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
제정 로마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로마 제국(라틴어: Imperium Romanum 임페리움 로마눔[*] 코이네 그리스어: Βασιλεία τῶν Ῥωμαίων)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유럽, 북아프리카, 서아시아 등지를 다스린 보편 제국이다.
로마 제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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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Senatus Populusque Romanus Imperium Romanum[lower-alpha 1] 코이네 그리스어: Βασιλεία τῶν Ῥωμαίω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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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국가 로마의 부상에서 서로마 제국의 몰락까지 로마 영토의 진화 | ||||
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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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
정치체제 | 준선거적 전제군주제 | |||
황제 기원전 27년 ~ 서기 14년 98년 ~ 117년 117년 ~ 138년 306년 ~ 337년 379년 ~ 395년 | 아우구스투스(초대)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콘스탄티누스 테오도시우스(말대) | |||
입법부 | 제국 원로원 | |||
역사 | ||||
• 악티움 해전 | 기원전 31년 | |||
• 아우구스투스 칭호 시작 | 기원전 27년 | |||
• 5현제 치세 | 96년 ~ 180년 | |||
•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제국 분할 | 285년 | |||
• 콘스탄티노폴리스 천도 | 330년 | |||
• 제국의 동서방 행정분할 | 395년 | |||
• 제국의 서방 영토 상실 | 476년 | |||
• 멸망 | 1453년 | |||
지리 | ||||
면적 | 5,000,000 km2 | |||
인문 | ||||
공용어 | 라틴어 | |||
데모님 | 로마인 | |||
인구 | ||||
117년 어림 | 88,000,000명 | |||
인구 밀도 | 17.6명/km2 | |||
경제 | ||||
통화 | 콰드란스 세미스 아시스 퀴나리우스 세스테르티우스 데나리우스 아우레우스 솔리두스 | |||
종교 | ||||
종교 |
로마 제국은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가 사실상 공화정을 폐지하면서 등장하였고, 이후 3세기의 군인 황제 시기까지는 여러 속주들을 통합한 형태의 원수정이었으며 이탈리아 반도의 로마를 유일한 수도로 두고 있었다. 그러나 군인 황제 시기에 이르자, 여러 장군들이 황제를 자칭함에 따라 로마 제국은 밀라노와 라벤나 등지에 수도를 둔 서로마 제국과 니코메디아와 안티오크, 콘스탄티노플 등에 수도를 둔 동로마 제국으로 나뉘었다. 로마는 476년까지 서로마와 동로마의 공식 수도였으나, 오도아케르가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를 퇴위시키고 야만족들이 이탈리아 반도에 자치 왕국들을 세우자 콘스탄티노플이 로마 제국의 유일한 수도로 남게 되었다. 서로마 제국이 게르만족에게 망한 이후, 동쪽의 동로마 제국은 점차 그리스화되기 시작하였으며 이를 기점으로 고대 로마가 끝나고 중세가 시작된 것으로 본다.
로마 제국의 전신은 기원전 6세기경 왕정을 몰아내고 세워진 로마 공화정이었다. 그러나 로마의 공화정은 여러 차례의 내전과 전쟁을 거치며 불안정해졌고, 기원전 1세기에는 뛰어난 장군인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등장하면서 거의 명맥이 끊겼다. 카이사르는 독재관으로 취임하여 1인 독재 구조를 굳혀나갔으나, 기원전 44년 즈음에 공화파에 의해 살해당했다. 카이사르 사후에는 그의 양자인 아우구스투스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상대로 한 악티움 해전에서 기원전 31년에 승리하였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정복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후 로마의 원로원은 기원전 27년에 아우구스투스에게 '프린켑스', 즉 로마의 제1시민이라는 칭호를 수여하였고, 아우구스투스는 사실상의 황제로 즉위하여 군림하였다.
아우구스투스 이후 약 200여 년 동안 로마 제국은 기나긴 평화를 맞았다. 이를 팍스 로마나라고 칭한다. 로마 제국은 트라야누스 황제 시기에 최대 판도를 이룩하였으며, 전 지중해 세계를 통합하면서 선진 문명을 유럽 각지에 전파하였다. 허나 이러한 번영기도 점차 끝났고, 제국은 콤모두스 황제 시기부터 불안정해지기 시작하더니 3세기에는 군인들이 서로 황제를 칭하고 각지에서 갈리아 제국과 팔미라 제국 등이 로마에 반기를 들며 완전한 혼란기로 들어섰다. 이후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제국의 재통일에 성공하였으며, 후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제국을 더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전제정과 사두 정치를 실시하였다. 콘스탄티누스 1세 치세에는 밀라노 칙령을 반포하면서 기독교가 빠르게 세를 불렸고, 비잔티움 지역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건설한 후 그곳으로 천도하였으며, 테오도시우스 1세 치세에는 기독교가 제국의 국교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395년 테오도우스 1세 사후에 제국의 구획은 동방 황제가 다스리는 동로마 제국(동방 제국)과 서방 황제가 다스리는 서로마 제국(서방 제국)으로 분할되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북방의 야만족들이 대거 훈족을 피해 제국의 서방 국경 내부로 도망쳐 들어오면서 서방 제국이 급격히 불안정해지기 시작하였다. 결국 게르만족 출신의 오도아케르가 서방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폐위시켰고, 당시 동방 황제였던 제논은 480년에 공식적으로 서방 황제직을 폐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유럽의 지배자들은 종종 정통성과 권위를 빌리기 위하여 서로마 제국의 후계자를 자칭하는 경우가 잦았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가 신성 로마 제국이었다. 서방 제국이 사라진 이후에도 동방 제국은 약 1,000여 년간 지속하며 번성하였는데, 전성기에는 서방 고토 상당수를 회복하며 힘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방 제국도 시간이 흐르자 쇠퇴하였고, 1453년에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며 로마 제국이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다.
로마 제국이 워낙 방대한 영토를 지배했으며 오랫동안 번성했기에, 로마의 문화는 유럽과 아프리카, 중동 각지에 퍼지며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언어, 종교, 예술, 건축, 철학, 법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로마의 입김이 미쳤으며, 특히 로마에서 사용되던 라틴어는 로망스어로 분화되며 유럽 거의 대부분의 권역에서 사용되게 되었다. 한편 제국의 국교로 채택한 기독교는 로마 가톨릭과 동방정교 등으로 나누어지며 전세계로 퍼져나갔고, 현재 세계 제1의 종교 지위를 차지할 정도로 그 영향력이 크다. 로마의 건축도 오랫동안 영향을 주었는데, 로마네스크 양식, 르네상스 양식, 신고전주의 양식 등이 로마의 영향을 받았으며 심지어 이슬람 건축 양식도 로마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또한 로마의 체계적인 법률은 후대에까지 널리 이어지며 나폴레옹 법전, 미국 헌법 등에 계승되었으며 전세계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며 널리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