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2세
러시아 제국의 황제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알렉산드르 2세(러시아어: Александр II, 1818년 4월 17일 - 1881년 3월 13일)는 러시아 제국의 차르이다. 본명은 알렉산드르 니콜라예비치 로마노프(러시아어: Александр II Николаевич Романов)이다. 로마노프 왕조의 12번째 군주로 러시아 제국의 근대화를 위해 앞장선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아나키스트에게 1881년 암살 당했다.
알렉산드르 2세 니콜라예비치 Алекса́ндр II Никола́евич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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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2세의 사진 | |
제12대 전러시아 황제 | |
재위 | 1855년 3월 2일-1881년 3월 13일 |
대관식 | 1855년 9월 7일 |
전임 | 니콜라이 1세 파블로비치 |
후임 | 알렉산드르 3세 알렉산드로비치 |
총리 | 각료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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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대 체사레비치 | |
재위 | 1825년 12월 1일 - 1855년 3월 2일 |
대관식 | 1831년 9월 10일 |
전임 | 콘스탄틴 파블로비치 대공 |
후임 |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황태자 |
제3대 폴란드 국왕 | |
재위 | 1855년 3월 2일 - 1881년 3월 13일 |
전임 | 니콜라이 1세 파블로비치 |
후임 | 알렉산드르 3세 알렉산드로비치 |
부왕 | 폴란드 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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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독 | 바르샤바 총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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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대 핀란드 대공 | |
재위 | 1855년 3월 2일-1881년 3월 13일 |
전임 | 니콜라이 1세 파블로비치 |
후임 | 알렉산드르 3세 알렉산드로비치 |
재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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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독 | 핀란드 총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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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세대 러시아 대공 | |
공동재위자 | 콘스탄틴, 니콜라이, 미하일 |
이름 | |
휘 | 알렉산드르 니콜라예비치 로마노프 (Алекса́ндр Никола́евич Романов) |
별호 | 해방제 (Освободи́тель 아스바바디뗄[*]) |
신상정보 | |
출생일 | 1818년 4월 17일(1818-04-17) |
출생지 | 러시아 제국 모스크바 크렘린 |
사망일 | 1881년 3월 13일(1881-03-13)(62세) |
사망지 |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 궁전 |
왕조 | 홀슈타인고토르프로마노프 왕조 |
가문 | 홀슈타인고트로프로마노프가 |
부친 | 니콜라이 1세 |
모친 | 샤를로테 폰 프로이센 왕녀 |
배우자 | 마리 폰 헤센다름슈타트 대공녀 (1880년 사별) 예카테리나 돌고루코바 공녀 (귀천상혼) |
자녀 | 알렉산드라 알렉산드로브나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마리아 알렉산드로브나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파벨 알렉산드로비치 등 |
종교 | 러시아 정교 |
서명 |
알렉산드르 2세의 가장 중요한 개혁은 1861년 발표한 농노 해방령이며 이 외에도 법률 제도를 재조직하고 지역 재판관을 선출제로 바꾸었으며 가혹한 제도들을 폐지했다. 이를 통해 알렉산드르 2세는 알렉산드르 해방제(Алекса́ндр Освободи́тель 알렉산드르 아스바바디뗄[ɐlʲɪˈksandr ɐsvəbɐˈdʲitʲɪlʲ][*])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1] 그는 지역 자치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하였고 군사 제도를 전반적으로 개편했으며 귀족들의 특권 일부를 삭제하고 대학 교육과 산업 발전에 힘썼다.
대외적으로 그는 미국에 알래스카를 판매했으며 나폴레옹 3세나 빅토리아 여왕, 오토 폰 비스마르크 같은 유럽 내 여러 인물들과 관계를 맺으며 평화를 추구했다. 1872년 그는 삼제동맹에 가입해 유럽 지역의 안정화를 위해 노력했다. 그는 발칸반도의 여러 슬라브 국가들과 연합해 1877년부터 1878년까지 오스만 제국과 전쟁을 벌이기도 했으며 시베리아, 캅카스산맥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투르키스탄을 병합했다. 그는 동방 정책도 적극적으로 추진해 1860년 제2차 아편 전쟁을 중재한 대가로 연해주를 얻었으며, 블라디보스토크를 건설하는데도 앞장섰다. 그의 치세 동안 가장 큰 위기는 폴란드 지역에서 발생한 1863년의 1월 봉기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러시아 제국 내의 폴란드 영토에 별도의 입법 기구를 마련하는 대신 그 입법 기구를 러시아 제국 직속으로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