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무
고려 말 조선 초의 무신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조영무(趙英茂, ? ~ 1414년 7월 28일)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무신이다. 본관은 영흥 조씨(永興). 호는 퇴촌(退村)이다.
간략 정보 별명, 출생지 ...
조영무 (趙英茂) | |
별명 | 호는 퇴촌(退村), 시호는 충무(忠武)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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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고려 함경도 영흥군 |
사망지 | 조선 광주군 퇴촌면 |
본관 | 한양(漢陽) |
복무 | 고려/조선 무신 |
최종계급 | 영삼군부사(정1품) |
주요 참전 | 제1차 왕자의 난 / 제2차 왕자의 난 |
서훈 | 개국공신 3등, 정사공신 1등, 좌명공신 1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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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를 도와 조선개국에 가담하였고, 이방원과 함께 정몽주를 제거하였다. 조선의 개국공신 3등에 녹훈되고, 이후 제1차, 제2차 왕자의 난 당시 이방원을 도운 공로로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에 녹훈되었다.
이방원의 심복 장수로, 1392년에는 이방원의 명을 받아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제거하고 조선이 건국되었을 때 개국공신 3등에 봉해졌으며 한산백(漢山伯)에 봉작되었다. 뒤에 한산군(漢山君)으로 개봉되었다가 부원군으로 진봉한다. 그 뒤 태조 치세 때는 중추원상의사, 충청도 도절제사가 되었으며 제1차 왕자의 난에 가담하였다. 1402년(태종 2년)에 일어난 조사의(趙思義)의 난은 조영무·이무(李茂) 등을 죽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후 두 차례의 왕자의 난에서 이방원의 편에서 큰 공을 세워 정사공신 1등에 봉해졌으며, 벼슬이 문하우정승에 이르렀고, 한산부원군(漢山府院君)에 봉군되었다.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사후 태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후일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의 지명유래는 그의 아호에서 따서 지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