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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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의 역사는 불가리아인들의 역사와 그들의 기원을 포함하여 현대 불가리아 지역의 정착에서 민족 국가 형성까지에 이른다. 기원전 44,000년경 오늘날 불가리아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보인다. 기원전 5,000년경 이미 정교한 문명이 존재하였고 도자기와 보석이 생산되었다. 이후 기원전 3,000년경에 트라키아인들이 발칸 반도에 등장하였고, 기원전 500년경 그들은 오드뤼사이 왕국을 건국하여 번영하였으나 곧 쇠퇴하고 트라키아인들은 마케도니아의 지배 하에 놓였다.
632년 중앙아시아에서 기원한 불가르족[1] 이 흑해 근교에서 쿠브라트의 주도하에 대불가리아로 알려진 국가를 세웠다. 하자르 칸국의 압박 속에 대불가리아는 7세기 후반에 분열되었다. 쿠브라트의 아들 중 한명인 아스파루흐는 몇몇 불가르 부족을 이끌고 도나우 강 삼각주 지역으로 이주하였고, 비잔티움 제국으로부터 소스키타이와 모에시아 지역을 정복하여 발칸 반도 내에서 그의 새로운 왕국을 확장하였다.[2] 681년 비잔티움 제국과 평화 조약이 체결되었고 플리스카를 수도로 정하여 제 1차 불가리아 제국의 시작이 되었다. 새로운 국가는 트라키아의 유민들과 불가르족 치하의 슬라브족들이 모여 있었고, 상호 동화가 천천히 시작되었다. 이후 세기에 불가리아는 강력한 제국을 형성하여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발칸 반도를 지배하였고, 이는 고유한 민족 정체성 형성과 이어졌다.[3] 민족적이고 문화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은 같은 종교, 문화, 문자를 통해 통합되었고 이는 외세의 침략과 영향에도 불구하고 불가리아 민족 의식을 형성하고 보존하였다.
11세기 제 1차 불가리아 제국은 루스와 비잔티움 제국의 공격을 받아 붕괴되었고, 1185년까지 비잔티움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후 아센 왕가의 페터르와 아센 형제가 주도하여 대대적인 반란이 일어나 제 2차 불가리아 제국이 성립되어 불가리아 국가가 부활하였다. 1230년에 절정을 맞은 후 불가리아는 많은 이유들, 특히나 다방면에서의 외세의 끊임없는 침입에 시달리게 되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돼지치기 출신의 이바일로가 주도하는 농민 반란이 일어나 그는 차르가 되기도 하였다. 그의 짧은 재위 기간은 불가리아 국가의 통합에 핵심적이었다. 1300년 이후 중흥기를 맞기도 하였으나, 1371년 내분으로 불가리아가 세 국가로 분열하면서 끝이 났다. 1396년 불가리아는 오스만 제국에 정복당하였다. 튀르크에 의해 불가리아 귀족들과 성직자들이 제거된 후, 불가리아는 억압과 지적 정체, 실정의 시기를 맞았고 불가리아의 문화를 파괴하고 500년 가까이 유럽과 격리되게 만들었다. 몇몇 문화적 유산은 이를 채택하고 발전시킨 루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1700년대 이후 오스만 제국이 쇠퇴하면서 부활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불가리아 귀족들은 사라졌고, 농촌 사회와 함께 조금이지만 도시의 중산층도 성장하였다. 19세기에 불가리아 르네상스는 독립을 위한 노력의 핵심이 되었지만 1876년 4월 봉기가 실패하면서 끝이 났고, 그 결과로 러시아-튀르크 전쟁이 발발하여 불가리아는 해방되었다. 하지만 산스테파노 조약은 서구 열강들에게 거부되어 베를린 회의의 결과로 불가리아의 영토는 모에시아와 소피아 지역으로 한정되었다. 이는 국경선 밖의 많은 불가리아인들을 남겼고, 이는 불가리아의 지역 전쟁에서의 군사 활동을 제한하였고 양 대전에서 독일에 대한 충성하게 만들었다.
2차 대전 이후 불가리아는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고, 토도르 지브코프에게 35년 간 통치되었다. 이 시기 불가리아의 경제 성장은 1980년대에 들어 정체 상태에 들어섰고, 결국 중앙유럽 전체에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함과 동시에 국가의 발전의 전환점을 맞았다. 1990년대의 일련의 위기들은 불가리아의 산업과 농업을 뒤흔들어 놓았고, 2000년대에 들어서야 안정되기 시작하였다. 불가리아는 2004년 NATO에 가입하였고 2007년에는 유럽 연합에 가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