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령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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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령태자(孝靈太子, 1149년 6월 4일(음력 4월 27일) ~ ? )는 고려 시대의 왕족이다. 의종과 장경왕후의 아들이다. 1170년 정중부, 이의방에 의해 부왕 의종이 폐위될 때 왕태자에서 폐위되었다.
생애
가계
1149년(의종 원년)[1] 4월 27일, 고려 제18대 왕인 의종과 장경왕후의 아들로 태어났다. 성은 왕, 초명은 홍(泓), 이름은 기(祈), 본관은 개성이다[2]. 명종과 신종 등의 조카이며, 희종과 강종 등은 친사촌이다.
효령태자의 모후 장경왕후는 종실 강릉공 왕온의 딸로, 명종비 광정태후, 신종비 선정태후와 친자매간이다. 따라서 광정태후와 선정태후는 효령태자의 숙모인 동시에 이모가 된다[3].
태자 시절
1153년(의종 7년) 음력 4월 20일 왕태자로 책봉되었다[4]. 이후 1155년(의종 9년) 음력 5월 임극충이 태자의 빈객이 되었으며[5], 1156년(의종 10년) 음력 3월에는 김존중이 태자소보에[6], 이해 음력 윤10월에는 이지무가 태자태보가 되었다[7].
1162년(의종 16년) 음력 11월 10일 관례를 치렀고[8], 1168년(의종 22년) 음력 1월 26일 종실 강양공 왕감의 딸을 태자비로 맞이하였다[9].
그러나 1170년(의종 24년) 음력 9월 1일, 평소에 환관 중심으로 정치를 하던 의종에게 불만을 품은 무인 정중부 등이 환관 10여 명을 살해하고, 의종을 군기감으로 옮긴 후 폐위시키는 정변을 일으켰다. 이때 태자는 영은관에 유폐되었다[10]. 그리고 바로 다음날 의종은 거제현[주 1])으로 쫓겨가고, 태자는 진도현[주 2]으로 쫓겨갔으며, 태손은 살해되었다[11]. 이후 의종은 3년 뒤인 1173년(명종 3년) 음력 10월 1일 이의민에 의해 시해되었는데[12], 태자의 생사 여부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다. 시호는 효령태자(孝靈太子)이다.
가족 관계
효령태자가 등장한 작품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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