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원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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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원대군(綾原君, 1598년 5월 15일(음력 4월 11일) ~ 1656년 1월 26일(음력 1월 1일))은 조선 후기의 왕족, 정치인이다. 정원군과 연주군부인 구씨의 차남으로,능양군의 친동생이다. 성은 이, 이름은 보(俌), 본관은 전주이며, 호는 담은당(湛恩堂)[1], 또는 경숙(敬叔)[2], 시호는 정효(貞孝)이다.
간략 정보 능원군綾原君, 휘 ...
능원군 綾原君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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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군윽 아들 | |
이름 | |
휘 | 이보 (李俌) |
별호 | 호 - 담은당(湛恩堂)· 경숙(敬叔) 첫 작위 - 능원군 |
시호 | 정효(貞孝) |
신상정보 | |
출생일 | 1598년 4월 11일(1598-04-11) (음력) |
출생지 | 조선 평안도 성천 |
사망일 | 1656년 1월 1일(1656-01-01)(57세) (음력) |
사망지 | 조선 경기도 양주 능원대군 사저 |
부친 | 정원군 |
모친 | 연주군부인 구씨 |
배우자 | 부부인 문화 유씨, 부부인 영암 김씨 |
묘소 | 능원군 묘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녹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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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년(광해군 즉위)후 정운원종공신 1등(定運功臣一等)에 책록되었다. 1613년(광해군 5) 임해군의 옥사 직후 익사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고, 광해군 시절 종실 자격으로 인목대비 폐비 논의에도 참여하였으나, 능양군 반정이후 처벌받지 않았다. 1628년(능양군 5) 9월 17일에는 소무원종공신 1등(昭武元從功臣一等)에 책록되었다.
본부인인 부부인 유씨의 친정아버지인 유효립이 모역을 꾸미다가 실패하고 살해되면서, 능양군은 그에게 아내와 이혼할 것을 요구했지만 그는 끝내 거절하였고, 자신의 집에 계속 살게 하였다. 첩인 부부인 김씨에게서 자녀들을 보았다. 1601년 능원수(綾原守)에 처음 책봉되었다가 1607년 능원군(綾原君)에 개봉되었으며, 훗날 정원군이 원종으로 추존되면서 그도 대군으로 진봉되었다. 병자호란 당시 척화파에 섰으며, 명나라 배신록에 실렸다. 1646년(능양군 24) 9월에는 영국원종공신(寧國元從功臣)에 책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