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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플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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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플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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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루이제 플뢰게(독일어: Emilie Louise Flöge, 1874년 8월 30일~1952년 5월 26일)는 오스트리아의 패션 디자이너이자 사업가이다. 그녀는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평생의 동반자이자 뮤즈로 널리 알려져 있다.[1]

간략 정보 에밀리 플뢰게Emilie Flöge, 본명 ...

초기 생애

플뢰게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 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해양포말관 파이프 제조업자 헤르만 플뢰게(1837~1897)였으며, 세 명의 형제자매 가운데 넷째였다.[2] 그녀는 젊은 시절 재봉사로 일하며 의류 제작 기술을 익혔고, 누이 파울린이 설립한 드레스메이킹 학교에서 함께 근무하였다.[1]

경력

1904년경, 플뢰게는 누이 헬레네와 함께 빈 마리아힐퍼 슈트라세에 고급 의상실 슈베스터른 플뢰게(Schwestern Flöge)를 열었다.[1] 이 살롱은 조제프 호프만이 설계한 유겐트슈틸 양식의 인테리어를 갖추었으며, 빈 공방(Wiener Werkstätte)과 연계된 개혁복(Reformkleid) 스타일의 의상을 선보였다.[3] 그녀의 디자인은 코르셋을 거부한 헐렁한 실루엣과 넓은 소매, 장식적인 문양이 특징이었으며, 이는 빈의 여성 해방 운동과 결합되어 새로운 복식 문화를 형성하였다.[3]

구스타프 클림트와의 관계

플뢰게의 누이 헬레네가 클림트의 형 에른스트와 결혼하면서, 플뢰게는 클림트와 가족적 인연을 맺었다. 클림트는 1891년경부터 플뢰게를 자주 방문하였으며, 여름이면 플뢰게 가족과 함께 아터 호수 별장에서 시간을 보냈다.[4] 그는 여러 작품에서 플뢰게를 모델로 삼았으며, 《키스》(1907~1908)가 두 사람을 묘사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5] 1918년 클림트가 사망하자 그의 유언에는 “에밀리가 와야 한다”는 말이 남아 있었다고 전해지며, 그녀는 그의 유산 절반을 상속받았다.[2]

말년

1938년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 이후 유대인 고객을 잃으면서 살롱은 폐업하였다.[6]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 그녀의 거처가 화재로 전소되어 클림트의 유품과 의상 대부분이 소실되었다.[1] 1952년 5월 26일 빈에서 사망하였고, 시메링의 개신교 묘지에 안장되었다.[7]

유산

플뢰게의 복식 디자인은 오스트리아 모더니즘과 빈 분리파 미학의 상징으로 평가된다.[1] 그녀의 이름은 이후 여러 전시와 예술 프로젝트에서 재조명되었으며, 2024년 브뤼셀에서는 그녀의 직물 예술을 기념하는 조형물이 제막되었다.[8]

같이 보기

참고 문헌

  • Tretter, Sandra 외 (2016). Gustav Klimt, Emilie Flöge : Reforming Fashion, Inspiring Art. Gustav Klimt / Wien 1900 Foundation. ISBN 978-3-7106-0071-5.
  • Fischer, Wolfgang Georg (1992). Gustav Klimt & Emilie Flöge: An Artist and His Muse. Lund Humphries. ISBN 0-85331-607-4.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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