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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산 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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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산 연씨(谷山延氏)는 황해도 곡산군을 관향으로 여기는 한국의 성씨다.
역사
조선의 장군 연사종(延嗣宗)은 함흥 출생이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사종의 조부 곡산 연씨는 곡산 출신으로 고려 말에 함흥으로 이주하였다.[1] 후일에 연사종은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곡산부원군(谷山府院君)에 책봉되었다.
후일 무진년에 고려 우왕이 군사를 일으켜 요동을 칠 때, 조선 태조가 우군 도통사가 되고, 동향 사람이었던 연사종은 장군 진무로서 따라갔다. 조선 태조가 즉위한 그 후 연사종에게 원종 공신의 문권을 내려 주고, 또 회군 공신의 문권도 하사했다. 후일 제2차 왕자의 난에서 정안군을 왕위에 옹립하는데 기여해 왕실로부터 좌명공신 4등에 책록되었다. 이어 상장군(上將軍)·호조 전서를 거쳐 곡성군(谷城君)에 봉해졌다.
이번의 연정은 그의 증조가 곧 좌명공신 인데, 내사조와 외사조에 모두 현관이 있는 사람이 아니기는 합니다. 그러나 좌명공신의 후손은 사족임이 분명하니 응당 면제되어야 할 듯한데, 이는 특별한 은전이어서 감히 함부로 할 수 없기에 이렇게 아룁니다.(今者, 延侹曾祖, 乃佐命功臣, 雖非內外俱有顯官者, 然佐命之後, 則其爲士族明矣。 似可應免, 而此是特恩, 未敢擅便, 敢啓。)
신사년 봄에는 조선 태종이 좌명 공신의 호(號)를 내리고, 연후 상장군·호조 전서를 거쳐 곡성군에 봉하였고, 승진하여 판한성부사가 되었다. 경인년에 길주도 도안무찰리사 겸 동북면병마절제사로 나가게 되고, 인하여 길주목을 다스렸다. 신묘년 12월에 부상(父喪)을 당하였고, 임진년 정월에는 기복(起復)하여 동북면도순문찰리사 겸 병마절제사·영흥부윤이 되었다.
연후 조선 세종에 의해 다시 소환되어 삼군 도진무에 임명되고, 의정부 참찬을 거쳐 중군 도총제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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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곡산(谷山)은 황해도 북동단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의 십곡성(十谷城)인데 통일신라 경덕왕이 진서(鎭瑞)로 고쳤고 고려초에 곡주(谷州)로 개칭하였다. 1393년(조선 태조 2)에는 곡산으로 개칭하고 부(府)로 승격하였다. 조선 1895년에 곡산군이 되었으며, 별칭은 덕둔홀, 고곡, 진서, 상산 등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곡산군의 토성(土姓)으로 우(禹)·노(盧)·강(康)·한(韓)·용(龍)·연(延) 6성이 기록되어 있다.[5]
분파
- 상주공파(尙州公派) 연비
- 연안공파(延安公派) - 연정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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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항렬자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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