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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니아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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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니아 동맹(고대 그리스어: Ἴωνες Íōnes[*], κοινὸν Ἰώνων κοινὴ σύνοδος Ἰώνων, 라틴어: commune consilium)은 범이오니아 동맹이라고도 불린, 기원전 7세기 중반 멜리아 전쟁이 종전된 무렵에 형성된 국가 연합으로[2] 이오니아해의 열두 개 그리스 도시 국가 (도데카폴리스)로 구성되었다가, 마침내 스미르나가 가입하며 13개 국가가 되었다. 이오니아 동맹은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를 거쳐 서기 3세기까지 이어졌다.

개요
요약
관점

헤로도토스가 언급한 고대 도시국가 22개는 다음과 같다:[3]
- 밀레토스, 미우스, 프리에네 — 모두 카리아 지역 (소아시아의 한 지방)에 위치했다. 이 그리스 세 도시는 동일한 이오니아 하위방언을 구사했다. 기원전 7세기를 시작으로, 카리아 지역의 그리스-카리아 이중언어 구사자들은 카리아인들이 옛 조상들의 땅을 그리스인들과 우호적으로 나누어 사용하였다고 주장했다. 카리아어는 그리스어가 아닌, 발칸반도에서 넘어온 사람들에 의해 밀려나가기 전 아나톨리아 지역을 지배했던 아나톨리아어군의 잔재이다. 카리아인들은 청동기 시대 이래로 그리스스인들과 공존했던 것으로 보인다. 카리아인들은 기원전 1세기에 모습을 감추면서, 그 시기 무렵에 완전히 헬레니즘화가 이뤄졌음을 시사한다. 카리아인들은 해상 무역 활동에서 이오니아인들의 동반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에페소스, 콜로폰, 레베도스, 테오스, 클라조메나이, 포카이아 — 모두 리디아 혹은 현재 이오니아로 알려진 지역에 위치했으며 (두 지역 역시 소아시아에 위치했으며, 리디아는 이오니아와 상대적으로 내륙까지 뻗어 있었다), 별개의 방언을 사용했다;
- 히오스 (섬)와 에리트라이 (소아시아) — 공통 방언을 사용
- 사모스 (섬) — 고유 방언을 사용.
본래 이오니아 지역과 접해 있던 아이올리스인들의 도시인 스미르나는 동맹 가입을 요청하여 훗날 가입하게 되는데, 이는 기원전 289/8년의 칙령에서 처음 확인된다.[4] 이오니아 동맹은 서기 3세기까지 후대에도 13개 회원국으로 여전히 확인되나, 이것은 사실보다는 전승을 반영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시노이키즘 및 여러 도시들의 중요성 변동으로 인해, 일부 도시는 시간이 흘러 다른 도시들에 통합되기도 했다 (예시로 미우스는 밀레토스의 일부가 되었다).[5]
알려진 것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사료 중 하나인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초기 비문 에서는 통상적으로 동맹으로 번역되는 법적으로 조직된 단체를 언급하며, 이는 그 동맹에 속한 도시들을 특별한 의미에서 이오니아인들이라 불렀다.따라서 사료에서는 ‘이오니아인들'의 도시들, 평의회, 결정 등의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 헬레니즘 시대의 저술가 및 문서들에서는 명시적으로‘코이논'(koinon, 공동체) 혹은 시노도스(synodos)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며 ‘이오니아인들의 코이논(공동체)’ 또는 ‘이오니아인들의 시노도스(집회)’ 라고 불렀으며, 시대착오이 적용되어 이 용어를 초기의 연맹을 언급할 때 사용되었다.
로마 제국 시기, 황제의 얼굴을 주화 한 쪽에 싣고 주화의 반대 쪽에 '코이논 이오논'(이오니아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자체적인 주화를 발행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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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립
멜리아 전쟁은 수 세기 기간에 걸쳐 고대 국가 카리아와 마이안드로스강 하구 지역의 토지에 정착을 했었던 이오니아인들이 세운 마지막 도시이었다. 이들의 마지막 요새는 미칼레산의 북쪽 능선에 있는 딜레크(Dilek)산에 자리 잡은 멜리아라고 하는 요새화 된 취락으로, 포세이돈 헬리코니오스 숭배소가 위치한 곳이었다. 이 요새는 기원전 7세기 초에 세워졌다.
카리아와 이오니아인들은 수세대에 걸쳐 민족간 결혼을 해왔으나, 카리아라는 국가는 이오니아 도시 연맹이 이들을 제압시켜 그 토지를 나눠가질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페르시아의 위협이 커져가는 시점에서, 이들은 이오니아 동맹을 연맹으로서 이어나가기를 결정하고, 멜리아에 정치적 그리고 종교적 중심지를 건설하였다.
동맹국들의 대표 (theoroi)들은 파니오니움이라 불린 포세이돈의 성소에서 포세이돈 헬리코니오스에게 봉헌된 종교 행사 및 경기(파네기리스)인 파니오니아를 축하하기 위해 모였다. 이오니아인 (카리아인들과 뒤섞인)들은 포세이돈에 대한 숭배를 이어나기로 하면서 마침내 기원전 540년경에 포세이돈의 새로운 신전을 건립하였다. (이 신전의 잔해와 멜리아의 위치는 Lohmann et al 지역의 일부로, 2004년에 발견되었으며; 그 이전까지 그곳의 위치에 대한 이론들이 만연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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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각주
참고 문헌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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