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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헨리 해리슨 대통령 취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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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헨리 해리슨 대통령 취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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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헨리 해리슨의 취임식은 제9대 미국 대통령으로서 1841년 3월 4일 목요일 워싱턴 D.C.미국 국회의사당 동쪽 주랑 현관에서 거행되었다. 이는 14번째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었으며, 윌리엄 헨리 해리슨의 대통령으로서의 유일한 4년 임기와 존 타일러부통령으로서의 임기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했다. 대통령 취임 선서연방 대법원장 로저 토니에 의해 해리슨에게 집행되었다.[1] 해리슨은 취임 31일 만에 사망했는데, 이는 재임 중 사망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자 미국 역사상 가장 짧은 대통령 임기이다. 이후 타일러가 대통령직을 계승하며, 1967년 수정 헌법 제25조를 통해 공식적으로 규정되기 전까지 7번 더 이어질 선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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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내용

해리슨의 취임식은 여러 가지 새로운 점이 있었다. 그는 대통령 당선인 중 최초로 기차를 타고 워싱턴 D.C.에 도착했으며, 처음으로 시민들로 구성된 공식 취임 위원회가 결성되어 당일 퍼레이드와 취임 무도회를 계획했다.[1]

취임 당시 68년 23일세였던 그는 1981년 로널드 레이건 이전까지 취임한 대통령 당선인 중 최고령이었다.

해리슨의 아내 애나는 남편이 취임식을 위해 오하이오주를 떠날 때 너무 아파 여행할 수 없었으며, 워싱턴에 동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해리슨은 그의 아들 이름을 딴 아들의 미망인이자 며느리인 제인 어윈 해리슨에게 5월에 애나가 도착하기 전까지 자신과 동행하고 여주인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퇴임하는 마틴 밴 뷰런 대통령은 해리슨의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았는데, 이는 당시까지 그렇게 한 세 번째 대통령이었다(존 애덤스존 퀸시 애덤스가 다른 대통령이었다).[2] 밴 뷰런과 해리슨은 개인적으로 좋은 관계였지만, 밴 뷰런은 선거 운동 기간 동안 휘그당의 공격에 여전히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아들 마틴 주니어 역시 병이 있었는데, 이것이 그가 식에 불참하게 된 이유일 수도 있다. 대신 그는 식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국회의사당에 머물며 법안에 서명했다.[3]

취임식 당일은 구름이 끼고 차가운 바람이 불었으며 정오 기온은 약 48 °F (9 °C)로 추정되었지만 당선인은 식에 오버코트, 모자, 장갑을 착용하지 않기로 했다.[1] 해리슨은 8,445단어로 지금까지 가장 긴 취임 연설을 했다.[1] 그는 연설 전체를 직접 작성했지만 곧 미국의 국무장관이 될 대니얼 웹스터가 편집했다. 웹스터는 나중에 텍스트를 줄이는 과정에서 "로마 총독 열일곱 명을 죽였다"고 말했다.[4] 그날 저녁 해리슨은 세 차례의 취임 무도회에 참석했는데, 그 중에는 카루시 살롱에서 열린 "티피카누" 무도회가 있었고, 1인당 10달러의 가격으로 1000명의 손님을 끌어모았다.[5]

3월 26일, 해리슨은 감기에 걸렸다. 당시의 지배적인 의학적 오해에 따르면, 그의 병은 취임식 날의 나쁜 날씨 때문에 직접적으로 발생했다고 여겨졌지만, 해리슨의 병은 행사 후 3주 이상 지나서야 발생했다.[6] 의사들이 그를 치료하려 노력했지만, 해리슨은 4월 4일 감기에서 발전한 폐렴으로 사망했다. 재임 중 사망한 최초의 대통령인 그의 대통령 임기는 미국 역사상 가장 짧았고, 여전히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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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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