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조선의 제15대 임금 (1575–1641)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광해군(光海君, 1575년 6월 4일(음력 4월 26일)~1641년 8월 7일(음력 7월 1일))은 조선의 제15대 국왕(재위: 1608년 ~ 1623년)이다. 임진왜란 때 세자에 책봉되었으며, 분조[1]하여 의병을 이끌었다. 즉위 후 후금과 명나라 사이에서 중립외교 노선을 취하였으며 전후 복구와 대동법의 실시 등 여러 정책을 실시하였지만, 잦은 옥사와 중립외교,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왕후를 유폐한 일로 인해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1623)에 의해 폐위되었다.[2] 연산군에 이어 반정으로 인해 폐위된 두 번째 왕이기도 하다.
광해군 光海君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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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이 묻힌 광해군묘 | |
제15대 조선 국왕 | |
재위 | 1608년 2월 2일 ~ 1623년 3월 14일 (음력) |
즉위식 | 정릉동 행궁 서청 |
전임 | 선조 |
후임 | 인조 |
조선국 왕세자 | |
재위 | 1592년 4월 29일 ~ 1608년 2월 2일 (음력) |
전임 | 순회세자 |
후임 | 폐세자 이지 |
이름 | |
휘 | 이혼(李琿) |
존호 | 체천흥운···창도숭업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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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정보 | |
출생일 | 1575년 4월 26일(1575-04-26) (음력) |
출생지 | 조선 한성부 |
사망일 | 1641년 7월 1일(1641-07-01)(66세) (음력) |
사망지 | 조선 전라도 제주목 |
부친 | 선조 |
모친 | 공빈 김씨 |
배우자 | 폐비 유씨 |
자녀 | 1남 1녀 (3남 1녀,성별 미상 자녀 1명)
폐세자 이지, 폐옹주 이씨 |
능묘 | 광해군묘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
성은 이(李), 휘는 혼(琿),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선조와 공빈 김씨의 둘째 아들이다.
1591년(선조 24) 종계변무 때에는 특별히 광국원종공신 1등에 특별히 책록되었으며, 임진왜란 이후에는 부왕의 견제로 호성원종공신이나 선무원종공신에도 책록되지 못했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세자로 책봉되었고, 함경도와 전라도 등지에서 군수품과 의병을 직접 모집하고 군량미를 모으는 데에도 힘썼다. 임진왜란 동안 세자의 몸으로 부왕을 돕고 전쟁 승리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으나, 부왕의 인정과 칭찬은커녕 견제와 냉대를 받아야만 했다.[3]
임진왜란 이후 1608년 왕위에 올랐다. 임진왜란의 뒷수습과 민생 안정을 위해 남인 이원익을 영의정에 등용하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였으며, 후금과의 전쟁 위기 상황에서 실리외교를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왕위 옹립에 공이 컸던 대북파의 반발로 당쟁에 휘말리고 말았으며, 이후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었다. 이후 줄곧 인목왕후를 유폐시키고 영창대군을 살해했다는 '폐모살제(廢母殺弟)'를 이유로 패륜자, 혼군(昏君), 폐주(廢主)로 평가되어 왔으나,[4] 현대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재조명 여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5][6]
생전에 폐위되었기에 사후 시호는 없으며, 임금이었을 때 신하들이 올린 존호는 체천흥운준덕홍공신성영숙흠문인무서륜입기명성광렬융봉현보무정중희예철장의장헌순정건의수정창도숭업대왕(體天興運俊德弘功神聖英肅欽文仁武敍倫立紀明誠光烈隆奉顯保懋定重熙睿哲莊毅章憲順靖建義守正彰道崇業大王)이다.[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