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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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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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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아상(프랑스어: croissant)은 초승달 모양의 페이스트리이다.[1] 크루아상이라는 이름 자체가 초승달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간략 정보 종류, 코스 ...

오스트리아의 발효빵인 키플리 모양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버터를 듬뿍 사용하여 발효한 뒤 층층이 쌓는 페이스트리 기법으로 제작된다.[2] 효모로 발효한 반죽은 의 특징을 지니고 있지만, 바삭하게 구워 과자에 더 가깝다. 초승달 모양으로 만든 과자나 케이크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초승달 모양의 빵이 있었고, 초승달 모양의 케이크는 고대 후기부터있었다.[3] 오늘날의 크루아상은 20세기 초, 프랑스 제빵사들이 지금과 같은 겹겹이 쌓는 반죽을 개발하며 만들어졌다.[4]

1970년대 후반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는 냉동식품 형태의 크루아상이 만들어졌다. 미국식 패스트 푸드에 대응하기 위해 고안된 이 방법은 공장에서 대량으로 제작한 반제품을 전국의 체인점에 공급하면 각지의 점포는 굽기만 하여 팔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라 크루아상테리"와 같은 프랜차이즈가 유명하다.[5] 2008년 현재 프랑스 베이커리와 파티스리에서 판매되는 크루아상의 30-40%는 냉동 반죽을 공급받아 구운 것이었다.[6]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아침 대용으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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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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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당시 파리의 비엔나 제빵점

적어도 15세기 무렵 부터 오스트리아에서는 초승달 모양의 빵인 키플리를 만들어 먹었다.[7][8] 키플리는 그저 평범한 빵을 초승달 모양으로 만든 것부터 견과류나 다른 재료로 속을 채운 것까지 다양하게 만들었다.[9]

1838년 또는 1839년에 오스트리아 포병 장교 출신의 아우구스트 장은 파리 리슐리외 거리 92번지에 비엔나 제빵소("Boulangerie Viennoise")를 설립했다.[8] 그는 여기서 크루아상으로 이름붙인 빵을 만들어 팔았다. 초기에는 오스트리아의 키플리와 다를 바 없었지만 1095년 무렵에는 오늘날과 같은 방식으로 크루아상을 만들었다.[10] 그러나 이곳이 원조라고 단정짓기는 힘들다. 겹겹이 반죽을 하지 않은 크루아상 제작법은 19세기에 알려져 있었으며 1850년 무렵 프랑스에는 이미 크루아상이라 불리는 빵이 여럿 있었다.[11]

장은 1848년 오스트리아로 돌아가 언론사를 차렸지만, 제빵소는 파리에서 계속 인기를 끌었고 크루아상은 점차 비엔나 제빵소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12] 1869년 무렵 크루아상은 아침 식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되었다.[13] 1872년 찰스 디킨스는 자신이 발간하던 《올 더 이어 라운드》에서 크루아상이 노동자의 한끼 식사에서 군인의 보급식량에 이르기까지 빠지지 않는 품목 가운데 하나라고 소개하였다.[14]

오늘날 크루아상의 특징인 퍼프 페이스트리 기술은 17세기 후반 프랑수아 피에르 라 바렌이 《르 쿠시니에 프랑수아》에서 레시피를 설명하였다. 당시 페이스트리는 단독으로 만들어지기 보다는 무언가를 담는 껍질로 쓰였다. 그러나 이러한 페이스트리 기법과 크루아상이 엮인 것은 20세기 초반이 되어서였고 그 이전에는 서로 별개의 요리였다. 1906년 파리에서 콜롬비에가 발간한 《새로운 요리백과》에는 오늘날과 비슷한 크루아상 레시피가 수록되어 있다.[15] 현대의 크루아상 레시피는 1915년 실뱅 클라우디우스 고이가 발간한 《앵글로 아메리카 요리》로 알려져 있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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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각주

참고 문헌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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