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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폭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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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주(爆彈酒, bomb shot)는 맥주와 위키스키를 섞어 마시는 칵테일이다. 술의 비율에 따라 원자폭타주, 수소폭탄주, 혹은 술을 만드는 방법에 따라 회오리주라고 하는 등 다양한 명칭이 있다. 근래에는 섞는 주종도 다양해지면서,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맥, 소주, 백세주, 산사춘, 맥주를 섞은 소백산맥 등도 폭탄주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술을 섞어먹는 것이 유행하면서 과거에 안 좋은 이미지의 폭탄주 대신에 "혼합주"나 "섞음주"로 부르자는 시도도 있었다.[1][2] 재미와 맛을 찾고자하는 이러한 문화적 흐름은 한국고유의 술 문화로 발전하면서 해외에서도 관심을 가지는 한국문화가 되었다.[3] 한편, 최근의 폭탄주 문화는 재미와 맛이 아니라 싼 값에 쉽게 취하려는 의도와도 관련이 있다.[4]

한국에서 폭탄주가 시작된 것은 1980년대 초반으로 본다. 1983년 춘천지검장으로 일하던 박희태 검사장이 당시 지역 기관장들의 술모임에서 처음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군사정부 시절 군 인사들이 주도하는 술자리는 맥주 잔에 위스키를 가득채워 마실 만큼 음주문화가 과해서 참석자들이 몹시 힘들어 했는데, 이에 박희태가 위스키와 맥주를 반반 섞어서 "화합주"라며 권했다는 설이다.[5]
군을 비롯하여 법조계, 언론, 건설업계 등 특정집단에서 유행하던 폭탄주는 1980년대 중반부터 대중에게 퍼져간 것으로 보인다. 1986년 12월 23일 동아일보 "연말과 퇴폐풍조"라는 기사에는 "폭탄주 돌리기 등 난폭한 음주습관이 유행되고 있다"고 언급되어 있다. 90년대에 들어서는 주량의 척도로 소주 대신에 폭탄주를 사용할 정도로 대중에게 유행하였다.[6]

폭탄주 문화가 대중으로 퍼지면서 제조법도 다양해졌다. 이미 1987년 동아일보에서 연재한 소설 《물의나라》에는 "양주 맥주 할 것 없이 가져오라 해서 원자폭탄주 수소폭탄주 열나게 돌리고 밴드 불러 노래 시들어지게 부르고.." 라는 대목이 있는데, 이미 당시부터 위스키와 맥주의 비율에 따라 여러가지 폭탄주의 명칭이 존재했다. 소맥은 1988년 전두환이 언론통폐합을 발표했을때 해고당한 기자가 "언론도 통폐합되는 마당에 소주와 맥주도 통폐합시키자"고 하여 소맥의 기원이 되었다. 2000년대에 백세주가 출시되면서, 백세주와 소주를 반반 섞어마시는 오십세주가 유행하였는데, 이에 주류업체도 자사의 술판매를 높일 목적으로 다양한 폭탄주를 개발, 홍보하면서 섞어 마시는 주종이 다양해지는 계기가 되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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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주와 관련된 역사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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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폭탄주는 군사문화와 연관되어 군인들이 처음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1983년 강원도의 군, 검찰, 안기부, 경찰 등의 지역 기관장 모임에서 처음으로 만들어 마셨고 당시 춘천지검장이던 박희태가 널리 퍼뜨렸다는 것이 정설이다. 일제시대에서 군사독재를 거치며 한국에 자리잡은 군대식 상명하복(上命下服) 문화가 법조계, 정치계, 언론계 등 엘리트 그룹에 만연하였는데, 이런 강압적 조직문화가 폭탄주로 대변되는 음주문화가 결합하여 웃지못할 현대사가 많이 일어났다. 이런 인식을 바꾸고자 폭탄주를 배척하는 사회운동이 있기도 했다.[7]
- 1986년 3월 21일 소위 '국회 국방위 사건'이 일어났다. 제129회 임시국회 개회를 마친 국회 국방위 소속의 여야 의원 10여명과 육군 수뇌부 8명이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의 요정 ‘회림’에 모여 폭탄주를 마시다가 장성들과 국회의원들 사이에 싸움이 붙었다. 흥분한 남재희 의원이 벽에 던진 컵이 깨지면서 이대희 소장의 눈두덩이에 유리파편이 박혔고, 이에 흥분한 이대희 소장이 남재희 의원에게 발길질을 하면서 난장판이 벌어졌다. 이 사건으로 국방부장관과 참모총장이 공식으로 사과하기도 했다. 오히려 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서 소개되면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폭탄주가 널리 유행하기 시작했다.[8]
- 1995년 서석재 당시 총무처장관은 기자들과 술자리에서 폭탄주를 마시며 '시중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4천억원에 대한 소문이 있다'는 발언을 했고 결국 이것은 박계동 의원의 비자금 폭로로 이어졌다.[9]
- 1999년 6월 7일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은 폭탄주를 곁들인 점심 식사 이후 술에 취한 채 기자들에게 '(1998년의) 조폐공사 파업은 공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사실 검찰이 유도한 것이다'라는 발언을 했다. 결국 이로 인해서 진형구 부장은 기소되었고 김태정 당시 법무부 장관까지 해임되었다.
- 2005년 4월 16일 인천대공원 벚꽃축제 개막식 후 안상수 인천시장과 술을 마시던 신○○의원과 최○○의원이 폭탄주를 마신후 사소한 말다툼에서 시작하여 상을 뒤집고 맥주병을 던지는 등 난투극을 벌였다.[10]
- 윤석열 전 대통령은 검사시절부터 애주가로 유명했다. 대통령 당선 후에도 폭음은 계속 되었는데, 소주와 맥주를 가득 실은 1톤 화물 탑차가 매주 대통령실로 배달을 갔고, 참석자만 바뀌는 술자리가 매일 벌어졌는데 소주와 맥주를 반씩 섞은 폭탄주를 20잔씩 마셨다고 한다. 숙취 때문에 출근이 어려울때는 빈 관용차만 보내는 이른바 "가짜 출근쇼"를 벌이기도 했다.[1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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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
같이 보기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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