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준
대한민국의 정치인 (1895–1985)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백낙준(白樂濬, 1895년 3월 9일~1985년 1월 13일)은 대한민국 제2대 문교부 장관·무소속 초선 참의원 등을 지낸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백낙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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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제2대 문교부 장관 | |
임기 | 1950년 5월 4일 ~ 1952년 10월 29일 |
대통령 | 이승만 |
부통령 | |
총리 | |
차관 | |
신상정보 | |
출생일 | 1895년 3월 9일(1895-03-09) |
출생지 | 조선 평안도 정주군 관주면 관삼리 |
사망일 | 1985년 1월 13일(1985-01-13)(89세)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 세브란스병원 |
학력 | 파크 대학교 학사 프린스턴 대학교 석사 예일 대학교 박사 |
경력 | 연희대학교 총장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 |
정당 | 무소속 |
본관 | 수원(水原) |
부모 | 백영순(부) |
배우자 | 최이권 |
자녀 | 백순익(장남) 백성익(차남) 백관익(삼남) 백창익(사남) |
친인척 | 최이순(처제) 현제명(사돈) |
종교 | 유교(성리학) → 개신교(예장통합) |
그는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교육자, 국문학자이자 한글학자, 기독교사학자, 정치가였다. 문교부 장관 직책을 지낸 그의 본관은 수원(水原), 호(號)는 용재(庸齋), 미국식 이름은 조지 페이크(George Paik), 일본식 이름은 시라하라 라쿠준(白原樂濬).
1960년부터 1961년까지 참의원 의원이었고, 1960년 8월부터 1961년 5월 16일까지 참의원 의장이었다. 주로 연희전문학교와 연희대학교와 연세대학교의 문학과 교수로 활약하였고, 보성전문학교와 이화여자전문학교, 근화여자실업학교의 문과 교수로도 출강하였으며, 1927년부터 사망시까지 교수로 활동하면서도 사회단체, 학술단체의 회원으로도 활동했다. 1952년 교육자치제를 처음 제안하여, 이때 각 교육청이 설치되었다. 아호는 용재(庸齋), 영어 이름은 조지 백(George Paik)이고 그의 부인은 최이권 前 서울YWCA 명예총재 겸 명예회장이며 최이순 前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는 그의 처제이다.
미국 파크 대학교 역사학과와 프린스턴 신학교, 프린스턴 대학교 대학원에서 수학하였다. 1927년에 연희전문학교와 보성전문학교의 교수가 되고 1945년 12월에 연희전문학교 교장을 맡았다. 1946년에 연희전문학교가 연희대학교로 승격되면서 연세대학교 초대 총장이 되었다. 1945년 9월부터 12월까지는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교 법문학부 교수와 학부장을 역임하였다. 1938년 영국 왕립역사학회 회원이 되고 그해 영국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이사장에 선출됐다.
1950년부터 1952년 10월까지 문교부 장관을 지냈고, 이승만으로부터 국무총리 서리로 임명되었으나 민국당의 반대로 부결되었다. 1960년부터 1961년까지 제5대 참의원 의원과 참의원 의장을 역임하였다. 1960년대에는 야당 지도자로 활동하였다. 한때 국토통일원 고문으로 위촉되었으나 박정희의 삼선개헌과 10월 유신에 반대하여 다시 야당 지도자가 되었다.
1952년 그는 의무교육과 교육자치제를 제안하였다.[1] 신익희, 김구 등과 국민대학설립기성회에도 참여하여 국민대학교의 설립, 개교에도 관여하였다. 그는 역사학을 전공한 그는 국문학, 한글학 외에도 개신교 역사학자로도 활동했으며 주로 한국의 개신교사를 다루었다. 그는 대한교육연합회와 한국행정연구회(한국행정학회의 전신)의 창립에도 관여하였고, 1956년부터 59년까지 한국행정학회 초대 회장, 1956년 대한교육연합회(한국 교총의 전신)의 회장을 지냈다. 연세대학교의 교육과학대학이 있는 용재관은 그의 호에서 유래하였다. 본관은 수원이다. 평안북도 정주군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