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아리노리
일본의 외교관, 정치인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모리 아리노리(일본어: 森 有礼, 1847년 8월 23일 ~ 1889년 2월 12일)는 사쓰마 번사, 일본의 정치인, 외교관으로 초대 미국공사를 지냈다. 영국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판사로 관료생활을 시작하였다. 청나라 대사, 외무부차관, 영국공사를 거친후 1885년에 초대 문부대신이 되어 일본 근대 교육 제도의 기반을 닦았다. 그의 교육관은 국가 번영에 최종목표를 둔 국가주의 교육이었다. 여성교육에도 큰 관심을 가졌는데 ‘똑똑하고 좋은 어머니가 되기 위한 여성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일본의 장래를 책임질 인재육성을 위해서는 교양있는 어머니가 자녀를 양육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1]
축첩의 폐습을 비판하며 일부일처제, 남녀평등, 부부 대등을 주장했다. 결혼에는 권리와 의무가 따르며, 부부란 이를 서로 지켜야만 하는 계약관계라는 의견을 내비쳤다. 이를 직접 실천에 옮겼는데 막말의 가신 히로세 히데오의 장녀인 히로세 쓰네와 서양식 ‘계약결혼’을 치렀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사회를 본 그의 결혼식은 일본의 전통적인 혼례식을 파괴한 파격적인 결혼식이었기에 당시 언론에 '신식부부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 되었고 세간에 큰 화제가 되었다.[2][3]
한자 투성이의 일본어를 폐지하고 영어를 국어로 쓰자는 과격한 교육개혁을 주장하기도 했다. 일본문자는 일본 본래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한자에서 따온것이 많고 한자사용의 번거러움이 있으므로 어차피 외래문자를 차용하여 쓸바에는 단순한 알파벳을 사용하고 국제어인 영어를 국어로 사용하자는 것이 그의 주장의 요지였다.[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