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재건최고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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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재건최고회의(國家再建最高會議, 영어: Supreme Council for National Reconstruction)는 대한민국에서 5·16 군사정변 이후 정변 주도세력이 5월 18일에 '군사혁명위원회'에서 이름을 바꾸어 발족시킨 입법·행정·사법의 3권을 행사했던 통치기구이다.
간략 정보 대한민국 국가재건최고회의, 국가 ...
대한민국 국가재건최고회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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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家再建最高會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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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애국가 | |||
수도 | 서울 | |||
정치 | ||||
정치체제 | 단일 의회공화국 치하에 권위주의 군사독재 | |||
대통령 1961년~1962년 최고위원회 의장 1961년 1961년~1963년 | 윤보선 장도영 박정희 | |||
입법부 | 없음 (국회 해산) | |||
역사 | ||||
역사적 시대 | 냉전 | |||
• 5·16 군사정변
| 1961년 5월 16일 1963년 12월 17일 | |||
인문 | ||||
공용어 | 한국어 | |||
데모님 | 한국인 | |||
경제 | ||||
통화 | 환 (1962년까지) 원 (1962년부터) | |||
기타 | ||||
현재 국가 | 대한민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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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군사내각은 5월 20일에 발표됐으며, 1963년 12월 17일 대한민국 제3공화국이 수립되면서 해체되었다.
5·16 군사정변 당일, 박정희(朴正熙)는 '군사혁명위원회'(軍事革命委員會)를 설치하면서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장도영을 의장으로 하고, 자신은 부의장으로 취임했다. 정변 3일째인 5월 18일 군사혁명위원회를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칭했다. 6월 10일에는 방첩기관이자 감시기관인 국가정보원의 연원이 되는 중앙정보부가 발족했다. 박정희는 이후 '군 일부 반혁명사건'(알래스카 토벌 작전)을 일으켜 군부 내의 반대세력을 숙청한 뒤 7월 3일에는 장도영을 이에 연루시켜 의장직에서 추방했고, 추대형식을 빌어 스스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