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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군
만주에 주둔하던 일제의 육군 부대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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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군(일본어:
역할
일본 제국은 중국을 침공하는 전진기지로서 만주를 활용하고 있어서 관동군은 그 주변지에서 일본이 지배하는 지역을 확대하고 중국을 침략하는 선봉으로서 다양한 음모 공작과 작전을 수행하였다.
1928년에는 참모 고모토 다이사쿠(河本大作)가 장쭤린(張作霖)을 폭사시켰고, 1931년에는 참모 이타가키 세이시로(板垣征四郞)와 이시와라 간지(石原莞爾)이 만주사변을 획책해 1932년 일본 제국의 괴뢰 정권인 만주국을 세웠다. 1932년에 관동군 사령관이 주만(駐滿) 특명전권대사(特命全權大使)를 겸하고 중국 동북 지방을 실질로 지배하기 시작한 이 기간에 관동군은 남만주철도주식회사와 함께 식민지를 공고히 지배하고 일본의 이익을 위해 철도 사업을 했다. 만주국의 주요한 정책 입안과 집행은 관동군 사령관에게 재가(裁可)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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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비
소련을 대상으로 한 전쟁 준비와 중국 침공을 준비하느라고 관동군의 병력은 차츰 증강되었다. 1933년에는 규모가 10만 명이었는데, 관동군은 1938년 장고봉 사건과 1939년 노몬한 사건으로 소련에 도발했다가 패했다.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한 후에는 독일을 도와 소련을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병력을 크게 늘려 1941년 관동군특별대연습(關東軍特別大演習) 때는 약 100만 명이 되었다.
패망
그러나 1941년에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자 1943년 가을 이후에는 전력을 동남아시아를 위시한 남방 전선으로 이동하게 되어 만주에는 형식적 전력만 남았다. 1945년 8월 6일 미국이 원자폭탄을 투하한 이후 미국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한 계산으로 소련과 협력하여 신속하게 점령지를 소련군에게 넘겨주어 소련군이 미국보다 먼저 한반도에 진군하도록 협조한다.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후인 1945년 8월 19일에 관동군 사령관도 무조건 항복했다.
지휘부
사령관
참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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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성
- 제1방면군
- 제3방면군
- 제30군
- 제39사단
- 제125사단
- 제138사단
- 제148사단
- 제2공병사령부
- 제44군
- 제63사단
- 제107사단
- 제117사단
- 전차 제9여단
- 제108사단
- 제136사단
- 혼성 제79여단
- 혼성 제130여단
- 혼성 제134여단
- 전차 제1여단
- 만주경비사령부
- 제22야전고사포대사령부
- 제1특별경비대
- 제30군
- 제17방면군
- 직속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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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 일본 제국 육군의 군 목록
- 관동군 특종연습
- 만주국군
- 일본 제국주의
- 일본의 전쟁 범죄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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