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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미디우스가 있는 수태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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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미디우스가 있는 수태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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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미디우스가 있는 수태고지》(The Annunciation, with Saint Emidius)는 이탈리아 화가 카를로 크리벨리제단화로, 수태고지를 예술적으로 각색한 작품이다.[1] 수태고지는 성경에 묘사된 종교적인 사건으로, 대천사 가브리엘성모 마리아에게 나타나 신성한 메시지를 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제단화는 이탈리아 마르케주아스콜리피체노 마을에 있는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성당를 위해 그려졌으며, 1482년 교황 식스토 4세가 이 마을에 자치권을 부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그림이다.[2] 또한 이 그림은 대천사 가브리엘, 성모 마리아, 성 에미디우스, 성령과 같은 중요한 종교적 상징과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그림에 묘사된 건축물과 의복, 그리고 이 그림을 그리는 데 사용된 기법에서, 이 작품이 르네상스 예술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간략 정보 성 에미디우스가 있는 수태고지, 영어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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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수태고지는 기독교의 핵심적인 사건이다. 그림에서 대천사 가브리엘은 하늘에서 내려와 성모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아이를 잉태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낳을 것이라고 알린다. 성령은 기적적인 잉태를 상징하며, 성모 마리아에게 들어가는 빛줄기로 묘사된다.[3] 화가들이 수태고지를 묘사할 때는 루가의 복음서신약 외경에서 영감을 얻었다. 14세기와 15세기에 이르러 수태고지 장면은 흔히 성모 마리아가 닫힌 공간에 앉아 독서하는 모습으로 그려졌고, 대천사 가브리엘은 이 그림처럼 그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4] 가브리엘이 들고 있는 백합은 성모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한다. 이 수태고지 장면은 작가가 대천사 가브리엘 옆에 성인인 성 에미디우스를 배치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1]

역사

카를로 크리벨리는 1458년 베네치아에서 아드리아해 연안의 항구 도시 안코나 근처 마르케주로 이주했다.[1] 크리벨리는 1486년 이전에 이 작품에 서명하고 날짜를 기입했는데, 이는 그가 이 지역으로 이주한 이후 얼마 안되어 의뢰 받은 작품임을 의미한다.[1] 이 제단화는 항구 도시 안코나에 이웃한 아스콜리피체노 마을을 위해 제작되었으며, 산티시마 안눈치아치오네 교회에 설치될 예정이었다.[1] 이후 이 그림은 1811년 밀라노의 브레라 미술관으로 옮겨졌다가, 1820년 오귀스트루이 드 시브리에게 넘어갔고, 19세기 중반에는 영국에 도착했다. 1864년 헨리 라부셰어, 초대 턴튼 남작이 기증한 이후 런던내셔널 갤러리에 보관되어 있다.[2]

묘사

요약
관점

이 특정 제단화는 아드리아해 근처 아스콜리피체노 마을에 위치한 프란치스코 재속회 콘벤투스를 위해 제작되었다.[5] 이 물리적 예술 작품 자체는 팔라(pala)라고 불리는데, 이는 전체 한 장의 패널로 구성되어, 분리되거나 다른 개별 패널이 없는 제단화를 의미한다.[5] 이 그림은 초기 르네상스의 전형적인 재료인 템페라유성 페인트를 혼합하여 캔버스에 그려졌다.[1] 크리벨리의 아버지와 형제 모두 화가였기 때문에 그는 이러한 재료와 기법을 사용하는 데 익숙했다.[6] 크리벨리의 이 작품은 성경 장면을 묘사하고 고전주의 건축 요소와 르네상스 요소를 혼합한 전형적인 르네상스 회화의 훌륭한 예시이다. 기둥과 둥근 아치를 사용하고, 많은 금 장식을 통합한 것을 볼 수 있다.[1]

도상학

대천사 가브리엘은 그림의 전경에서 성모 마리아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1] 가브리엘은 아스콜리피체노 마을의 수호성인인 성 에미디우스와 함께 무릎을 꿇고 있다.[1] 성 에미디우스는 맹인을 치료하는 것을 포함하여 많은 기적을 행한 것으로 알려진 중요한 인물이다.[7] 그는 303년에 그곳에서 순교한 후 마을의 수호성인이 되었다.[7] 결국, 약 1000년경 아스콜리피체노의 주교는 성 에미디우스의 유물을 도시 내 지하 납골당으로 옮겼다.[7] 이 그림에서 성 에미디우스는 대천사 가브리엘에게 자신의 마을을 정교하게 재현한 모형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듯하다.[1] 이 수태고지의 묘사는 대천사 가브리엘이 벽으로 인해 성모 마리아와 분리되어 있고 성 에미디우스가 가브리엘 옆에 무릎을 꿇고 마리아에게 신성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1]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브리엘의 메시지는 여전히 전달된다. 왼쪽 상단 모서리에 성령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1] 성령은 구름을 뚫고 마리아가 무릎을 꿇고 있는 건물로 침투하고 있다.[1]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줄기는 마리아가 성령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태중에 받아들이는 것을 상징한다.[8] 대천사 가브리엘은 또한 흰 백합 한 쌍을 들고 있는데, 이는 성모 마리아의 순수성, 동정성, 영성을 상징한다.[5] 이는 그녀가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될 것이므로, 죄 없고 순결하게 보여야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5] 왼쪽에 있는 깊은 곳으로 통하는 닫힌 통로와 마리아의 침실에 있는 순수한 물병 또한 관습적으로 마리아의 동정성을 나타낸다.[8] 마리아가 무릎을 꿇고 있는 앞에는 열린 책이 있는데, 이는 이사야예언으로 여겨진다.[5] 이 예언은 메시아의 탄생을 의미하며 가브리엘의 도착과 일치한다.[5]

그림 배경에는 일상생활의 느낌을 더하고 이 신성한 순간을 목격하는 듯한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1] 성 에미디우스 뒤편의 남자와 계단 위 왼쪽의 어린아이는 성령이 성모 마리아에게 강림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유일한 사람들로 보인다.[5] 대천사 가브리엘과 성 에미디우스 왼쪽의 계단 위 두 인물은 프란치스코회 수사와 크리벨리의 《성 에미디우스가 있는 수태고지》의 후원자로 여겨진다.[9] 오른쪽 상단에는 공작과 방울새 새장을 포함한 여러 새들이 있다.[5] 이 새들은 모두 수난부활을 상징한다.[5] 공작은 또한 불멸을 상징하는데, 그 살이 결코 썩지 않는다고 믿어졌기 때문이다.[8] 새들이 있는 난간에는 동양 카펫이 장식하고 있다.[5] 크리벨리는 파도바에서 초기 르네상스 미술을 공부했기 때문에 동양 및 중동 요소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6] 이탈리아 도시 파도바는 중동과 비잔틴 건축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이는 도시 내 건물의 건축 양식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림 하단에는 교황 식스토 4세와 지역 주교 프로스페로 카파렐리의 문장이 그려져 있다.[2] 라틴어 'libertas ecclesiastica'(교회 자유)는 가톨릭 교회의 일반적인 감독 하에 아스콜리 피체노가 자치권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8] 또한 그림 하단에는 무작위로 놓인 오이와 사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경의 사과는 선악과와 관련하여 인간의 타락을 상징한다. 오이는 부활구원의 약속을 상징한다.[8]

건축

그림에 표현된 건축 양식은 고전적 요소와 르네상스 장식이 조합되어 있다.[5] 둥근 로마식 아치, 금박을 입힌 주두가 있는 흰색 기둥, 정교한 프리즈로 디자인된 정교한 엔타블러처, 그리고 격간 천장이 있다.[1] 건축물은 다양한 색상의 벽돌, 대리석 무늬, 목재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1] 크리벨리는 마리아 집 외벽 하단의 코린토스 양식 필라스터에 서명과 날짜를 기입했다.[5] 하단 명문에는 "OPVS-CAROLI-CRIVELLI-VENETI-1486"라고 적혀 있다.

의복

가장 눈에 띄고 호화로운 의복을 입은 세 인물은 대천사 가브리엘, 성 에미디우스, 그리고 성모 마리아이다.[1] 마리아, 가브리엘, 성 에미디우스는 모두 브로케이드, 보석, 보석류를 포함한 금은 요소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1] 그들의 의복은 또한 녹색, 빨간색, 주황색의 풍부한 색조로 칠해져 있으며, 주변 사물이나 천으로 덮인 부분도 마찬가지이다.[1] 성모 마리아가 입고 있는 정숙한 옷은 15세기 양식으로, 금색 꽃과 잎사귀, 보석으로 장식된 화려한 색상의 타이트한 보디스로 묘사되어 있다.[5] 그녀는 또한 잘린 소매 사이로 흰색 속옷이 드러나 있다.[5] 머리에는 보석이 박힌 소관을 쓰고 우아한 망토를 걸치고 있다.[5] 대천사 가브리엘은 두터운 주름 장식 옷을 입고 갑옷을 연상시키는 어깨 덮개를 착용하고 있다.[1] 그는 또한 목에 커다란 메달을 걸고 있으며 보석으로 장식된 소관을 쓰고 있고 금박을 입힌 후광이 있다.[1] 성 에미디우스는 주교의 복장을 하고 있지만 가브리엘과 마리아에 비해 가장 화려하게 보석과 자수, 금박으로 장식된 의상을 입고 있다.[1] 그의 주교관은 귀한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호화로운 금색 캅파를 연결하는 커다란 보석 장식 버클도 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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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양식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카를로 크리벨리는 주변 화가들의 많은 예술 양식을 흡수하여 선명하고 강렬한 선으로 생생한 색상의 그림을 그렸다.[1] 그의 그림에는 네덜란드 미술필사본 양식의 영향도 약간 엿볼 수 있다.[1] 이는 세밀한 묘사, 사실적인 인물과 사물 묘사, 풍부한 색채, 그리고 종교적 주제에 대한 집중에서 확인할 수 있다.[10] 크리벨리는 베네치아를 떠나 마르케 지방으로 이주한 후, 자신만의 아드리아 화풍을 재창조했다.[1] 이 그림에서 크리벨리는 선명하고 강렬한 선의 구현과 함께 대담하고 생생한 색상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기법으로 매우 섬세하고 복잡한 디테일이 가득한 그림이 탄생했다.[1] 크리벨리는 이 작품을 단일하고 통일된 표면을 가진 제단화로 제작하여 원근법에 대한 이해, 그리고 세부 묘사에 대한 뛰어난 감각을 보여주었다.[5] 그는 배경의 사물과 물체를 사용하여 그림자와 깊이감를 표현했고,[5] 이를 통해 그림 속에 실제 공간감을 조성하였다.[5] 크리벨리는 성모 마리아의 집에 책, 양초, 꽃병과 같은 많은 물건들을 방 주위에 배치했다.[5] 그가 이러한 물건들을 그리는 방식은 원근법과 그림자를 활용하는 그의 기교를 보여준다.[5] 그림 맨 아래의 사과와 오이는 크리벨리가 보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 자주 사용했던 트롱프뢰유 기법이다.[5] 두 과일 모두 그림의 그림자 때문에 그림 안팎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5] 이것은 그림이 평면적이면서도 동시에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는 효과를 만들어낸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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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학술적 논쟁

일부 비주류 이론에서는 그림 속 성령의 후광을 UFO로 해석하기도 한다.[11] 역사가 마시모 폴리도로에 따르면, 하늘의 원형 형태는 "구름 속 천사들의 소용돌이이며,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성화에서 신의 표현"이다. 폴리도로는 UFO라는 해석을 "다른 문화의 산물을 21세기 유럽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결과"이라고 비판한다.[12]

같이 보기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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