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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몽
고려의 관료(907~987)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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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몽(崔知夢, 907년 ~ 987년 4월 2일(음력 3월 2일)[1])은 고려의 천문학자 및 관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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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낭주 최씨[2]의 시조[3]이며, 고려 초기 영암 출신 관료로 태조~성종 조의 왕권 안정에 공을 세웠다.
대광(大匡) 현일(玄一) 밑에서 사사해서 경서와 사서를 널리 섭렵했으며, 그 가운데 천문(天文)과 복서(卜筮)에 정통했다.[4] 그의 아버지 원보 최상흔(최흔)은 왕건이 궁예 휘하에 서해장군으로 있었던 시절 인연을 맺은 바가 있다.[5]
고려 건국 이전에는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할 것을 예지했다.[4][6][7] 원레레 이름은 총진(聰進)이었으나 열여덟의 젊은 나이에 태조에게 불려가 태조가 삼한(三韓)을 통일하게 될 징조라고 꿈을 해석해서 태조에게 칭찬을 받고 지몽(知夢)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왕건이 한반도를 통일하게 되면서 개국공신이 되었다.
태조 이후에도 고려 왕조를 지속적으로 섬겼으며, 고려 왕조의 충신 중 한명이었다. 특히 왕규의 혜종 시해 음모를 예측하여 혜종을 암살의 위기에서 구했다.[8][9]
광종 말년에 왕권 강화책에 따라 잠시 벼슬에서 퇴출되었다가 980년(경종 5년)에 임금에게 왕승이 반역을 꾀할 것을 대비하도록 했다. 이 사건 이후 광종은 최지몽에게 어의와 금으로 만든 허리띠를 하사했다. 또한 대광내의령 동래군후 식읍일천호 주국(大匡內議令東萊郡侯食邑一千戶柱國)에 봉해지고 복직되었다.[10]
987년(성종 6년) 8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으며, 태자태부로 증직되고 민휴(敏休)의 시호를 받았다.[4] 그의 고향에는 지금도 사당이 남아 있어 그를 모시고 있다.[11][12]
고려의 개국공신과 천문학자라는 점에서 고려 및 왕건과 관련된 드라마에 자주 등장한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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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
아버지의 이름은 최상흔(崔相昕)이다.[4] 그의 후손 중 조선 시대 인물로는 최몽암(崔夢嵒: 1718년 8월 6일(음력 7월 10일)~1802년 11월 22일(음력 10월 27일))[14]이 있다.
최지몽이 등장하는 작품
전기 자료
- 《고려사》 권92, 〈열전〉5, 최지몽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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