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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군

대한민국의 옛 군 단위 행정구역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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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군(三陟郡)은 1895년 6월 23일부터 1994년 12월 31일까지 강원도 동해안에 있었던 군이다. 군 지역중 황지읍, 장성읍은 태백시로 분리 승격되었고, 북평읍은 명주군 묵호읍과 통합하여 동해시가 되었으며, 나머지 지역은 도농복합시 형태의 삼척시로 개편되었다.

소개

강원도 영동지방 동남부에 위치했던 군으로 삼척시와 통합되기 이전에는 동쪽으로 동해안과 접하고 서쪽으로는 정선군태백시와 접하였으며 남쪽으로는 경상북도 울진군봉화군과 접하고 북쪽으로는 한때 삼척읍으로 있었다가 1986년 동 군(郡)에서 분리되었던 삼척시와 접하였다. 현재의 삼척시 규모와 맞먹으며 한때 북쪽 지역이 삼척읍으로 있다가 분리되었던 삼척시와 나뉘어있고 근덕면, 원덕읍, 도계읍, 하장면, 노곡면, 미로면, 가곡면, 신기면을 관할하였다.

1980년까지는 북쪽이 명주군 묵호읍을, 서남쪽은 영월군 상동읍 및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과 접하였으나 그 해 동 군의 북평읍이 묵호읍과 통합하여 동해시로 분리되고 이듬해 1981년에 서남부의 장성읍과 황지읍이 통합하여 태백시로 분리되었으며 1986년에는 중심부인 삼척읍이 삼척시로 분리되어 현재의 구역을 이루었다.

1995년 행정구역 및 도농통합에 따라 삼척시와의 분리 9년 만에 통합하여 통합 삼척시가 출범하였다. 군청은 삼척읍으로 있었던 현재의 삼척시 동(洞) 지역에 있었다가 1995년 삼척시와 통합하면서 군청 사무는 삼척시청으로 이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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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

고대에 실직국(悉直國)이 일어선 땅이다. 삼척이라는 이름은 실직이라는 이름이 표기만 변한 채 그대로 이어져 온 데 불과하다. 의미는 알 수 없지만 일설에 悉은 쇠(鐵)의 음차이고 직(職)은 지킨다라는 의미로 "쇠직이"를 실직으로 표기한 거라는 데 신빙성이 의심스럽다.[1]

역사

요약
관점

선사시대

  • 삼척시 원덕읍 노경리와 동해시 북평동 구호마을, 발한동 택지개발지역에서 구석기 시대의 유적이 발견되었다.
  • 신석기 시대의 유적은 발견된 바 없지만 인근 지역에서는 신석기 시대 유적이 확인되었으므로 가능성은 있다.
  • 청동기 시대의 유적은 많이 발견되어 그 시기에 인구 밀집지역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실직국

고조선이후에 실직국이 들어섰고 인근에 울진파조국(波朝國,또는 파단국(波但國)), 강원도 대부분의 동예와 공존했다. 실직국은 진한의 소국 중 하나이다.

  • 서기 50년 경, 실직국이 파조국을 합병했다.
  • 60년 경, 동예의 침공을 받자 안일왕(安逸王)은 일시 나라를 파조국으로 옮겼다. 울진군 서면 소광리에 안일왕 산성이 있다.
  • 102년 경 동해안일대로 대거 세력을 확장한 실직국은 경주시 안강읍에 있던 음즙벌국과 분쟁을 벌였다. 오랜 분쟁으로 양국이 지친데다 결말이 나지 않자 결국 진한의 종주국인 신라의 중재를 요청했지만 신라는 오히려 중재과정의 사건을 빌미로 두 나라를 침공해 음즙벌국과 인근의 압독국을 합병했다.
  • 104년 신라와의 결전에서 패배하여 실직국도 신라에 합병되어 신라 내 자치국이 되었다. 신라는 이를 계기로 강원도일대까지 세력권을 확장했다. 이로 인해 삼척군 전 지역은 강원도에서 유일한 신라의 영역임을 알 수 있다.
  • 138년 이후 신라 왕의 주재 하에 태백산의 제사가 거행되기 시작했다.

실직군(郡),주(州)

481년 장수왕대에 고구려의 남침을 받아 신라포항일대까지 북쪽 영역을 할취당했다. 이시기에 신라의 세력관 하에서 자치를 허용받던 실직국도 고구려의 지배하에서 자치권을 박탈당해 중앙권력의 지배를 받는 지방행정단위로 전락함으로써 완전히 멸망했다.

  • 481년 고구려에 의해 실직군(悉直郡)이 설치되었고 산하에 우곡현(羽谷縣.羽谿縣;강릉시 옥계면),죽현현(竹峴縣.竹嶺顯;삼척시 하장면, 태백시), 만경현(滿卿縣.滿鄕縣;삼척시 근덕면), 해리현(海利縣.波利縣;삼척시 원덕면) 우진야현(于珍也縣;울진군)의 5개 현을 관할했다.
  • 505년 지증왕 6년 신라가 실직국을 재정복해 실직주(悉直州)가 설치되어 대 북방진출을 위한 군사적 거점이 되었다. 초대 실직주 군주(軍主)는 김태종( 金苔宗)
  • 524년 실직국 일대에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 거벌모라성(居伐牟羅城: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를 함락하는 등 신라에 항거했지만 법흥왕이 직접 군대를 지휘해 진압했다. 신라는 관련자와 진압에 실패했던 관리들을 대거 숙청하고 그 내용을 봉평신라비에 기록했다.
  • 반란을 주도했던 실직국의 귀족인 파단(波但)씨, 또는 진(秦)씨 일족(옛 파조국 왕족)이 일본으로 망명해 교토부북부 일대를 지배하는 최대의 호족세력인 하다(秦)씨가 되었다.
  • 556년 진흥왕 17년 신라가 북방으로 영역을 대거 확장하면서 함경남도 안변비열홀주(比烈忽州)가 설치되면서 실직주도 폐지되어 다시 실직군이 되었다.
  • 639년 진덕여왕 8년에 진주도독부(眞珠都督府)가 설치되었다.
  • 658년 태종무열왕 5년에 북진이 설치되었다.

삼척군

  • 삼국통일 후 757년 경덕왕 16년에 행정제도 개편으로 지금의 이름인 삼척군으로 개칭된 후 현재 삼척시내외에 있던 4현을 영현으로 관할하였다.
    • 만경현(滿卿縣) 옛 만약현(滿若縣)이다. 지금의 삼척시 근덕면.
    • 우계현(羽溪縣) 옛 우곡현(羽谷縣)이었다. 고려시대에 명주(冥州)로 소속이 바뀌었다. 강릉시 옥계면
    • 죽령현(竹嶺縣) 옛 죽현현(竹峴縣)이었다. 조선조 이후에 소달면(所達面)이 되었는데 1630년 인조 8년에 삼척부사 이준(李埈)이 삼척부 경내를 9개리로 나누어 다스릴 때 이곳을 장생리라 하였다. 이후에 상장생면과 하장생면으로 나뉘었는데 상장생면은 지금의 태백시가 되었고 하장생면은 지금의 삼척시 하장면이 되었다.
    • 해리현(海利縣) 옛 파리현(波利縣)이었다. 지금의 삼척시 원덕읍.
  • 후삼국 시대에 삼척 김씨 등의 강력한 호족세력의 통치하에 놓여 진주(眞珠)라는 별칭으로 불렸다.[2]
  • 고려시대인 995년고려 성종 14년 척주단련사(陟州團練使)가 설치되었다.
  • 1018년 고려 현종 9년 현으로 강등당해 삼척현이 되었다.
  • 1253년 몽고 야만족이 삼척을 침입하자 문과 급제자로 어머니를 뵈러 삼척현을 방문했던 이승휴전주에서 삼척으로 이주해 와서 살던 이안사가 이에 맞서 요전산성에서 주민들과 항전했다.
  • 조선왕조 이후 1393년 태조 2년 목조의 외향이라하여 삼척부로 승격되었고 4년뒤인 1397년 태조6년에 군진인 삼척진이 설치되었다.
  • 1413년 태종13년 삼척도호부로 승격되었다.
  • 1631년 인조 9년 삼척부내에 9개 행정구역이 설정되었다. 매곡, 부내, 노곡, 덕번, 북평, 박곡, 미로, 소달, 장생리
  • 1738년 영조 14년 12개 면으로 재조정되었다. 말곡(洞지역 내륙), 부내(洞지역 해안), 노곡, 근덕, 원덕, 미로, 소달, 상장성(요정.사슬전.황지.소도 .장성.동점.철암), 하장성(아곡천.조탄.사미.원동.아곡.갈전.역탄.대전), 견박곡(대구전.이탄.고전.구미.굴암.괘동 추암.봉무정), 도상(초분.도내.이노말.신흥.적전.삼화), 도하(송라정.지저.용장.냉천.평릉).
  • 1895년 6월 23일(음력 윤5월 1일) 강릉부 삼척군으로 개편하였다.[3]
  • 1896년 8월 4일 강원도 삼척군으로 개편하였다.[4]
  • 1914년 4월 1일 9면으로 개편하였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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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정보 1914년, 현재 ...
부령 제111호
자세한 정보 구 행정구역, 신 행정구역 ...
9면 - 부내면, 북삼면, 하장면, 근덕면, 원덕면, 미로면, 소달면, 노곡면, 상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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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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