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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이스티나 살루타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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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이스티나 살루타리스(Palaestina Salutaris) 또는 팔라이스티나 테르티아(Palaestina Tertia)는 후기 로마 및 비잔티움의 속주로, 네게브, 시나이 (북서쪽 해안 제외), 트랜스요르단의 남서부, 사해의 남쪽 지역을 관할했다. 동방 관구의 일부인 팔라이스티나 살루타리스는 서기 300년경 디오클레티아누스 개혁 당시 아라비아 페트라이아에서 분리되어[1] 7세기 무슬림의 아랍 정복까지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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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106년, 다마스쿠스의 동쪽과 홍해 남쪽의 영역들이 나바테아 왕국과 합해져 중심 도시 페트라와 보스트라 (각 남쪽과 북쪽)를 둔 아라비아 속주로 개편되었다. 아라비아 속주는 195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때 확장되었고, 아라비아 미노르 또는 아라비아 페트라이아 및 아라비아 마이오르 등 두 개 속주로 분리되었다고 여겨지며 두 속주는 '콘술라리스' 계급의 황제 군단장의 관리를 받았는데, 군단이 하나씩 주둔해 있었다.
3세기경, 나바테아인들은 아람어로 기록을 남기는 것을 멈추고 대신 그리스어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으며, 4세기에 들어서는 부분적으로 기독교로 개종하였고, 이 과정은 5세기에 완료되었다.[2]
페트라는 로마 후기 통치 때 급속하게 쇠퇴했으며, 해상을 기반으로 한 교역로 개편이 많은 부분을 기여했다. 363년에 일어난 지진이 여러 건물을 파괴하고 핵심적인 수자원 체계에 심각한 손상을 입혔다.[3]
이 지역은 후기 로마 제국 시기 동방 관구로 재편되었고 (314년), 여기에는 이사우리아, 킬리키아, 키프로스 (536년까지), 에우프라텐시스, 메소포타미아, 오스로에네, 포에니케, 아라비아 페트라이아 등 속주 등을 포함했다.
4세기 비잔티움 제국의 통치는 이 지역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했다.[4]:459 농업 기반 도시들이 설립됐고,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4]:459 비잔티움 시기 (390년 이래), 킬리키아 속주가 킬리키아 프리마와 킬리키아 세쿤다로 더 분할가 이뤄졌고, 시리아 팔라이스티나는 시리아 프리마, 시리아 살루타리스, 포이니케 레바넨시스, 팔라이스티나 프리마, 팔라이스티나 세쿤다로 분할됐고 최종적으로 팔라이스티나 살루타리스도 분할됐다 (6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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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팔라이스티나 테르티아에는 네게브, 트랜스요르단 남부, 한때 아라비아 페트라이아의 일부였던 지역, 시나이의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었다. 페트라는 총독 및 대주교의 상주 지역이었다. 팔라이스티나 테르티아는 또한 팔라이스티나 살루타리스로도 알려져 있다.[4]:8[5] 역사가 H. H. Ben-Sasson에 따르면,[6]:351
무슬림 아랍인들은 농민들로 바뀌어 있던 트랜스요르단과 네게브의 남아있는 나바테아인들을 발견했다. 이들의 땅은 비잔티움의 속국이던 가산족 아랍인들과 힘야르 왕국의 속국인 북아라비아의 킨다 아랍 왕국 등 새로운 카타니 아랍계 부족 왕국들에 분할되었으며, 빌라드 알샴 지역의 일부를 이뤘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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