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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명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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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명부인(萬明夫人, 574년 ~ ?)은, 신라의 왕족으로 법흥왕의 조카인 숙흘종의 딸이며, 금관가야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손자로 김무력의 아들인 김서현(金舒玄)과의 사이에서 아들 김유신을 낳았다.
생애
《삼국사기》 김유신열전에는 김서현이 일찍이 길에서 만명부인을 보고 마음으로 기뻐하며 눈짓으로 꾀어, 중매도 거치지 않고 야합하였다. 이후 김서현이 만노군태수(萬弩郡太守)로 부임하여 서라벌을 떠나게 되자, 만명부인과 함께 떠나려 하였는데, 이때서야 숙흘종이 딸이 김서현과 야합한 사실을 알게 되었고, 만명을 별채에 가두고 사람을 시켜 지키게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벼락이 별채 문간에 떨어져, 지키던 사람이 놀라 혼란스러운 틈에 만명은 별채를 빠져나와 김서현과 함께 만노군으로 갔다.[1]
숙흘종이 김서현과 만명의 결혼을 반대한 이유는 대체로 가야 출신으로 신라 정통 왕족인 김서현과의 혼인을 탐탁치 않아 했기 때문으로 이해되어 왔고[2] 이러한 이해를 전제로 하여 김서현이 처음부터 금관가야계 왕손들의 정치적 지위를 제고하기 위해 만명에 의도적으로 접근하였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3]
이와 달리 김서현이 금관가야계 왕손인 것과는 별개로 그의 관등이 낮았고, 또 그의 아버지인 김무력이 진지왕의 비정상적인 왕위 계승에 동조하였기 때문에 만명과의 혼인을 반대하였던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4]도 있다. 또한 보수적인 골품 세력의 반대로 금관가야 왕족의 후손인 김서현과의 혼인을 순탄하게 진행하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김서현과 만명 두 사람이 야합이라는 일종의 묵인 방법을 사용하였다고 이해한 견해[5]도 제기되고 있다.
이후 남편과 마찬가지로 신축일 밤에 한 어린아이가 황금 갑옷을 입고 구름을 타고 집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회임하여 스무 달여 만에 김유신을 낳았다.
고려 이인로의 《파한집》에는 만명은 김유신이 젊은 시절 교우 관계에 관련하여 엄하게 훈계하였고, 김유신이 기생 천관과 만나는 것을 알고 "나는 이미 늙어서 밤낮으로 네가 성장하여 공명을 세워 임금과 어버이를 영화롭게 하기를 바라고 있는데 지금 네가 천한 아이들과 함께 음란한 집에서 놀아난단 말이냐?" 하고 울면서 책망하자 김유신은 크게 뉘우쳤고 이에 천관과의 관계를 끊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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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속과의 관계
한국의 무속신앙에서 무당이 사용하는 명두(明斗) 거울은 만명부인과 관련이 있다는 해석이 존재한다. 조선 시대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김유신의 어머니 만명 부인이 무속에서 '만명신'으로 모셔졌다는 언급이 있는데, 김유신과 관련되어 전해지는 그의 초월적인 능력은 바로 그의 어머니로부터 이어지는 혈통과 관련되어 있다는 인식이 무속에 전해져서인 것으로 보인다.[6]
가계
만명부인이 등장하는 작품
창극
- 《김유신》(1944년) - 극작가 김건이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태평양 전쟁 참전을 독려하고 일제의 군국주의 정책을 미화하고자 했던 목적으로 집필한 창극 《김유신》에서는 일반적인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일탈을 바로 잡고 전장에서의 활약을 위해 아들을 적극적으로 훈계하고 독려하는 황국신민에 걸맞는 어머니상을 보여 주는 데에 집중되어 있다. 천관에게 사랑에 빠진 아들 유신에게 국가를 위해서 개인의 사랑을 멈출 것을 여러 번 당부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반항하는 유신을 위하여 여러 차례 아들을 설득하거나, 천지신명에게도 기도를 드린다. 이러한 어머니의 정성에 감화되어 김유신은 천관과의 인연을 끊고 석굴에 들어가 무술을 연마하며 삼국통일을 위한 내공을 쌓는다는 전개로 이어진다.[7]
TV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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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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