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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므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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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므롯 (/ˈnɪm.rɒd/)은 성경의 인물로 시날 (아시리아/메소포타미아)왕이다. 창세기와 연대기 책에 의하며 구스의 아들로 노아의 4대 손이다. 성경에서는 그를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강한 사냥꾼으로 말한다. [1]

고대의 비문들은 니누스(Ninus) 또는 니므롯(Nimrod)은 다른 남자의 아내였던 세미라미스(Semiramis)와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그녀는 앗시리아의 역사에 니므롯 즉 니누스(Ninus)의 아내로 언급되어 나오는데 니므롯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또한 사냥꾼이었다. 어거스틴의 신국론神國論) 니누스(니므롯)은 앗시리아의 초대 왕으로 그에게는 니니아스라는 아들이 있는데. 니누스가 죽은 후 니니아스가 직계를 이어야함에도 계모인 세미라미스가 제위를 차지하였다.
니누스는 때로 토라에서 쿠시의 아들인 사냥군 니므롯로 확인되는 인물과 관련있다고 생각되곤 하였다.
창세기에서 니네베(니느웨)를 창건한 이는 니므롯이다.
니므롯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행적은
고대 역사서 [야샬의 책]
7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니므롯이 40세가 되었을 때, 니므롯은 구스의 자녀들, 즉 자신의 형제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모아 야벳의 자녀들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는 540명의 군대를 이끌고 전쟁을 벌여 상대편을 멸망시키고 그 도시들을 정복했습니다. 그는 정복한 도시들에 관료들을 세우고, 아이들 일부를 볼모로 잡아와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이 전쟁의 승리로 형제들은 그를 왕으로 세우고 왕관을 씌웠습니다. 니므롯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 시날을 세우고 그곳에서 왕이 되어 세계(수사와 수메르)를 다스렸습니다. 성경에서는 수메르를 시날 평야라 지칭하고 있고, 일반적으로도 시날은 수메르 지역을 지칭한다고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로마 제국의 역사가
티투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Titus Flavius Joseph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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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창 10:6)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창 10:7)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창 10:8)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창 10:9)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창 10:10)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창 10:11)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창 10:12)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설하였으니 이는 큰 성읍이라 (창 10:13)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밈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창 10:14)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 (가슬루힘에게서 블레셋이 나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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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요약
관점
역사가, 동양 학자 , 아시리아 학자 , 신학자들은 오랫동안 성경 본문의 니므롯과 역사적으로 입증된 메소포타미아의 실제 인물 사이의 연관성을 찾으려고 노력해 왔다. 니므롯이라는 이름의 왕 또는 이와 유사한 이름을 가진 왕은 성경 이전, 성경 외 또는 역사적인 수메르, 아카드, 아시리아 또는 바빌로니아 왕 목록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으며, 니므롯이라는 이름은 어떤 맥락에서든 메소포타미아 자체의 다른 저작물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니므롯의 도시 중 하나인 아카드가 기원전 2200-2154년(long chronology)에 제국의 멸망과 함께 파괴되고 사라졌기 때문에 니므롯을 언급하는 훨씬 후대의 성서 이야기는 초기 청동기 시대 후기를 상기시키는 것 같다고 한다. 기원전 2000년경 이신, 우르, 라르사, 엘람 사이의 투쟁의 결과로 중요성을 상실한 도시인 에렉(수메르어와 아카드어로 우루크)과의 연관성도 니므롯 이야기가 초기 시기를 배경으로 함을 증명한다.[2] 몇몇 메소포타미아 유적은 AD 8세기 무슬림 아랍인들에 의해 니므롯의 이름을 부여받았다. 일례로, 살만에셀 1세(기원전 1274–1244)가 건설한 아시리아 도시 칼후(성서 속 니므롯이 아시리아 지역에 세웠다는 도시 갈라)의 폐허는 님루드라 불리게 되었다.[3]
현재까지 그를 역사적 인물과 연결시키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4세기 초에 가이사랴의 기독교 주교 유세비우스는 기원전 3세기의 바빌로니아 역사가 베로수스가 홍수 이후의 첫 번째 왕이 '갈대아의 에우에코이오스(Euechoios of Chaldea)'라고 한 것을 기록하였고,[4] 그를 니므롯과 동일시했다. 조지 신셀루스(c. 800)도 베로수스의 기록에 접근할 수 있었고, 그 역시 역사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에우에코이오스를 성서의 니므롯과 동일시했다. 후대의 수메르 학자들은 이 에우에코이오스와 클라우디우스 아엘리아누스(Claudius Aelianus)의 가장 오래된 사본(서기 200년)에 나오는 바빌론의 왕이자 길가모스(Gilgamos)의 조부 에우에코로스(Euechoros)를 모두 설형 문자 기록에서 알려진 우루크(Uruk)의 설립자로 여겨지는 신화적인 왕 엔메르카르(Enmerkar)와 연결하였다.[5]
1920년에 JD Prince 는 마라드(Marad)의 주인(Ni)과 님로드/니므롯사이의 연결 가능성을 제안했다. 그는 Dr. Kraeling이 역사적으로 님로드를 1914년 Poebel, Historical Texts에 언급된 신화적인 수메르 왕인 루갈반다(Lugalbanda)[6]와 역사적으로 연결하는 경향이 있다고 언급했다.[7]
Ronald Hendel에 따르면 Nimrod라는 이름은 아마도 칼후(Kalhu)와 같은 여러 아시리아 도시와 바빌론에 컬트 센터를 가졌고 후원자였던 메소포타미아 종교의 저명한 신이자 여러 아시리아 왕의 주신인 닌우르타(Ninurta)로부터 훨씬 후대에 왜곡되어 파생된 것이라고 한다.[8] 창세기에 묘사된 니므롯의 제국적 모험은 아시리아 왕 투쿨티-닌우르타 1세(Tukulti-Ninurta I)의 정복에 근거한 것일 수도 있다고 한다.[9] Julian Jaynes 역시 중기 아시리아 제국의 강력한 왕인 투쿨티-닌우르타 1세가 니므롯의 기원이 된 인물이었을 것이라고 하였다.[10]
보다 최근에 Yigal Levin (2002)은 허구적인 인물인 니므롯이 아카드의 사르곤과 그의 손자 나람신에 대한 회고였으며, 후자인 나람신의 이름에서 "니므롯"이라는 이름이 파생되었다고 제안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성경의 님로드는 어떤 역사적인 한 인물의 완전한 대응물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사르곤 왕조에 상응하는 후대의 히브리 기록의 복합적인 인물로, 홍수 이후에 통치한 최초의 강력한 왕이다. 영웅의 이름, 그의 영토, 그리고 그의 몇 가지 업적과 가장 중요한 그의 칭호인 "키쉬의 왕"이라는 요소들이 후대의 영향으로 메소포타미아 전승에 더해졌고 수정되었다. 훨씬 후대의 창세기 편집자들은 원래의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삭제하고 메소포타미아의 키쉬(Kish)를 함 족속의 구스(Cush)로 잘못 해석하였는데, 메소포타미아와 구스(오늘날의 수단) 사이에는 그 어떠한 고대의 지리적, 민족적, 언어적, 문화적, 유전적, 역사적 연관성이 없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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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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