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지
고려 중기의 문신, 외교관, 음악가이자 군인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왕자지(王字之, 1066년 ~ 1122년 5월 2일 (음력 3월 24일))는 고려 중기의 문신, 외교관, 음악가이자 군인이다. 내시[1] 출신으로, 윤관, 오연총의 북방개척에 참전해 큰 공을 세웠다. 또한 송나라에 하례사로 파견되었다가 송나라 휘종에게 대성아악(大晟雅樂)을 전수받아 고려에 전파하였으며 이는 문묘제례악의 시초가 되었다.
간략 정보 왕자지王字之, 별명 ...
왕자지 王字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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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참지정사 | |
이름 | |
별명 | 아명은 소중, 자는 원장, 시호는 장순 |
신상정보 | |
출생일 | 1066년 |
출생지 | 고려 해주 |
거주지 | 고려 개경부 |
사망일 | 1122년 음력 3월 24일 |
사망지 | 고려 개경부 |
국적 | 고려 |
학력 | 한학 수학 |
부모 | ? |
배우자 | 황려군부인 경주김씨 |
자녀 | 왕의(아들) |
직업 | 문신 겸 외교관, 군인. |
기타 이력 | 이부상서, 참지정사 |
군사 경력 | |
복무 | 고려 |
지휘 | 고려 육군 |
주요 참전 | 여진족 정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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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 원장(元長)이고 아명(兒名)[2]은 소중(紹中), 시호는 장순(章順).[3] 개국공신 왕유의 후손이며, 고려 예종의 장인 이자겸과는 사돈간이다.[4]
윤관의 북방개척에 참전해 공을 세웠으며 1108년(예종 3년) 병마판관(兵馬判官)이 되어 윤관의 부장으로 출전하여 휘하에서 척준경과 함께 함주와 영주에 침입한 여진족을 격퇴하였다. 그 뒤 좌산기상시, 이부상서, 추밀원사 등을 거쳐 참지정사로 재직하던 중 사망하였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