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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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휘(尹暉, 1571년 - 1644년)는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이다. 1636년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조선 인조를 남한산성까지 호종, 조선 인조를 도와 적진인 청나라 진영을 왕래, 교섭하며 설득과 화의를 추진하였고, 환도 뒤 도승지가 되어 청나라와의 외교를 전담하였다.
과거 급제 후 삼사의 요직을 거쳐 1613년(광해군 5) 계축화옥에 관련, 삭직되었다가 다시 기용되어, 1618년 동지겸진주사(冬至兼陳奏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광해군이 명나라에 구원군을 보낼 때는 광해군의 중립외교론을 지지했다가 인조반정 직후 파면되었다. 1626년 복관되고, 성주목사, 청주목사 등을 지냈다. 그뒤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어가를 남한산성까지 호종하였고, 주화론에 참여하여 조선측 대표로 청나라군과의 사이를 오가며 타협을 주관, 강화 조약을 체결하였다. 환도 뒤 도승지가 되어 청나라와의 외교를 전담하였다.
뒤에 형조판서를 거쳐 의정부우찬성 등을 지냈다. 사후 아들 윤면지의 공로로 의정부영의정이 추증되었다. 윤두수의 셋째 아들이다. 윤흔의 동생이며 윤훤의 형이다. 당색으로는 서인이었으나 광해군의 조정에 참여했다. 본관은 해평(海平)으로 자는 정춘(靜春), 호는 장주(長洲) 또는 천상(川上), 시호는 장익(章翼)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