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독일의 수학자, 철학자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독일어: 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년 7월 1일 ~ 1716년 11월 14일)는 독일의 수학자이자 과학자, 철학자이다. 라이프니츠는 책을 쓸 때 라틴어(~40%), 프랑스어(~30%), 독일어(~15%) 등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였다.[1]
고트프리트 빌헬름 폰 라이프니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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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 정보 | |
출생 | 1646년 7월 1일 신성 로마 제국 작센 선제후령 라이프치히 |
사망 | 1716년 11월 14일 신성 로마 제국 작센 선제후령 하노버 |
시대 | 17세기 ~ 18세기 철학 |
지역 | 서양철학 |
학파 | 합리주의 |
서명 | |
라이프니츠는 수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아이작 뉴턴과는 별개로 무한소 미적분을 창시하였으며, 라이프니츠의 수학적 표기법은 아직까지도 널리 쓰인다. 라이프니츠는 기계적 계산기 분야에서 가장 많은 발명을 한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하다. 파스칼의 계산기에 자동 곱셈과 나눗셈 기능을 추가했고, 1685년에 핀 톱니바퀴 계산기를 최초로 묘사했으며,[2] 최초로 대량생산된 기계적 계산기인 라이프니츠 휠을 발명했다. 또한, 라이프니츠는 모든 디지털 컴퓨터의 기반이 되는 이진법 수 체계를 다듬었다.
철학에서 라이프니츠는 낙관론으로 유명하다. 라이프니츠는 일부 제한적인 의미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신이 창조할 수 있는 최선의 우주라고 결론지었다. 라이프니츠는 르네 데카르트, 바뤼흐 스피노자와 함께 17세기 최고의 3대 합리주의론자 중 한 명이다. 라이프니츠의 업적은 현대 분석철학을 앞당겼지만, 한편으로 그의 철학은 스콜라 철학적인 면도 있다.
라이프니츠는 물리학과 공학에 많은 공헌을 했고, 생물학, 의학, 지질학, 확률론, 심리학, 언어학, 정보과학 분야에서 나중에 나올 개념들을 예견했다. 그리고 정치학, 법학, 윤리학, 신학, 역사학, 철학, 언어학에 관한 저술을 남겼다. 방대한 분야에 걸친 라이프니츠의 공헌은 다양한 학술지와 수 만개의 편지, 그리고 출판되지 않은 원고에서 발견되었다.
이처럼 다채로운 활동을 하면서도 그가 남긴 연구는 방대한 양에 달하지만, 바쁜 생활 탓인지 연구를 편지나 메모 등 형태로 남긴 게 많다. 철학만 보더라도 생전에 발간한 게 《변신론》(1710)뿐이며, 사후 출판 가운데서도 그의 사상을 정리한 책은 별로 없다. 그의 철학의 특징은 그 이전의 여러 가지 사상적 대립을 모두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서 조화시킨 점이다. 데카르트적 물체관과 피에르 가상디의 원자론, 기계관과 목적관, 섭리와 자유, 경험론과 이성론, 나아가 근세사상과 스콜라 철학의 조화까지 찾아볼 수 있다. 주요 저서로는 《모나드론》, 《형이상학 서설》, 《인간오성신론》 이 있다.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와는 달리, 라이프니츠는 대학에서 철저한 철학 교육을 받았다. 그는 그의 철학 학사 논문을 감독한 제이콥 토마시우스 교수에게 강한 영향을 받았지만, 평생에 걸친 스콜라 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그가 다른 길을 걷게 만들었다. 라이프니츠는 또한 루터교 대학에서도 존경을 받은 기독교 스페인 사람인 프란시스코 수아레스의 저서를 열심히 읽었다. 라이프니츠는 르네 데카르트, 크리스티안 하위헌스, 아이작 뉴턴과 로버트 보일의 새로운 방식과 결론에 깊게 관심을 가졌지만, 그들의 업적을 스콜라 철학의 틀에 갇힌 채로 평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프니츠의 방식과 관심거리들은 종종 20세기의 분석철학과 언어철학을 예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