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질문
타임라인
채팅
관점

김반 (1580년)

조선 중기의 문신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Remove ads

김반(金槃, 1580년~1640년)은 조선 시대 중기의 관료문신이다. (本)은 광산(光山). (字)는 사일(士逸), (號)는 허주(虛舟)·허주자(虛舟子)이며, 아버지는 성리학자 문원공 김장생이다. 문경공 신독재 김집의 아우이기도 하며, 송익필의 문인이다.

간략 정보 김반金槃, 재임 ...
Remove ads

생애

사계 김장생의 셋째 아들(三男)로, 일찍이 아버지 김장생과 둘째 형 김집이 사사했던 구봉 송익필에게 글과 학문을 배우고, 그로부터 예학을 전수받았다. 그 뒤 아버지(김장생)와 두 형(김은·김집)에게서 글을 배우다가 1605년(선조 38)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이후 관직에 나갔다.

그 뒤 광해군정치에 반대하여 사퇴하였다가,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이후 빙고 별제(氷庫 別提)라는 직책에 임명되었으나 불과 두달도 채 아니 되어 또다시 관직 사퇴를 선언하였으며, 그 이후 이괄이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흥안군 이제를 괴뢰 군주로 천립하여 내세우고자 이괄의 난을 일으켰는데, 결국 이것이 확산되자 아버지 김장생과 함께 충청도 공주로 달려가 인조 호종을 하였다. 바로 공주행재소에서 보인 특별 정시 문과에 급제, 성균관 전적이 되었다. 이후 형조 좌랑, 사간원 정랑, 이조 정랑, 사간원 정언, 홍문관 수찬, 홍문관 교리, 홍문관 응교 등을 두루 지냈다.

그 뒤 1635년 병조참지, 사간원 대사간, 형조참의, 홍문관 부제학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으로 왕을 호종하고, 이 과정에서 강화산성을 보위하고 있던 셋째아들(익겸)을 분신 자살 순국으로 잃는 슬픔을 겪었으며, 정축하성 이후 예조 참판, 사헌부 대사헌, 한성부 우윤, 이조 참판 등의 요직을 지냈다. 성격은 이렇다 할 유별남이 없이도 원만하여 1639년에 스스로 관직을 그만둘 때까지 공신들과 별 갈등을 겪지 않고 그저 순탄하게 관직을 역임했다. 사후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Remove ads

가족 관계

Remove ads

같이 보기

각주

외부 링크

Loading related searches...

Wikiwand - on

Seamless Wikipedia browsing. On steroids.

Remove a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