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봉
일제강점기의 언론인 (1889–1960?)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김두봉(金枓奉, 1889년 2월 16일 ~ 1960년 4월 4일?[1])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한글학자(일제 시대 독립운동가, 교육자, 작가, 언론인, 정치인)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다. 경상도 기장현(現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출생이다.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백연(白淵)·백련(帛連)이며, 별명은 태항산의 호랑이였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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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정보 김두봉,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제1대 국가수반 ...
김두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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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제1대 국가수반 | |
임기 | 1948년 9월 9일~1957년 9월 20일(사임) |
부수반 | 홍명희 (1948 ~ 1957) 김원봉 (1957 ~ 1958) |
총리 | 김일성 (1948 ~ 1972) |
후임: 최용건(제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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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정보 | |
출생일 | 1889년 2월 16일(1889-02-16) |
출생지 | 조선 경상도 기장현 읍내면 동부동(現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 |
거주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남도 맹산 |
사망일 | 1960년 4월 4일(1960-04-04)(71세)? |
사망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남도 맹산군 노동교화소(맹산목장)에서 병사(뇌일혈 등이 사인)? |
국적 | 대한제국 -> 일본 제국령 조선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학력 | 배재학당 중퇴(1913년) 사후 1984년 배재대학교 명예 졸업장 추서 |
경력 | 조선독립동맹 주석 조선신민당 고문 북조선신민당 고문 북조선로동당 고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겸 초대 국가수반 조선로동당 고문 |
정당 | 조선로동당 |
부모 | 김돈홍(아버지) |
자녀 | 김해엽(딸), 김상엽(아들) |
종교 | 대종교 |
별명 | 호는 백연(白淵), 배못, 백련(帛連). 별칭은 태항산 호랑이 |
군사 경력 | |
복무 | 조선의용군 조선인민군 |
복무기간 | 1938년 10월 10일 - 1952년 11월 15일 |
최종계급 | 조선인민군 책임고문 |
지휘 | 조선의용군 최고사령관 |
근무 | 조선의용군 총본부 |
참전 | 제2차 세계 대전, 한국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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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기에는 한글학자 주시경의 수제자로 유명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중국으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잠시 활동하였다. 일제강점기의 한글 사전인 《조선말본》과 《깁더 조선말본》의 저자였으며, 《말모이》의 공저자 중 한 사람이다.
중국에서 학자 활동과 무장투쟁 활동을 하다가 1935년 김규식, 김원봉 등과 함께 민족혁명당을 창당 조직하였다. 1940년 이후 화북으로 가서 조선독립동맹의 주석으로 추대되었고, 광복 뒤에는 38선 이북으로 귀환, 1948년 4월의 남북협상에 참여하였고 북한의 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946년 10월부터 1948년 9월까지 김일성종합대학의 초대 총장이기도 하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서울이라는 곳은 조선의 심장부이니 우리 몸에 심장보다 중요한 곳은 없으니 심장을 장악하고 8월까지는 기어코 통일 정부를 구성하자며 김일성이 한국 전쟁을 일으키는 데 동조했다. 그러나 1958년에는 김일성과의 권력 투쟁에서 패하며 숙청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정확한 사망 시점은 미상이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