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1년은 목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이 해는 19세기의 첫 번째 해이다.
- 2월 22일 - 조선에서 순조의 수렴청정을 하고 있던 정순왕후가 천주교 엄금에 관해 하교를 내렸다. 그 내용은 “천주교 신자는 인륜을 무너뜨리는 사학(邪學)을 믿는 자들이니,인륜을 위협하는 금수와도 같은 자들이니 마음을 돌이켜 개학하게 하고, 그래도 개전하지 않으면 처벌하라”는 것이다.[1]그러나, 실제의 공격대상은 노론 시파, 소론, 남인에다 왕실인사까지 광범위했다.[2] 이로써 신유박해가 일어났다.
- 3월 4일 - 존 애덤스의 뒤를 이어 토머스 제퍼슨이 미국 제3대 대통령이 되다.
- 3월 17일 - 천주교 신자임이 밝혀진 은언군의 부인 송씨와 며느리 신씨가 사약형을 받았다.
- 4월 8일 - 이승훈(충청도 예산군에 유배 중이었음)·정약종·최필공(崔必恭)·최창현(崔昌顯)·홍교만(洪敎萬)·홍낙민(洪樂敏)이 서대문 형장에서 사형되었다.[3]
- 4월 24일(음력 3월 12일) - 청국인 신부 주문모가 의금부에 '내가 당신들이 찾는 천주교 신부'라며 자수하였다. 그는 황해도 황주로 갔다가 한양으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 4월 28일(음력 3월 16일) - 주문모로부터 세례를 받았던 천주교 신자 김건순이 체포되었다.
- 5월 31일(음력 4월 19일) - 주문모가 한강 새남터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 6월 1일(음력 4월 20일) - 김건순이 서소문 밖에서 참수당하였다.
- 6월 13일 - 은언군이 유배지 강화도에서 사약을 받고 사사되었다.
- 7월 2일(음력 5월 22일) - 강완숙과 자신이 전교한 궁녀들이 함께 서소문에서 참형으로 순교하였다.
- 10월 4일 - 홍필주가 서소문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 권철신, 이가환이 사형당하였다.
- 11월 5일(음력 9월 29일) - 청나라 북경 주재 구베아 주교에게 신유박해의 사실을 알리고 청나라의 무력에 호소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을 담은 백서(황사영 백서)를 작성한 황사영이 잡혀 한양으로 끌려올라왔다.
- 12월 10일(음력 11월 5일) - 황사영이 처형되었다.
- 공노비 완전 폐지
김태희 (2015) 19~20쪽 "공격대상은 노론 시파, 소론, 남인에다 왕실인사까지 광범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