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자 (13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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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자(金叔滋, 1389년 8월 24일 ∼ 1456년 3월 2일)는 조선 초기의 문신, 성리학자, 철학자이자 교육가로 본관은 선산(善山), 초명은 자(滋), 자는 자배(子培), 호는 강호(江湖)·강호산인(江湖散人)으로 불렸다. 시호는 문강(文康)이다.[1] 별칭은 청수백석(淸水白石)이다. 선산 출신의 도학자이자 유학자이며 사림의 도통으로 지목된다. 야은 길재(冶隱 吉再), 윤상(別洞 尹祥)의 문인이다.
1414년(태종 14)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였고, 1419년(세종 1)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으나, 본처와의 이혼 경력으로 요직에 임명될 때마다 거듭 사헌부에서 논계하였다. 아들 김종직에 의하면 전처의 아버지 한변이 무함했다 하나, 사헌부 등에서는 그의 이혼경력을 계속 문제삼았다. 이후 고령현감을 거쳐 1436년(세종 18년) 몸가짐을 바르게 한 선비를 추천할 때 으뜸으로 뽑혀 세자우정자(世子右正字)가 되었다. 그러나 얼마 뒤 선산군의 교수관으로 나갔다가 개령현감이 되고, 사재감부정에 임명됐다. 사예(司藝), 중훈대부에 이르러 관직을 사직하고 1456년 처가인 밀양으로 내려가 여생을 보냈다. 관료생활과 상중에도 문하생을 길러냈으며, 아들이자 문하생인 김종직을 통해 정몽주의 학통을 후대에 전수하였다.
사후 원종공신으로 법전에 따라 1계급 특진 추증되어, 1457년(세조 3) 10월 증 중직대부(中直大夫) 예문관직제학 겸 춘추관기주관(藝文館直提學兼春秋館記注官)에 추증되고, 1845년(헌종 11년) 의정부영의정 권돈인의 추증 및 시호 하사 건의로 증 이조판서 겸 좨주(吏曹判書兼祭酒)에 가증됐다. 1646년(인조 24) 선산 낙봉서원(洛峯書院)에 제향되고, 1787년(정조 11) 사액이 내려졌다. 1905년(광무 8) 거창 남상 일원정 (一源亭)에 배향되었다. 1871년(고종 8) 3월 16일 왕명으로 문강(文康)의 증시(贈諡)가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