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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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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화(車榮華, 1957년 6월 27일 ~ )는 전 KBO 리그 해태 타이거즈의 내야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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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활동
요약
관점
프로 입단 이전
차영화는 광주일고에 다니면서 고교야구 생활을 하는데 그는 2루수로 활동하면서 대통령배 고교야구 준준결승에서 역전 결승타를 때려내는 결정적인 역할[1]과 함께 많은 활동을 하다 1976년 실업 야구 팀 롯데 자이언츠로 진출한다.[2] 실업 리그에 진출한 그 해 그는 실업 야구 추계리그 최우수상을 받게 되고 나서[3] 그 다음 해인 1977년 일본 전지훈련에서 일본 프로 야구 팀 롯데 오리온스 가네다 감독에게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4] 그 해 차영화는 실업·대학야구 올스타전에 내야수로 출전과 함께[5] 1978년, 1979년 실업야구 올스타전에 뽑히기도 하였으며 이후 국가대표로 세계선수권대회같은 국제대회에도 출전하면서 많은 활약을 펼쳤다.[6][7] 1981년 KBO 리그 출범준비와 함께 프로야구 구단들의 스카웃할 선수들의 명단의 윤곽이 밝혀지면서 차영화는 해태 타이거즈로 스카웃된다.[8]
해태 타이거즈
1982년 KBO 리그 출범으로 그는 프로야구 원년 멤버와 함께 내야수로 연고 팀 해태 타이거즈의 창단 멤버로 입단하여 프로야구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9] 프로 원년에 2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받았다. 이후 프로 생활 1년차인 1983년 한국시리즈 그리고 1986년 한국시리즈, 1988년 한국시리즈의 우승맴버로 활동하고 나서 다음 해인 1989년에 선수 활동에서 은퇴한다.[10]
코치 및 감독 활동
은퇴 이후 해태 타이거즈는 차영화를 코치로 승격할 방침을 가졌고,[11] 은퇴한 다음 해인 1990년부터 차영화는 해태 타이거즈의 코치를 맡기 시작한다. 이후 해태 타이거즈 선수단과 함께 코치진과 해태 타이거즈 선수단이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모그룹을 돕기 위해 "해태 살리기 운동"에 참가하면서[12] 코치 활동을 진행하다 2000년 시즌을 마친 해태 타이거즈는 결국 자금난으로 인해 이듬해 시즌 중 기아자동차에 인수되어 KIA 타이거즈로 승계됨과 동시에 차영화 코치는 KIA 타이거즈의 수비코치를 맡았다가, 2006년 1년간 2군 감독과 겸하여 수비코치를 맡았고[13] 다음해 2007년에 단기간만 주루 및 작전코치를 진행하다 다시 2군 감독으로 복귀하였다. 2009년 시즌 종료 후 2010년부터 KIA 타이거즈는 2군 수비코치로 활동할 계획[14] 했으나 KIA 타이거즈의 3군 운영이 시작과 함께 차영화 코치는 현재 3군 야수코치로 활동하면서 지내고 있다.[15] 그러나 2013년 10월 4일 낙상 사고를 당해 골절상을 입고 현재 투병 중이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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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그의 아들은 현재 KBO 소속 심판인 차정구이며, 2011년에 KBO에서 교육을 받고 심판 자격을 취득했다.[17] 2006년 삼성 라이온즈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여 1시즌 간 활동했다.
수상 및 통산기록
출신 학교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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