 있는 기관 간 파트너십을 지원하고 있다.[19]

브리티시컬럼비아의 오스트레일리아인 존재
휘슬러 마을은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며, 강한 오스트레일리아 문화가 존재하여 '리틀 오스트레일리아'라고 불리기도 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알파인 스키 선수 조노 브라우어는 2010년 인터뷰에서 이 스키 마을을 "휘스트랄리아(Whistralia)"라고 불렀으며, 이는 이후 별명이 되었다.[20] 2010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이 휘슬러-블랙콤 스키 리조트 인력의 34%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20] 미트 파이, 팀 탐스, 베지마이트와 같은 오스트레일리아 과자들이 휘슬러의 슈퍼마켓에서 판매되며, 오스트레일리아의 날은 여러 펍에서 조직적인 파티 행사를 열며 기념된다.[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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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오스트레일리아계 캐나다인
음악가
스포츠
예술가
작가 및 학자
사업, 정치 및 공공 서비스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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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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