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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여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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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여성주의는 대한민국 내에서 발생한 여성 억압 원인과 상태를 분석하고 한국 여성의 해방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운동 또는 그 이론이다. 한반도 내에서의 여성주의 운동은 1920년대부터 등장하였다.[1] 이들 여성주의 운동은 자유주의 여성 운동, 사회주의 여성 운동, 기독교 여성 운동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이 중 자유주의 여성 운동가들과 사회주의 여성 운동가들은 결혼 제도, 정조론을 비판하였는데, 자유주의 여성 운동가가 결혼의 자유, 연애의 자유, 성적 자유를 주장한 반면 사회주의 여성 운동가는 가정이나 순결에서의 해방을 주장하였다.

역사

요약
관점

일제 강점기

한국의 여성주의는 1920년대부터 등장하였다. 3.1운동 이후에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상하이 한인애국부인회와 같은 여성 단체의 활동이 두드러졌다.[2] 1927년 사회주의 진영의 여성들과 기독교 여성들이 연합해, 여성운동의 전국적 통일기관인 근우회를 만들었다. 근우회를 중심으로 ”한국에서 근대적 의미의 여성운동이 시작됐다.”[2] 그러나 1928년 중반 이후 운동노선 상의 갈등으로 기독교 여성들이 근우회를 탈퇴하고 독자적인 운동 노선을 걷기 시작한다.[1] 이를 계기로 근우회는 ”해체 일로를 걷기 시작했다.”[2]

1945년 ~ 1960년대

1945년에 일본 제국주의에서 해방된 이후의 대한민국의 여성주의 운동은 발전하기 시작하였다.[3] 하지만 해방 직후에는 ”이념대립으로 인해 여타 운동의 부분으로 전락하여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기 어려웠다.”는 평가도 있다.[4] 1959년에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발족하면서 운동을 주도하였고, 대한YWCA, 대한부인회, 대안여성교육동지회, 한국부인상조회, 새여성회,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재향군인회부녀부 등도 함께 활동하였다.[2]

민주화투쟁 시기

1970년대 여성운동은 노동운동과 밀접한 연관 속에서 전개되었다. 1979년 YH노조의 신민당사 농성 투쟁은 유신 말기 밑에서부터 일어난 대표적인 여성노동자 투쟁으로 기록되어 있다.[5] 1980년대 중반 이후 서양의 제2세대 여성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은 대한민국의 여성주의 운동은 상당한 진전을 보였으며, 이와 함께 대한민국 여성의 지위도 개선됐다.[3] 1987년 진보적 여성운동으로 출발한 한국여성단체연합은 1995년 '성주류화 전략'[6]을 채택해 정권과 파트너십을 맺게 된다.[7]

2000년 이후

민주화 운동이나 노동운동과 밀접하게 협력하던 진보적 여성운동의 또다른 분기점은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 활동으로,[8] 2000년 7월부터 2003년 10월까지 활동한 이 모임은 대학 총학생회, 노동조합, 사회운동 단체에서 벌어진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폭력 사건을 조사해 17명의 성폭력 가해 혐의자를 '운동사회 성폭력 가해자 명단'이라는 이름으로 공개하였다. 이는 이른바 사회운동, 노동운동, 인권운동 진영 내부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왔으며, 특히 성폭력 또는 성폭력 의혹 사건을 공개하면서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관점을 채택한 것은 논란이 있었다. 여기서의 피해자 중심주의는 “남성의 시각과 언어로 구성되어왔던 '객관성'을 해체하고, 성폭력을 여성의 시각에서 재구성하는 작업”을 의미한다.[9] 100인 위원회는 2003년 10월 활동백서를 발간하는 것으로 활동을 마무리한다.[10] 이 사건은 여성운동이 대체적으로 노동운동 단체나 사회운동 단체와 다른 노선을 걷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한민국 대통령들 중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페미니스트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내가 나름대로 페미니스트적인 관점과 행동을 실천할 수 있었던 건 아내의 조언 덕이었다"며 이희호 여사의 영향을 받아 페미니스트가 되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11]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표방한 바 있다.[12] 문 대통령은 대선 공약집 '나라를 나라답게'에서 '남녀 동수 내각 구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고, 내각에서의 여성 장관 비율을 OECD 평균[13] 수준인 30% 선으로 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약속은 정권 출범 초에 장관급 19명 중 6명을 여성으로 채우면서 이행되었다.[14]

2015년 이후

메갈리아의 등장으로 이른바 '페미니즘 리부트'라 불리는 페미니즘 붐 현상이 발생했다.[15] 메갈리아에서 소라넷 폐지 운동이 벌어졌고 디지털 성범죄 아웃이 창설됐다.

2016년, 메갈리아는 여러 논쟁을 거치며 분열되었고 대표적인 분화 사이트로 워마드가 탄생했다.[16][17][18] 같은 해 발생한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은 2015년 이후의 대한민국 여성주의 운동에서 결정적인 분기점으로 손꼽힌다.[19]

2018년,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열려 '여성’이라는 단일 의제로 국내에서 열린 사상 최대 규모 집회 기록을 돌파했다.[20][21] 이후 BBC, 뉴욕 타임스, 더 가디언 등 해외언론에 '탈코르셋' 운동이 보도됐다.[22][23][24]

2019년, 추적단 불꽃n번방 사건을 최초 보도했고, 프로젝트 리셋이 창설됐다. 2020년, 여성의당이 창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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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문화검열에 대한 옹호

대한민국의 주류 여성주의는 안티포르노 페미니즘이다. 이에 따라 주류 여성주의는 포르노그래피를 포함한 에로 콘텐츠에 대한 억압을 옹호하고 있다.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억압

안티포르노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은 대한민국의 페미니스트들은 포르노그래피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여 성범죄를 포함한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지고, 포르노 자체가 여성 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2024년에 개최 예정이었던 성인 축제인 K-XF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했다.[25]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성인만 출연하면서 상호 동의하에 촬영된 포르노그래피를 성범죄 또는 여성 대상 폭력과 동일시하는 것에 대한 비판을 받고 있다.[26]

이러한 대한민국 여성주의의 경향에 대해서 반박하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반박 연구는 포르노의 접근성 증가가 성폭력과의 상관관계가 없거나 반박한다.[27]

성적 대상화에 대한 비난

대한민국의 주류 페미니즘은 성적 대상화에 대해서 비난한다. 성적 대상화가 성차별과 성범죄 등 여성을 향한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그들은 2024년에 개최될 예정이었던 "2024 KXF 더 패션" 개최 시도에 적극적으로 반대했고, 이로 인해 해당 성인 페스티벌의 개최가 무산되었다.[28][29]

이에 대한 비판 측 의견이 있는데, 성 상품화 및 성적 대상화의 정의를 극단적으로 한다는 점, 성 상품화 또는 성적 대상화가 성차별과 성범죄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근거가 약하고 이를 반박하는 연구 결과도 있다는 점, 그리고 대한민국을 제외한 선진국들이 노골적인 스트립쇼와 포르노그래피를 합법화했다는 점에서 그러한 관점에 대해 비판을 제기한다. 또 다른 비판점은 성인의 자발적인 동의 하에 이루어지는 성적 대상화를 범죄와 동일시한다는 점이다. 비판 의견은 "카페에서 용모가 준수한 알바생을 고용하여 손님을 끌어오는 것도 성 상품화이며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K-POP 산업은 성공한 성 상품화의 사례"라며, 성문화 산업에는 어두운 측면에 있지만, 그러한 측면들을 해결해야 할 뿐 성문화 산업 전체를 범죄의 전조로 여기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이자 비약이라고 지적했다.[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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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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