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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리아-셀레우코스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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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리아-셀레우코스 전쟁 또는 셀레우코스-마우리아 전쟁은 기원전 305년부터 기원전 303년까지 발발한 전쟁이다. 셀레우코스 제국의 바실레우스인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가 마우리아 제국의 황제 찬드라굽타 마우리아가 점령한 마케도니아 제국의 인도 사트라피를 되찾으려고 하면서 시작되었다.
전쟁은 인더스 계곡 지역과 아프가니스탄의 일부가 마우리아 제국에 합병됨과 동시에 찬드라굽타가 추구했던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고 두 세력 간의 결혼 동맹을 확보하는 결과로 끝났다. 전쟁이 끝난 후 마우리아 제국은 인도 아대륙의 지배적인 세력으로 부상하였으며, 셀레우코스 제국은 서부에서 경쟁자들을 물리치는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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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찬드라굽타 마우리아는 기원전 321년경 마가다의 통치자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는 갠지스 평원 지대의 통치자인 난다 왕조를 정복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성공적인 게릴라 원정으로 11년 동안 제국과 싸웠고 마침내 난다의 수도인 파탈리푸트라를 점령하였다. 이로 인해 난다 왕조가 멸망하고 궁극적으로 찬드라굽타 마우리아 황제 아래에서 마우리아 제국이 건국되었다.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의 페르시아 지방은 부유한 간다라 왕국과 인더스 계곡 주와 함께 모두 알렉산드로스 3세에게 복종하여 그의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알렉산드로스 사후 디아도코이 전쟁은 그의 제국을 분열 시켰다. 그의 장군들은 알렉산드로스의 제국을 장악하기 위해 싸웠다. 동부 영토에서 이 장군들 중 한 명인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가 이곳을 장악하고 셀레우코스 제국으로 알려진 것을 확립하기 시작하였다. 로마 역사가 아피아노스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항상 이웃 국가를 기다리며 무장하고 의회에서 설득력을 발휘한 셀레우코스는 메소포타미아, 아르메니아, '셀레우코스' 카파도키아, 페르시스, 파르티아, 박트리아, 아라비아, 타푸리아, 소그디아, 아라코시아, 히르카니아 및 알렉산드로스가 정복한 기타 인더스강 인근 민족들을 정복하였으며, 그의 제국의 경계는 알렉산드로스 이후 아시아에서 가장 광대한 영토를 확보했다. 프리기아에서 인더스강까지 전 지역이 셀레우코스의 지배를 받았다.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영토를 통치하는 사트라프를 임명했다. 마찬가지로 인더스 계곡을 통치하기 위해 사트라프가 임명되었다. 마우리아는 니카노르, 필리프, 에우데모스, 페이톤 이 4명의 사트라프가 관리하는 지역을 병합했다. 이것은 인더스 제방에 대한 마우리아의 통치를 확립하였다. 찬드라굽타의 승리는 셀레우코스가 자신의 동쪽 측면을 확보해야한다고 확신하게 만들었고, 마케도니아 영토를 그곳에 유지하기 위해 셀레우코스는 인더스 계곡에서 확장하며 부상하던 마우리아 제국과 갈등을 겪었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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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
전쟁의 세부 사항에 대한 기록은 부족하다. 아피아노스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셀레우코스)는 인더스를 건너 인도인의 왕 산드로코투스와 전쟁을 벌였는데, 그 하천 유역에 살면서 서로 이해하고 결혼 관계를 맺었다. 이러한 공격 중 일부는 안티고노스가 사망하기 전과 그 이후에 수행되었다.
실제로 전쟁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11] 군사 역사가 존 D. 그레인저는 셀레우코스가 인더스강을 건너면 "등에는 큰 강이 있고 그 앞에 적대적인 대륙이 있는 함정에 빠질 것"이라며 그 결과 인더스에서 훨씬 더 멀리 나아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레인저에 따르면 전쟁의 세부 사항은 불분명하지만 그 결과는 분명히 "결정적인 인도의 승리"였음에 틀림없다. 찬드라굽타가 힌두쿠시까지 셀레우코스의 군대를 몰아내고 그 결과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에 해당하는 큰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다.[12] 웨이틀리와 헤켈에 따르면, 전쟁 이후에 확립된 마우리아-셀레우코스의 우호 관계의 수준은 적대 행위가 아마도 "장기적이거나 비참하지 않았을 것"을 의미한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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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마우리아 제국과 셀레우코스 제국은 기원전 303년에 평화 협정을 맺었다. 이 평화 협정에서 셀레우코스 니카토르는 힌두쿠시, 펀자브 및 아프가니스탄 일부를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에게 양도하였다.[14] 대신에 셀레우코스는 찬드라굽타 마우리아로부터 500마리의 전투 코끼리를 선물받았으며, 이는 이후 서부의 디아도코이 전쟁에 영향을 미쳤다. 또한 셀레우코스와 찬드라굽타는 셀레우코스의 딸과 찬드라굽타의 결혼으로 결혼 동맹을 맺기로 합의하였다.
이 평화 협정은 서로에게 유익한 결과로 나타났다.[3] 셀레우코스와 마우리아 제국 사이의 경계는 이후 세대에 걸쳐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으며, 우호적인 외교 관계는 메가스테네스 대사와 찬드라굽타의 손자 아소카가 서쪽으로 보낸 사절 등으로 반영되었다. 찬드라굽타의 전쟁 코끼리 선물은 "사료의 부담과 귀환 행진을 완화시켰을 수도 있으며,"[10] 그의 권력에 대한 주요 위협이 이제 모두 제거되었기 때문에 대규모 군대의 규모와 비용을 적절하게 줄일 수 있었다.[15]
마우리아에게서 획득한 전쟁 코끼리로 셀레우코스는 이프소스 전투에서 그의 동맹국들과 함께 그의 라이벌인 안티고노스를 물리칠 수 있었다. 안티고노스의 영토를 자신의 영토에 합병한 셀레우코스는 기원전 64년까지 지중해와 중동에서 강력한 세력으로 존속할 셀레우코스 제국을 설립하였다.
아프가니스탄의 마우리아 영토 통제는 북서부에서 인도의 침략을 막는데 도움이 되었다.[16] 찬드라굽타 마우리아는 인도에서 자신의 통치를 데칸고원이 있는 남쪽으로 확장하였다.[14]
각주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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