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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공사
대한민국의 공기업 — 전기공급업계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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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공사(韓國電力公社, Korea Electric Power Corporation, KEPCO)는 대한민국의 전력공급을 위해 설립된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시장형 공기업이다.[1] 본사는 전라남도 나주시 전력로 55 (빛가람동)에 있다. 흔히 줄여서 한국전력 또는 한전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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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요약
관점
한성전기회사

1893년 주미 대리공사 이채연이 미국 국무장관 월터 Q. 그레셤과 만나 전기철도 부설에 대한 논의가 처음 이루어졌다. 이후 미국인 헨리 콜브란(Henry Collbran)과 H. R. 보스토위크 두 사람은 1896년에 인천에 와서, 그곳의 미국인 몰스 등과 함께 경성과 인천 간의 철도 부설권을 얻었다. 그 후 경성으로 옮겨 대한제국 황실에 접근해 이권 획득을 꾀하던 중, 마침 황제가 청량리의 홍릉 참배를 위해 거둥할 때마다 십만 원 내외의 거액을 행렬에 쓰는 것을 보고, 전기철도를 이용하면 속도가 빠르고 경비도 크게 절약할 수 있으며, 평소에. R. 보스토위크는 시민의 교통수단으로 운행하여 이익 또한 적지 않으니 일석이조라 설득하였다. 이에 황제는 육군 총장 이학균에게 명하여 콜브란과 교섭하게 하였고, 그 결과 계약이 체결되었다. 황실로부터는 현금 35만 원과 토지 등 40만 원이 출자되었으며, 이근배와 김두승의 명의로 콜브란·보스토위크 사업단에 대해 1898년 1월 18일 자로 전등·전차·전화 부설의 허가가 내려졌다.[2]
이것이 한성전기회사(漢城電氣會社)라 불렸으며, 자본금은 150만 원이었다. 우선 도성 안 서대문에서 능이 있는 청량리까지 전차를 개통한 것이 1899년 4월 8일이었다. 이어 1901년 6월에는 발전기를 증설하고 시내 일반 수요에 맞추어 약 600등의 전등을 점화하였다. 이것이 대한민국 전기 사업의 시초였다.[2] 하지만 개통후 공사를 관장한 콜브란측에 공사대금을 지불하지 못해 한성전기회사의 설립과 경영과정에 깊게 관여한 콜브란 회사가 경영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다.[3] 이후 이들은 사업 확장을 진행해 나갔다. 이러한 사업 확장을 지원한 자로는 이채연을 포함하여 미국공사 알렌과 서기관 출신으로 궁내부고문에 임명된 샌즈(William F. Sands)의 열렬한 지원, 그리고 이윤용, 민영환, 민상호, 강석호 등 한국내 친미파 관료의 적극적인 후원이 자리하고 있었다.[4]
회사는 점차 사업을 확장하면서 자금이 부족해졌으므로, 미국 코네티컷주 세이블룩에 있는 엠파이어 러스트 회사로부터 자본을 공급받게 되었다. 그 관계로 1904년 7월에는 동 주 법률에 따라 한미전기주식회사(韓美電氣株式會社, American Korean Electric Co.)를 설립하여 한성전기의 사업 일체를 승계하고 본사도 세이블룩으로 옮겼다. 그러나 여전히 경영은 어려워 항상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 무렵 마포에는 225킬로와트 발전기 두 대, 동대문에도 두 대, 합계 200킬로와트 규모의 기계들이 설치된 발전소가 있었다. 동대문의 발전소는 이후 전차과가 들어섰다.[2]
1905년 인천에서는 일본인 중심의 인천전기주식회사가 설립되며 최초의 수력발전소인 운산수력이 준공되었다.
일한가스주식회사

1905년 3월 10일 러일전쟁의 봉천 회전에서 승패가 갈린 이후, 훗날 한국 부통감이 된 자작 소네 아라스케의 차남 소네 간지(會禰寛治)는 같은 해 7월 학창을 마치고 곧장 경성에 방문했다. 그는 조선은 겨울이 길고 기온이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산에는 나무가 적어 땔감이 부족한 반면, 미국인이 경영하는 한미전기회사의 전등 요금은 비싸고 보급은 더디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따라서 가스등 쪽이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권동수의 가스 영업 출원권을 매수하여 도쿄로 돌아가 이 사업을 도쿄가스 주식회사 이사회 회장이던 시부사와 에이이치와 이사 오하시 신타로(大橋新太郎) 및 다른 중역들에게 자문하였다.[2]
그 뒤 1906년 3월, 도쿄가스 회사의 기술자가 현지 조사를 했고, 이어 오하시 신타로가 만주와 한반도를 다시 조사한 결과, 이 사업이 유망하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사업 계획은 더욱 진전되었고, 소네 자작의 추천에 따라 일본은행 조사역 오카자키 도오미쓰(岡崎遠光)를 참여시켰으며, 시부사와 자작 외 11명의 연서로 한국 통감부에 가스 영업 인가 신청서를 제출하였다.[2]
그러나 당시 일반 재계가 호황이어서 유망한 사업에의 투자에 분주한 때였기 때문에, 경성에서의 가스 사업 계획은 일부 기업가들의 주목 대상이 되었고, 도쿄가스 계열과 한국 측 백완혁·백인기·김시현 등의 계열이 경쟁 출원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통감부가 양자의 합동을 알선하여, 결국 한국 측은 무조건 시부사와 파벌에 합류하게 되었고, 1907년 6월 27일 부로 인가 지령이 교부되었다.[2]
이에 자본금을 300만 엔으로 하고, 우선 그 1/4인 75만 엔을 납입하여 제1기 계획을 시행하기로 하여 일한가스주식회사(日韓瓦斯株式會社)의 발기에 착수하였다. 앞서 언급한 시부사와 자작 외 11명을 창립위원으로 삼고, 같은 해 9월 23일부터 도쿄시 간다구 니시키초에 있는 도쿄가스 회사 내에 창립 사무소를 설치하였다. 이어 56명의 발기인 및 찬성인을 추가로 두고 주식 모집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러일전쟁 이후의 호황이 사라지고 금융시장은 경색되었다. 어렵게 청약을 했던 이들도 잇달아 계약을 파기하여 증거금을 버리고 돌아보지 않는 형편이었다. 이에 오카자키 도오미쓰, 스즈키 료, 시라이시 마타키 등은 후쿠오카, 오카야마, 오사카, 이바라키, 미야기, 니가타 등 각 지방을 돌아다니며 주주를 권유하였다. 소네는 한국 궁내부에 청원하여 4천 주의 주식을 인수받는 등 사방으로 힘쓴 결과, 마침내 모집액을 채울 수 있었다. 발기인은 74명, 주주 총수는 525명(내지인 475명, 재한 일본인 29명, 한국인 21명), 총 주식 수는 6만 주(내지인 5만 8,865주, 재한 일본인 2,835주, 한국 궁내부 4,000주, 한국인 2,300주)가 원만히 납입되었다.[2]
이에 1908년 9월 30일, 도쿄시 니혼바시구 사카모토마치 은행 집회소에서 창립 총회를 열었다. 시부사와(澁澤) 창립위원장의 보고 뒤에 정관을 의결하고, 이사·감사 선임 등의 건을 부의하였다. 또 이사들의 호선에 따라 다음과 같이 임원이 결정되었다.[2]
- 이사회 회장: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
- 전무이사: 오카자키 도오미쓰(岡崎遠光)
- 이사: 다카마쓰 도요키치(高松豐吉), 구메 료사쿠(久米良作), 오하시 신타로(大橋新太郎), 야마구치 타헤에(山口太兵衛), 백인기(白寅基)
- 감사역: 이토 간이치(伊藤幹一), 히라사와 미치지(平澤道次), 김시현(金時鉉)
이리하여 메이지 41년(1908년) 10월 5일, 도쿄시 교바시구 야마시타초 14번지에 일한가스 주식회사 사무소를 두고 필요한 기계기구를 주문하였다. 또한 경성에는 나이토 기술사 등 여러 직원을 파견하여 영업과 공사 준비를 하고, 이듬해 1909년 2월부터 각종 공사에 착수하였다. 같은 해 11월 3일 천장절 밤에 최초 점화를 실시하였다. 당시 종로구 일대에서 용산에 이르는 일본인 거리는 불야성이 되었으며, 불을 보려 몰려드는 사람이 많아 점등 신청은 거의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성황을 이루었다고 회고한다.[2]
당시 한미전기의 전등 요금은 16촉 2엔 50전, 10촉 1엔 60전 등 매우 비싸고 설치 공사비도 막대하게 들었기 때문에 수용자는 490여 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가스 요금은 1,000입방피트당 3엔, 가스등 1등은 월 1엔 내외였으며, 그 광력은 도저히 10촉광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밝았다. 따라서 가스 수용 가구도 개업 당초부터 이미 1,152호에 달했다.[2]

이보다 앞서, 경쟁에서 불리함을 깨달은 한미전기 측은 다케우치 쓰나(竹内綱)를 통하여 매수를 교섭해왔다. 양측이 수차례 교섭한 끝에, 1909년 6월 24일, 양측 대표자는 요코하마 국제은행에서 다케우치 쓰나, 변호사 기시 세이이치(岸清一), 그리고 은행 당국 입회하에 계약서에 조인하였다. 같은 해 7월 21일 임시 주주총회 결의를 거쳐 이를 확정하고, 170만 엔으로 한미전기의 사업 일체를 인수하였다. 동시에 회사 이름도 일한가스전기주식회사(日韓瓦斯電氣株式會社)로 고쳐, 경성에서 전등·가스·전차 사업을 독점 경영하는 거대 기업이 되었다. 1915년에는 명칭을 경성전기주식회사로 바꾸었고, 1917년에는 개성전기주식회사가 새로이 설립되었다.[2]
1930년대에 들어서 조선총독부는 전국 전력회사를 통제하고 통합하는 계획을 발표하여 1931년부터 배전회사를 대형화하였고, 1935년에는 평양 송전간선이 완성되었다. 1941년 허천강에서 청진까지의 220kV 송전선이 준공되었으며, 1943년에는 조선송전 등 3개사가 통합되어 조선전업주식회사가 출범하고, 같은 해 조선전력관리령이 공포되었다. 1944년에는 수풍댐 발전소가 준공되어 60만kW의 대규모 전력을 공급하게 되었다.[2]
해방 이후
해방 이후 1946년 발전설비용량이 100만kW를 돌파하였고, 1948년에는 발전함 Jacona와 Electra가 부산과 인천에서 가동을 시작하였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송배전망 복구와 함께 1953년 전원개발위원회가 설치되었고, 1956년에는 한미원자력협력협정이 체결되며 원자력 발전 도입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1961년에는 조선전업, 경성전기, 남선전기가 통합되어 한국전력공사 주식회사가 발족하였고, 같은 해 전원개발 5개년계획이 수립되었다.
1960~70년대는 급격한 성장기로, 1964년 해방 이후 최초로 제한송전이 전면 해제되었고, 1968년 발전설비가 100만kW를 돌파하였다. 1973년에는 소양강댐 발전소가 준공되었으며, 1978년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상업용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가 준공되었다. 1980년대 들어 1982년 한국전력공사가 공식 발족하였고, 1987년에는 최대수요전력이 1000만kW를 넘어서며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1990년대에는 해외 진출이 본격화되어 1995년 필리핀 말라야발전소 운영을 수주하였고, 1994년에는 뉴욕증권거래소에 한국전력공사 주식이 최초 상장되었다. 또한 1995년 북한과 경수로 공급협정을 체결하며 한반도 에너지 협력 사업에도 참여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발전 자회사 분리와 해외 발전소 건설이 이어졌다. 2001년 발전부문이 6개 자회사로 분리되었고, 국내 발전설비는 5000만kW를 돌파하였다. 2009년에는 UAE에 원전을 수출하여 한국 최초의 해외 원전 수출 기록을 세웠다. 이어 2010년대에는 요르단과 필리핀 등에서 발전소를 준공하고, 2014년 본사를 전라남도 나주 빛가람혁신도시로 이전하였다. 2016년에는 포브스 글로벌 2000에서 전력유틸리티 분야 1위를 기록하였다. 최근에는 2024년 1월 기간통신사업자 등록을 마치며 전력뿐 아니라 통신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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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사장
- 1대 박영준(1961~1968)
- 2대 정래혁(1968~1970)
- 3대 김일환(1970~1971)
- 4대 김상복(1971~1973)
- 5대 민충식(1973~1976)
- 6대 김영준(1976~1982)
- 7대 성낙정(1982~1983)
- 8대 박정기(1983~1987)
- 9대 한봉수(1987~1989)
- 10대 안병화(1989~1993)
- 11대 이종훈(1993~1998)
- 12대 장영식(1998~1999)
- 13대 최수병(1999~2002)
- 14대 강동석(2002~2004)
- 15대 한준호(2004~2007)
- 16대 이원걸(2007~2008)
- 17대 김쌍수(2008~2011)
- 18대 김중겸(2011~2012)
- 19대 조환익(2012~2017)
- 20대 김시호(2017~2018)
- 21대 김종갑(2018~2021)
- 22대 정승일(2021~2023)
- 23대 김동철(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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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본부
- 제주본부
자회사
발전 부문 자회사가 전력을 생산하고 한국전력공사는 송전, 변전, 배전, 판매 등을 담당한다.
발전부분에는 6개의 자회사가 있다.
기타 자회사로는 아래가 있다.
공정거래법상 지위
기업집단 한국전력공사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14조에서 규정하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다. 한국남동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동서발전, 한국서부발전,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공사, 한국전력기술, 한국중부발전, 한전케이피에스, 한전원자력연료, 한전산업개발, 한전케이디엔, 가로림조력발전 등 13개 회사가 여기에 소속된다.[5]
갤러리
- 구 한국전력공사 삼성동 본사 건물
- 관악동작지사 건물
- 한국전력 남인천지사(비류대로 304)
같이 보기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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