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독부 (나치 독일)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총독부(독일어: Generalgouvernement 게네랄고우퍼네멘트[*], 폴란드어: Generalne Gubernatorstwo 게네랄네 구베르나토르츠보[*], 우크라이나어: Генеральна губернія)란 제2차 세계 대전 개전 때 나치 독일과 소련이 폴란드 제2공화국을 분할한 이후 옛 폴란드 및 우크라이나 지역에 설치한 행정기구이다. 폴란드 제2공화국은 세 조각으로 나뉘었는데, 가장 서쪽은 독일의 직할령으로 흡수되고, 가장 동쪽은 소련에게 흡수되고, 가운데 조각이 총독부가 되었다.[1] 나치 독일이 점령지 행정을 위해 설치한 기구는 여럿 있지만, 다른 지역의 기구들은 모두 판무관이나 군정청 장교가 그 소임을 맡은 데 반해 수장이 "총독(Generalgouverneur)"이라는 직함을 사용하고 "총독부(Generalgouvernement)"라는 명칭을 사용한 기구는 폴란드 총독부가 유일하다.
총독부 | ||||
---|---|---|---|---|
Generalgouvernement | ||||
| ||||
1942년의 총독부 관할지역 | ||||
수도 | 우치(1939년 10월 12일 ~ 1939년 11월 4일) 크라쿠프(1939년 11월 4일 ~ 1945년) | |||
정치 | ||||
정치체제 | 민정(民政) | |||
총독 1939–1945 서기관 1939–1941 1941–1945 | 한스 프랑크 자이스잉크바르트 요제프 뷜러 | |||
지리 | ||||
1941년 어림 면적 | 142,000 km2 | |||
인문 | ||||
공용어 | 독일어(공식) 폴란드어 우크라이나어 이디시어 | |||
인구 | ||||
1941년 어림 | 12,000,000명 | |||
인구 밀도 | 84.5명/km2 | |||
경제 | ||||
통화 | 즈워티 라이히스마르크 |
총독부의 설치란 곧 폴란드 국가의 완전한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총통 히틀러가 1939년 10월 8일 일방적으로 선포했는데, 이를 소위 ‘폴란드 점령지 행정에 관한 부칙 법령’이라고 한다. 이 정책에 따라 독일 최고재판소는 전간기 폴란드에 살았던 독일계 폴란드인을 제외한 모든 폴란드 국민들을 무국적자로 규정하고, 오직 독일계 폴란드인만이 제3제국의 정당한 시민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제법을 무시한 행위였다.[1]
총독부의 관할지역이 독일 본국과 분리된 것은 병참을 목적으로 하는 독립 행정부서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이는 집어삼킨 것은 뭐든지 몽땅 흡수해 버리는 소련식 습성과는 좋은 대조가 된다.[2] 독일 국방군이 1941년 6월 크레시의 소련군을 공격하면서 독소전쟁이 개전(바르바로사 작전)한 뒤, 1939년 폴란드 분할 당시 소련군이 점령했던 동부 폴란드까지 총독부 관할 지역이 되어 총독부는 확대되었다.[2] 며칠 뒤 동갈리치아 지역이 가득차서 갈리치아 관구로 분리되었다. 폴란드 총독부는 1945년까지 폴란드 중부 및 남부 지역 대부분과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을 점유했으며, 바르샤바, 크라쿠프, 르부프, 루블린, 테르노필, 스타니스와부프를 비롯한 폴란드의 주요 도시들이 이 관할지역 안에 포함되었다.[1]
총독부 수뇌부는 전쟁 내내 폴란드인이나 우크라이나인과 권력을 나눠 가질 의사가 전혀 없었고, 그들의 정치 성향이 자신들에게 우호적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이들은 "폴란드(Polen)"라는 이름조차 사용하지 않았다. 총독부의 폴란드 발권은행(Emissionbank in Polen) 정도가 유일한 예외였다. 총독부의 사무 및 행정직원들은 전원이 독일인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이들은 폴란드 땅에 독일 정착민을 식민하고 그 이외의 인구는 농노의 상태로 만들어 부려먹다가 최후의 제노사이드로 쓸어버릴 의도를 갖고 있었다.[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