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실로프 공세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브루실로프 공세(러시아어: Брусиловский прорыв) 또는 6월 공세[1]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러시아 제국이 이룬 가장 큰 업적 중 하나이자 동시에 사상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공세 중 하나로, 1916년 6월부터 1916년 9월까지 이어졌다. 역사학자 그레이던 턴스탈에 따르면, 브루실로프 공세는 제1차 세계 대전 때 오스트리아-헝가리가 가장 큰 위기에 빠진 순간이자 협상국이 가장 큰 승리를 거둔 전투였지만, 사상자가 너무 많이 발생한 것이 단점이었다.[2] 브루실로프 공세 이후 러시아 제국은 공세를 가할 병력이 없어지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다음 해인 1917년 러시아 제국은 붕괴하였다.
브루실로프 공세 | |||||||
---|---|---|---|---|---|---|---|
동부 전선 (제1차 세계 대전)의 일부 | |||||||
| |||||||
교전국 | |||||||
러시아 제국 | 오스만 제국 | ||||||
지휘관 | |||||||
알렉세이 브루실로프 |
콘라트 폰 회첸도르프 | ||||||
병력 | |||||||
633,000명 | 467,000명 | ||||||
피해 규모 | |||||||
500,000명 사상 |
1,500,000명 오스트리아 군 사상 350,000명 독일군 사상 |
브루실로프 공세는 동부 전선에 있었던 동맹국 군대에 대한 러시아 제국의 주요 공세로, 1916년 6월 4일 시작되어 9월까지 이어졌다. 작전의 주요 지역은 갈리치아 동부, 그 중에서도 르비우와 볼린이었다. 작전명은 남서 전선군 사령관이었던 알렉세이 브루실로프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던 브루실로프 공세의 영향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 공세로 베르됭 전투에서 프랑스군에 대한 독일의 압력이 완화되었고, 이탈리아 전선|이탈리아 전선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압력을 완화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육군은 큰 손실을 입었고, 이 공세의 결과로 루마니아 왕국이 마침내 협상국의 편으로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게 되었다. 러시아 제국 측의 막심한 물적, 인적 손실은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