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산군 (이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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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산군 이유령(珍山君 李有齡, 1584년 3월 11일 ~ 1643년)은 한국 조선 시대 중기에 살던 왕족이다. 덕흥대원군의 손자이자, 조선 선조의 큰형 하원군 이정 (河原郡 李鋥)의 일곱째 아들이다. 휘는 유령 (有齡), 자는 덕수 (德叟), 호는 기은 (岐隱)이다.
1584년 3월 11일 한성 서부의 도정궁 (都正宮)에서 태어나, 초수 진산부정 (珍山副正)에 제수되었다. 그 후 성종의 여덟번째 아들인 익양군 이회의 손자이자 단천도정 이수곤(丹川都正 李壽鵾)의 5남 순성군 이길(順城君 李佶)의 양자로 입적되었다가 다시 본가로 돌아왔다.[1] 진산도정 (珍山都正)에 봉해지고, 1615년 9월 27일 품계가 올라가게 되었다.[2] 1636년 (인조 14년) 청나라의 조선 침공으로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할 무렵, 아우들인 진성군 이해령, 진양군 이담령과 함께 입궐하여 왕의 피난 행렬을 뒤쪽에서 따랐다. 행렬을 따르던 도중 청나라 군대에게 붙잡혔으나, 곧 풀려났다.
침공이 끝난 뒤 여러 공을 인정받아 중의대부 진산군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에 제수되었으며, 1643년 12월 3일 60세의 나이로 숨졌다. 사망 이후, 인조는 이유령에게 '후안부의'를 내리고, 중관 (中關)을 보내 청계동 태안골 축좌에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