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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저술가이자 대학 교수 (1933–2022)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이어령(李御寧, 1933년 12월 29일[1]~2022년 2월 26일)은 대한민국의 문학평론가, 언론인, 저술가, 대학 교수를 지낸 국어국문학자이며, 노태우 정부에서 초대 문화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본관은 우봉. 호(號)는 능소(凌宵)이다.
이어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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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국제학술대회 기조강연 '역사박물관의 출발점' | |
대한민국의 초대 문화부 장관 | |
임기 | 1990년 1월 3일~1991년 12월 19일 |
전임 | (신설) |
후임 | 이수정 |
대통령 | 노태우 |
총리 | 강영훈 국무총리 노재봉 총리 서리 노재봉 국무총리 정원식 총리 서리 정원식 국무총리 |
차관 | 허만일 문화부 차관 |
대통령 비서실의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 | |
임기 | 1999년 4월 12일~2001년 1월 31일 |
대통령 | 김대중 |
총리 | 김종필 국무총리 박태준 국무총리 이헌재 총리 권한대행 이한동 총리 서리 이한동 국무총리 |
장관 | 김중권 비서실 실장 한광옥 비서실 실장 |
신상정보 | |
출생일 | 1933년 12월 29일 |
출생지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읍 좌부리 |
사망일 | 2022년 2월 26일 | (88세)
국적 | 대한민국 |
학력 |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
경력 |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배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 배재대학교 한류문화산업대학원 석학교수 중앙일보 고문 |
정당 | 무소속 |
본관 | 우봉(牛峰) |
부모 | 이병승(부), 원용숙(모) |
형제자매 | 이덕녕(형) 이복녕(형) 이휘령(형) 이서령(형) 이인녕(아우) 이시령(아우) 이윤녕(아우) |
배우자 | 강인숙 |
자녀 | 2남 1녀 |
친인척 | 이병도(재종숙부), 강철종(매형) |
종교 | 유교(성리학) → 개신교(예장통합) |
배우자는 문학 평론가인 강인숙이며, 서울 종로구에 이어령의 '령'과 강인숙의 '인'을 딴 영인문학관을 운영하였다.
충청남도 아산 출생이다. 1956년 서울대학교 국문학 학사와 1960년 동 대학원 국문학과 문학 석사, 1987년 단국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문학박사 등을 취득하였다.
경기고등학교 교사, 단국대학교 전임강사를 지냈으며, 1960년부터 서울신문, 한국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 등에서 논설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67년 8월부터 1999년 2월까지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역임하였고 1999년 2월부터 2022년에 별세할 때까지 동교 석좌교수를 지냈다. 그 외에도 2001년 8월부터 2012년 8월까지 배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를 지냈으며 2012년 8월부터 2022년에 별세할 때까지 배재대학교 한류문화산업대학원 석학교수를 지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의 총괄 기획을 맡아 '벽을 넘어서'라는 서울 올림픽 표어, 개회식의 굴렁쇠 소년 등 전세계에 인상적인 연출을 하였다.[2]
1990년 노태우 정부에서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1990년 1월 3일부터 1991년 12월 19일까지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2009년에는 경기디지로그창조학교를 설립하여 명예교장을 맡았다.
2022년 2월 26일 암 투병 끝에 숙환으로 별세하였다.[3]
1956년 한국일보에 문학평론 〈우상의 파괴〉를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다.[4] 〈우상의 파괴〉에서 그는 김동리를 '미몽(迷夢)의 우상'이라고 하고 '모더니즘'의 기수를 자처하고 있는 조향을 '사기사의 우상', 이무영을 '우매(愚昧)의 우상', 최일수를 '영아(嬰兒)의 우상'이라고 깎아내렸을 뿐만 아니라 황순원, 조연현, 염상섭, 서정주 등을 '현대의 신라인들'로 묶어 신랄한 비평을 가했다.[5] 그는 우리 문학의 불모지적 상황에서 새로운 터전을 닦아야 할 것을 주장했으며, 이데올로기와 독재 체제의 금제에 맞서 문학이 저항적 기능을 수행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작품의 실존성'을 문제로 김동리와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조연현과 '전통논쟁'도 펼쳤다. 특히 1959년 3월 한 신문을 통해 전개된 소설가 김동리와 비평가 이어령 사이의 시비는 대한민국 문단사에서 은유와 비문(非文)에 관한 '험악한' 논쟁으로 기록된다. (남영신,<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
<축소지향의 일본인>(「縮み」志向の日本人)을 비롯 이어령의 책은 일본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하였고, 지금까지도 번역 출판되고 있다. 특히 2005년 4월 출간된 <장켐 문명론>(신조사)은 <축소지향의 일본인> 이후 문명 융합에 대한 해박한 경륜을 담아 한 중 일 삼국의 미래를 조망했다는 점에서 크게 평가받았다.[8]
이어령은 이 시대 최고의 지성, 오천년 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창조적 인물로 칭송을 받고 있지만 선천적인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일부에서는 강한 비판을 받기도 한다.[9]
고령의 나이에 비해 컴퓨터 및 소프트웨어 활용 능력이 뛰어나다. 서재에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진 7대의 컴퓨터가 있으며, 자료 정리는 에버노트를 주로 쓴다.[10] 김정운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에버노트에 저장된 노트의 수가 18,000개라고 밝혔다.[11]
이어령은 천재적인 글쓰기의 역량을 발휘했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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