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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히클레베베르크 연합 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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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히클레베베르크 연합 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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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히클레베베르크 연합 공국(독일어: Vereinigte Herzogtümer Jülich-Kleve-Berg)은 1521년부터 1614년까지 신성 로마 제국 내에 존재했던 영토로, 율리히 공국, 클레베 공국, 베르크 공국동군연합으로 형성되었다. 1609년 발발한 율리히 계승 전쟁1614년 크산텐 조약 체결로 브란덴부르크로 대다수 영토가 넘어가면서 사라졌다.

간략 정보 율리히클레베베르크 연합 공국, 수도 ...

1815년 빈 회의 이후 프로이센 왕국의 행정구역인 율리히클레베베르크주라는 이름으로 부활해 1822년까지 유지된 적이 있다. 오늘날 이 지역은 독일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네덜란드헬데를란트주에 걸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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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요약
관점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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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데를란트를 포함한 율리히클레베베르크의 지도 (1540년경)

율리히클레베베르크 연합 공국은 신성 로마 제국의 여러 국가가 하나로 합쳐지며 탄생하였다. 우선 1423년 율리히 공국베르크 공국이 같은 공작을 모시는 한 국가로 통합되었고, 1521년에는 라벤스베르크 백국과 함께 통치가문의 대가 끊겼다.

당시 마지막 공작의 딸인 마리아 폰 겔데른이 유일한 적임자였는데, 살리카 법전에 따라 여성은 남편이나 후견인을 통해서만 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으므로, 1509년에 이루어진 정략결혼의 결과로 먼 친척관계였던 클레베 공작 요한 3세가 영토를 물려받게 되면서 네 지역을 아우르는 연합공국이 탄새앟였다. 당시 이 연합공국의 권역은 쾰른 선제후국뮌스터 주교령의 교회령을 제외한 오늘날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대다수 지역에 해당됐다.

빌헬름 공작

제2대 공작이었던 빌헬름 공작은 겔데른 공국의 통치를 놓고 신성로마제국 카를 5세 황제에게 반기를 들었다. 겔데른을 손에 얻으면 연합공국의 단절된 영토를 육로로 연결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황제에 대항하기 위해 빌헬름은 타국과의 여러 동맹 관계를 맺고자 하였는데, 이를테면 여동생 아나 폰 클레베 공녀잉글랜드의 헨리 8세와 결혼하여 잉글랜드와 율리히클레베베르크 간의 동맹을 주선코자 하였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벌어진 겔데른 전쟁에서 카를 5세의 제국군은 빌헬름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고, 빌헬름은 벤로 조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한편 빌헬름은 요새와 마을을 건설하며 봉토를 개발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또한 '연합특권' ( Privilegium Unionis)과 '계승특권' (Priviligium Successionis)의 두가지 법을 제정하였는데 연합특권은 율리히, 클레베, 베르크 공국이 계승 시 분할되지 않고 연합을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이 담겼으며, 계승특권은 남계가 단절될 경우 여계에게 공국을 상속시킨다는 규정이 담겼다.

계승 전쟁과 소멸

그러나 요한 3세의 결혼 이래 공국들을 통치하던 라 마르크가의 남계가 한 세기만에 단절되면서, 연합공국들의 상속권을 둘러싼 율리히 계승 전쟁이 촉발되었다. 빌헬름의 아들인 율리히클레베베르크 공작 요한 빌헬름이 자식을 남기지 않고 1609년 사망했는데, 이를 두고 요한 빌헬름의 두 누이가 상속을 주장했던 것이다.

또한 역대 공작들은 종교 개혁으로 인한 신앙 논쟁 속에서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인본주의에 영감을 받고 '중용'(라틴어: via media)의 자세를 유지하려 했지만, 두 누이의 상속인들은 서로 대립하는 편에 서 있었다. 여기에 루돌프 2세 황제와 베틴가의 작센 공작들도 영토 확장의 욕심을 부리며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는데, 특히 루돌프 2세 황제의 경우 합스부르크 네덜란드의 국력이 강화될 것을 두려워한 프랑스의 앙리 4세네덜란드 공화국의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던 시점이었다.

두 누이 가운데 루터교 신자였던 아나 폰 프로이센브란덴부르크 선제후 요한 지기스문트와 결혼했고, 로마 가톨릭 신자였던 아나 폰 클레베팔츠노이부르크 백작 필리프 루이스와 결혼했다. 이들 두 세력 간에 벌어진 율리히 계승 전쟁으로 빌헬름 공작 통치기에 발전했던 여러 부유한 봉토들은 양국 군대에 짓밟히며 파괴되고 말았다. 수년간의 전쟁 끝에 1614년 크산텐 조약이 체결되며 개신교도의 영토에 속하는 클레베, 마르크, 라벤스베르크는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으로 넘어갔고, 가톨릭교도의 영토에 속하는 율리히, 베르크는 팔츠-노이부르크로 넘어갔다. 한편 이 율리히 계승 전쟁은 훗날 30년 전쟁의 전조로 평가받는다.

필리프 루이스의 손자인 필리프 빌헬름은 1685년 팔츠 선제후가 되었고, 옛 베르크 공국의 수도도 팔츠 선제후국의 수도가 되어 1777년 바이에른 선제후국을 상속받을 때까지 이어졌다. 1701년에는 브란덴부르크 변경백 선제후가 프로이센의 국왕이 되었고, 클레베마르크 지역은 프로이센이 독일 서부에 처음으로 확보한 영토로서 프로이센 라인주의 일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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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통치자

같이 보기

  • 율리히클레베베르크주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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