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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베 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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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베 공국(독일어: Herzogtum Kleve; 네덜란드어: Hertogdom Kleef)은 중세시대 신성 로마 제국의 한 국가이다. 지금의 독일 라인란트 북부 니더라인 양안에 위치하였으며, 동쪽으로는 뮌스터 주교후국의 영토와 서쪽으로는 브라반트 공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었다. 수도는 클레베, 주요 마을로는 베젤, 칼카르, 크산텐, 에미리히암라인, 레에스, 뒤스부르크가 있었다.
클레베 공국의 역사는 남쪽에 이웃한 국가였던 율리히 공국과 베르크 공국, 그리고 헬데를란트와 베스트팔렌의 마르크 백국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국의 영토 범위는 오늘날 독일의 클레베군, 베젤군, 뒤스부르크시와 네덜란드의 림뷔르흐주, 노르트브라반트주, 헬데를란트주 일대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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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요약
관점
11세기 초 신성 로마 제국의 하인리히 2세 황제는 네이메헌의 황제궁정 주변에 자리한 제국 직속의 삼림지대인 클레버라이히스발트 (Klever Reichswald)를 겔데른과 니더로트링겐 지역 영주들에게 하사하여 관할하도록 했다. 이를 계기로 동시대 문헌에서 '클레베 백국'(독일어: Grafschaft Kleve, 네덜란드어: Graafschap Kleef)이라는 표현이 기록에 처음 언급된다. 클레베 백국의 초대 백작은 디트리히 1세로 1092년부터 1119년까지 통치하였다. 1283년 림뷔르흐 계승 전쟁에 참전하여 쾰른 선제후국의 국력을 약화시키는 데 한몫하였으며, 1355년에는 헬데를란트 공국에 속했던 제베나르가 클레베 백국으로 넘어갔다.
1368년 요한 백작이 사망하자 공국의 영토는 조카 아돌프 3세가 물려받게 되었다. 이어 1391년 아돌프 3세의 형이었던 마르크 백국의 엥겔베르트 3세 백작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두 백국은 라 마르크가의 통치하에 동군연합을 이루게 되었다. 1417년 지기스문트 황제는 아돌프 1세 백작을 공작에 봉하는 동시에 신성로마제국 제후로 승격시켰고, 클레베 백국은 공국이 되었다.
클레베-마르크는 1500년 제국 내 라인강 하류-베스트팔렌 관구의 주요국으로 떠올라 뮌스터 주교후와 경쟁했다. 1511년 요한 2세의 아들 라마르크 요한 3세가 마리아 폰 율리히베르크와 결혼하면서 마리아의 봉토가 클레베로 편입되었다. 이후 장인인 빌헬름 4세 공작이 사망하자, 요한은 아내를 통해 율리히와 베르크의 봉토를 상속받았다.
1521년 요한 3세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클레베 공작이 되면서 율리히, 베르크, 클레베, 마르크의 각 지역은 율리히-클레베-베르크 연합 공국을 이루게 되었다.[1] 1539년 요한 3세의 아들로서 공작에 오른 빌헬름은 카를 5세 황제와 헬데를란트 소유권을 놓고 다투는 과정에서, 잉글랜드 왕국의 헨리 8세의 지지를 얻기 위하여 1540년 여동생 아나 폰 클레페 공녀 (1515년~1557년)를 시집보냈으나 몇 달 가지 못하고 되돌아왔다.[2]
- 클레베의 슈바넨부르크성 (백조성)
- 클레베-마르크 시절의 문장
요한 빌헬름은 빌헬름의 아들이자 율리히-클레베-베르크 최후의 공작으로, 1609년 후사 없이 사망하였다. 이에 요한 빌헬름의 두 누나인 프로이센 공작부인 마리아 엘레오노라와 노이부르크 백작부인 안나가 상속을 주장하며 율리히 계승 전쟁이 발발했다. 마리아 엘레오노라의 딸 마리아는 브란덴부르크 변경백작과 혼인한 관계였고, 노이부르크는 비텔스바흐가의 방계 지류였다. 1614년 크산텐 조약에 따라 브란덴부르크는 클레베-마르크를, 노이부르크는 율리히-베르크를 넘겨받게 되었다.[3] 이로써 호엔촐레른가 변경백들은 라인란트에 첫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러나 클레베 공국의 상당수 영토는 1672년 프랑스-네덜란드 전쟁을 계기로 네덜란드 연합주로 넘어갔다. 1666년에는 대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다스리던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에 편입되었고,[4] 1701년 프로이센 왕국의 일부가 되었으나, 7년 전쟁 (1757년~1762년) 중에는 프랑스군이 점령하기도 했다.
1795년 바젤 조약 체결로 라인강 서쪽의 클레베 공국과 베젤은 프랑스에 할양되어 프랑스의 로에르주 (Roer)의 일부가 되었다. 클레베 공국의 나머지 영토는 1803년~1805년에 점령되어 괴뢰국인 베르크 대공국에 편입되었다. 1815년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옛 클레베 공국은 프로이센의 율리히클레베베르크주를 이루었고, 1822년 라인 대공국과 병합되어 프로이센의 라인주가 되었다.[5] 한편 헤넙, 제베나르, 하위선 시는 1815년 빈 회의의 결과로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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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통치자

클레베 백작

바센베르크가
클레베 가문은 플람스인 귀족이었던 루트거 폰 안투엥 (Rutger von Antoing)의 후계를 자처하였다. 루트거는 1020년경 클레베 인근의 제국 영지에 이어 툼부르크 성을 봉토로 하사받았다. 문헌으로 확인되는 클레베 가문의 첫번째 영주는 1092년 디트리히 (Dietrich)로, 자료에 따라 이름 뒤에 2세 또는 3세를 붙인다.[6]
- 1092년~1117년/1118년 디트리히 2세 [3세][6]
- 1117년~1134년 아르놀트 1세 - 고트프리트 폰 뢰벤 백작의 딸 아이다와 결혼[6]
- 1134년~1150년 아르놀트 2세[6]
- 1150년~1172년 디트리히 3세 [4세] - 알레이디스 폰 줄츠바흐와 결혼[6]
- 1172년~1193년 디트리히 4세 [5세] - 마르가레테 폰 홀란트와 결혼[6]
- 1193년~1202년 아르놀트 3세 - 알레이디스 폰 하인스베르크와 결혼[6]
- 1202년~1260년 디트리히 5세 [6세][6]
- 1260년~1275년 디트리히 6세 [7세][6]
- 1275년~1305년 디트리히 7세 [8세][6]
- 1305년~1310년 평화로운 자 오토 1세[6]
- 1310년~1347년 경건한 자 디트리히 8세 [9세][6]
- 1347년~1368년 요한[6]
라 마르크가
- 1368년~1394년 마르크의 아돌프 3세
- 1394년~1448년 아돌프 1세 - 아돌프 3세의 아들
클레베 공작
라 마르크가
- 1394년~1448년 클레베 공작 아돌프 1세
- 1448년~1481년 요한 1세 - 아돌프 1세의 아들
- 1481년~1521년 경건한 자 요한 2세 - 요한 1세의 아들
- 1521년~1539년 평화로운 자 요한 3세 - 요한 2세의 아들
- 1539년~1592년 부유한 자 빌헬름 - 요한 3세의 아들
- 1592년~1609년 요한 빌헬름 - 빌헬름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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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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