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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 모나코
15세기 이탈리아 화가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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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 모나코(이탈리아어: Lorenzo Monaco, 1370년경~1425년경)는 후기 고딕에서 초기 르네상스로 이어지는 시대에 활동한 시에나 공화국 출신의 화가이자 세밀화가로, 주로 피렌체에서 활동했다.[1] 그의 본명은 피에로 디 조반니(이탈리아어: Piero di Giovanni)였다. 젊은 시절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으며, 다만 피렌체에서 도제로 수련을 받았다는 사실만 전해진다. 그는 르네상스의 혁신을 가져온 프라 안젤리코와 마사초가 등장하기 이전에, 조토 양식의 마지막 중요한 계승자로 평가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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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요약
관점
최근까지 알려진 바와 달리 그는 시에나가 아닌 피렌체에서 태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분명히 피렌체에서 회화를 수련하였다. 그는 조토의 전통 속에서 성장했으며, 조토뿐만 아니라 그의 추종자들인 스피넬로 아레티노와 아뇰로 가디에게서도 영향을 받았다. 이후 그는 가디와 함께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교회의 노빌리 예배당 제단화 프레델라를 제작하기도 했다.[3]
1390년 그는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의 카말돌리파 수도원에 견습 수도사로 들어가 1391년에 서원을 했다. 그곳에서 그는 오랫동안 필사실에서 장식 필사본 제작자로 일하며 판넬 화가로도 활동했으며, 당시 피렌체에서 가장 뛰어난 성화 화가로 자리매김했다.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에 보관된 세 권의 성가집은 14세기 마지막 10년에 제작된 것으로, 그의 수도원이 의뢰한 작품이다. 이들에서는 이미 팽팽한 선묘와 차가운 색조라는 개인적 화풍을 감지할 수 있다.
1404년경부터 그의 화풍은 국제 고딕 양식의 영향을 드러내며, 당시 스페인에서 돌아온 로렌초 기베르티와 게라르도 스타르니나의 초기 작품들로부터 자극을 받았다. 이 시기에 제작된 대표작으로는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의 《피에타》가 있으며, 신경질적인 선과 일정한 감정적 긴장감이 드러난다. 수많은 금 배경화에서 그는 극도로 길게 늘어난 인물상, 초승달 모양의 옷자락 곡선, 날카로운 가장자리, 금과 청금석을 아낌없이 쓴 밝고 풍부한 색채, 암시적인 제스처, 거의 소거된 공간감을 특징으로 하는 독창적인 양식을 구축했다. 그의 작품은 일반적으로 강한 영적 가치를 지닌 이미지로, 현실로부터 분리되어 있으며, 세속적이거나 자연주의적 요소는 거의 완전히 사라져 있다.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는 시에나 국립 미술관의 《성모자와 성인들의 제단화》,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의 아름다운 《겟세마네의 기도》가 있다. 또한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있는 장엄한 《성모의 대관식》(1407~1409년경)은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이어지는 시기의 작품인 아카데미아 미술관 소장의 《몬테올리베토 다성 제단화》는 프라 안젤리코의 영성을 예고하는 듯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같은 미술관에 있는 《산 프로콜로 삼폭화》에서는 이미 필사본 장식과 같은 물결치는 리듬이 드러나며, 이는 다시 《성모의 대관식》(현재 우피치 미술관 소장)에 등장한다. 이 작품은 많은 성인들을 유려한 형태로 배치했으며, 눈부신 흰색 성모의 드레스와 그리스도의 울트라마린 푸른색 망토에 이르러서는 마치 신성한 빛이 발산되는 듯한 색채의 절정을 보여준다.
수많은 의뢰를 받은 그는 여러 차례 수도원을 떠날 수 있도록 면허를 요청했으며, 상급자들은 이를 정기적으로 허락했다. 그러나 로렌초는 수도사로서의 신분을 결코 잊지 않았다.

말년기 작품에서 그는 동시대의 마사초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의 혁신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일부 새로운 양식을 반영하여 공간을 보다 사실적으로 표현하기도 했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겪지 않고 자신의 화풍에 충실했다. 이 시기의 대표작은 1420년~1422년에 제작된 《동방박사의 경배》로, 투시법이 전혀 적용되지 않아 단축법이 눈에 띄게 불일치하고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림의 질은 여전히 높으며, 윤곽선을 독창적으로 사용하여 피렌체 회화 가운데 가장 상상력이 풍부한 결과물 중 하나를 만들어냈다.
1420년대에도 로렌초의 작품은 여전히 인기가 있었는데, 이는 그가 받은 수많은 의뢰로 입증된다. 대표적으로 산타 트리니타 성당의 바르톨리니 살림베니 예배당의 《성모의 생애》 연작 벽화가 있으며, 이는 그의 몇 안 되는 프레스코 가운데 하나이다.
조르조 바사리는 《미술가 열전》에 모나코의 전기를 수록하며, 그가 55세의 나이로 정체불명의 감염, 아마도 감염된 종기나 괴저 혹은 종양으로 인해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다가 죽었다고 기록했다. 그는 수도원의 회의실에 묻혔는데, 이는 보통 고위 성직자나 유명 인물에게만 허락된 특권으로, 생전 그가 얼마나 큰 존경을 받았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세밀화에서도 매우 방대하며, 창의성과 형식 면에서 모두 높은 가치를 지닌 결과물을 남겼다. 그는 또한 성가도 작곡했다. 그의 세밀화 사본 가운데 다수는 현재 메디체아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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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작품
그의 작품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성모의 대관식》 (1388~1390), 코톨드 갤러리, 런던
- 《성모자와 성인들》 (1395~1402)
- 《성 베네딕토의 생애 장면들》 (1407년경~1409)
- 《성탄》 (1409), 프레델라 일부로 여겨지는 패널화
- 《성모의 대관식》 (1414), 우피치 미술관
- 《수태고지 삼폭화》 (1410~1415),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 피렌체
- 《바르톨리니 살림베니 예배당》 (1410~1415), 산타 트리니타 성당, 피렌체
- 《동방박사의 경배》 (1422),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 《성 바울의 참수》, 프린스턴 대학교 미술관
- 《행렬용 십자가》, 시카고 미술관
- 《성 베드로의 십자가형》, 월터스 미술관, 볼티모어
- 《성모자》,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
- 《겸손의 성모》, 브루클린 미술관
- 《성모자》,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에든버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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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 《성모의 대관식》, 1388년경~1390년, 런던 코톨드 갤러리
- 《겸손의 성모》, 브루클린 미술관
- 《여섯 천사와 함께한 성모자》, 1415년경~1420년
- 《성모》, 1381년경~1425년,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 《성모와 성인들과 함께한 성모자의 다성 제단화》, 1410년,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
- 《성 베네딕토의 생애 장면》, 약 1413년~1414년
- 《성탄》, 1406년경~1410년
- 《성탄》, 1414년
- 테베의 파프누티우스, ‘그리스도의 매장’ 제단화 프레델라
- 탄생, ‘그리스도의 매장’ 제단화 프레델라
- 미라의 성 니콜라스의 폭풍 진정, ‘그리스도의 매장’ 제단화 프레델라
- 《십자가형》, 1405년경~1410년
- 《서재에 있는 성 제롬》, 1420년,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각주
참고 문헌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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