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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소로
코트디부아르의 제7대 총리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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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키그바포리 소로(프랑스어: Guillaume Kigbafori Soro, 1972년 5월 8일~)는 코트디부아르의 정치인으로, 2007년 4월부터 2012년 3월까지 코트디부아르의 총리를 지냈다. 총리 재직 이전에 소로는 코트디부아르 애국운동을 이끌었으며, 이후 코트디부아르 신세력의 사무총장으로 활동했다.[1][2] 2012년 3월, 소로는 코트디부아르 국회의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2019년 2월, 해당 직위에서 물러났으며, 같은 해 6월, 알라산 우아타라 대통령의 후임으로 출마할 것을 발표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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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소로는 코트디부아르 북부 페르케세두구 출신의 세누포족으로, 가톨릭 신자이다. 네 자녀의 아버지인 그는 실비 타그로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코트디부아르 민주당(PDCI) 소속이었다.[4]
정치 경력
2003년 1월, 평화 협정 이후, 소로는 통신부 장관으로 정부에 임명되었다.[5] 코트디부아르 신세력 소속 장관들은 2003년 9월부터 내각 회의 보이콧을 시작했으며, 2004년 1월에 복귀했다.[6] 2004년 3월, 아비장에서 열린 야당 시위가 폭력적으로 진압된 후, 로랑 그바그보 대통령은 소로와 다른 두 명의 장관을 해임했다. 소로는 이를 평화 협정에 대한 그바그보의 사실상의 쿠데타라고 비판했다.[7][8] 2004년 8월 9일, 소로는 다시 장관직에 복귀했다.[9]
2005년 12월 28일, 소로는 샤를 코낭 바니 총리에 의해 재건 및 재통합 장관으로 임명되었다.[10] 그는 2006년 3월 15일, 이 직책으로 첫 내각 회의에 참석했다.[11]
총리직
2007년 3월 4일에 체결된 평화 협정 이후, 소로는 총리 후보로 거론되었고 로랑 그바그보의 지지를 받았다.[12] 3월 26일에 발표된 인터뷰에서 소로는 그 직책을 맡을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13] 그바그보는 3월 29일에 그를 공식적으로 임명했고[14][15], 소로는 4월 4일에 취임했으며[16] , 그의 32명의 장관이 4월 7일에 임명되었으며, 그 중 많은 장관들이 전임자 밑에서 근무했다.[17][18]
4월 13일, 연설에서 소로는 반란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모두와 모든 사람을 대표하여" 사과했다.[19] 7월 30일, 소로와 그바그보는 전쟁 종식을 상징하는 무기를 불태우는 "평화의 불꽃" 군축식에 참여했다.[20][21]
평화 협정으로 인해 소로는 2010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되었고, 그는 2008년 3월, 인터뷰에서 《쥬느 아프리크》에게 선거 후 자신의 정치적 미래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로와 그바그보는 비밀 협정을 맺어 소로가 선거에서 그바그보를 지지하고, 그 대가로 그바그보가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소로를 지지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소로는 이를 "가십"이라고 일축하며 자신을 "선거 과정의 중재자"라고 묘사했다. 또한 코트디부아르 신세력은 어떤 후보도 지지하지 않을 것이며, 그 구성원들이 원하는 누구에게나 투표할 수 있다고 말했다.[22]
그바그보 연합 헌법 위원회가 2010년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그바그보가 취임 선서를 하자, 소로는 야당 후보 알라산 우아타라를 지지하며 총리직을 사임했다. 우아타라는 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당선자로 선언되었고, 그는 경쟁 의식에서 취임 선서를 한 후 소로를 다시 임명했다.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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