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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싱가포르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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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싱가포르 관계(말레이어: Hubungan Malaysia–Singapura)는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의 양자 관계에 대해서 다루며, 두 나라의 정치, 경제, 그리고 사회와 문화 영역에 대해서 설명한다. 두 국가는 모두 영연방 및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의 회원국이다.
역사
요약
관점
고대와 중세
믈라카 해협을 아우르는 말레이반도와 자와섬, 보르네오섬은 여러 국가들이 흥망성세를 경험한 곳이었다. 7세기에는 스리위자야의 영토에 포함되었으며, 이후 마자파힛 제국 등이 이 지역을 다스렸다.[1][2][3] 15세기 즈음에 이르려, 동남아시아 서부로부터 이슬람교의 유입에 따라서 이 지역은 무슬림의 국가인 술탄국이 여럿 등장하였다.[4] 대표적인 술탄국 중 하나가 바로 믈라카 술탄국이며[5], 14세기까지 존속하였던 싱가푸라 왕국과 혈통이 이어져 있다.[6][7] 이후 조호르 술탄국이 이 지역을 다스렸다.[8][9][10]
근대
영국의 식민지

현대적인 의미에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가 건국되기 이전에, 이 지역은 대영제국의 식민지였으며, 싱가포르는 토머스 스탬퍼드 래플스가 이 지역을 개발하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 특히 영국 동인도 회사가 피낭섬을 할양받고, 싱가포르와 믈라카를 통합하여 해협 식민지로 다스렸다.[11] 반면에 말레이시아는 영국이 보호령을 선언하고, 말레이 연합주와 말레이 비연합주라는 이름 아래 술탄들의 권력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영국의 영향력과 지배력 아래 두었다.[12][13]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이 지역은 말레이 전역으로 분류되어, 영연방군과 일본군 간 산발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이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영연방군의 항복과 함께, 말레이반도의 일부가 마라야, 즉 일본 제국의 영토로 편입되기도 하였다.[14] 2차 대전이 끝난 이후에는, 이 지역은 다시 영국의 식민지로 반환되었다. 영국령 말라야는 이후 말라야 연합은 말라야 연방으로 개편되었으며, 1957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싱가포르, 사라왁주, 사바주가 말라야 연방에 동참하면서 1963년 말레이시아로 새롭게 개편되었다.[15][16] 이 당시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연방 안에 싱가포르주라는 이름으로 1963년부터 1965년까지 편입되어 있었다. 두 나라가 하나의 나라였다는 점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항공의 존재에서도 잘 확인된다.
말레이시아 연방과 싱가포르주
리콴유와 툰쿠 압둘 라만은 국가를 공동 운영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었으며, 특히 인종 문제에 있어서 상이한 시각을 드려냈다.[17][18] 리콴유는 다민족 평등주의와 세속주의를 주장하며, 모든 말레이인이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툰쿠 압둘 라만은 오늘날 부미푸트라 정책으로 잘 알려진 일종의 말레이 민족 우선주의을 주장하며, 말레이인이 원주민로서 특권을 가져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19] 이는 일종의 중국계 싱가포르인과 말레이시아인 간 갈등이라는 논란적인 주제였으며, 싱가포르 내 인종 간 폭동이 발생하면서 갈등과 상황의 심화를 발생시켰다.[20][21] 특히 국내 정치적 측면에서는, 말레이시아 의회 내 인민행동당과 통일말레이국민조직 간 갈등도 존재하였다.[22] 인종적인 문제와 별개로,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경제와 산업 정책에서도 다른 입장을 보였으며, 싱가포르의 자유 무역 및 개방경제 노선은 말레이시아의 보호무역 및 농업 중심 경제 노선과 일치되기에는 어려운 것이었다.[23]
1965년 싱가포르의 분리 독립
이렇게 정치 및 경제 체제에서 방향성 차이와, 인종 간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말레이시아 내각은 1965년 8월 7일에 싱가포르를 말레이시아로부터 분리를 논의하고, 8월 9일 싱가포르의 분리독립을 승인하였다.
이후

두 나라는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문화적으로 공유하는 점이 많지만, 분리 이후 다른 노선을 걸었다.[24][25] 싱가포르는 비동맹 운동에 가담하였으나, 말레이시아는 이슬람교를 바탕으로 한 외교 노선을 운영하였다.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국경이 확정되고, 한동안 인적 왕래와 이주 등 교류가 제한되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양국 관계는 1960년대보다 누그러졌으며, 리콴유와 말레이시아 총리 마하티르 빈 모하맛의 정상회담을 통해서 양국 간 협력이 논의되었다.[26][27] 두 국가의 관계는 경쟁하면서도, 서로 의존하는 모습을 보여줬다.[28] 1990년대에 들어 두 국가 간 상호 무역량이 증대되고, 국방 협력을 시작하는 등 관계 개선을 지속적으로 이뤄냈다. 2000년대에는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의 최대 투자국 중 하나 되었으며, 양국 간 경제 의존도가 심화되었다.
ASEAN의 창립국
동남아시아 조약 기구를 제외하고,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지역주의 차원에서 별다른 다자주의를 바탕으로 한 지역협력이 가시적으로 드려나지 않았다. 그러나 1967년, 정치·경제 협력 강화, 공산주의 확산 방지, 지역 평화와 안정 유지 등을 목표로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이 창립되었으며[29],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창립국으로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30][31]
갈등
지리적으로 인접한 두 국가의 특성 때문에, 해상 및 영토에 관련된 분쟁이 일부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페드라브랑카섬 분쟁으로 섬에 대한 영유권을 두고 두 나라는 관계 개선에 대한 어려움을 겪었다.[32][33][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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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육로
조호르-싱가포르 코즈웨이와 말레이시아-싱가포르 세컨드 링크 등 육로로 연결되어 있다. 두 국가 간 고속철도 건설이 논의되고 있다.
항공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과 싱가포르 창이 공항 간 직항이 여러 개 개설되어있다.
같이 보기
- 말레이시아의 대외 관계
- 말라야 연방
- 싱가포르의 대외 관계
- 분리독립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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