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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로 (군산 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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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로(繁榮路)는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경장동 팔마광장 교차로부터 전주시 덕진구 반월동 조촌 교차로까지 잇는 전북특별자치도의 도로이다. 전 구간 국도 제26호선에 속한다. 그 외에 군산시 운동장사거리부터 개정파출소까지 구간은 지방도 제709호선이, 대야검문소 일대에서는 지방도 제711호선지방도 제744호선이, 대야검문소부터 호원대삼거리까지 구간은 지방도 제718호선이, 전주시 대흥 교차로부터 조촌 교차로까지 구간은 국도 제21호선이 중복된다. 동군산 나들목과 접속하고 있어 서해안고속도로와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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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1908년 10월 일제 통감부가 치도국을 세우고 가장 먼저 건설한 도로로 전주와 군산을 잇는 도로라는 의미로 전군가도(全群街道)라 하였다. 당시 총 연장은 46km였으며, 조선에서 최초로 건설된 시멘트 콘크리트 도로였다. 이 도로를 건설할 때 있었던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이 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토지를 측량하던 측량사들은 지역 농민들의 반발이 심해 측량할 때 일본 헌병을 동반했다고 하며, 도로 건설할 때 투입한 인력은 항일운동으로 붙잡힌 의병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에서는 이 도로를 건설할 때 벚나무를 심은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그 나무는 흔히 보는 소나무도 참나무도 아니었다. 일본말로 '사쿠라'라고 했고, 그 꽃은 일본 사람들이 받드는 나라꽃이라는 것이었다. 헌병들이 그 나무를 받드는 정성은 실로 대단했다. 처음에 나무심기를 나선 사람들은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알 리가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 두 자 남짓한 길이의 묘목은 별로 보잘 것도 없고 대수로울 것도 없는 어린 나무일 뿐이었다. 그래서 예사로 나뭇단을 내던지거나 넘어다녔다. 그런데 그때마다 헌병들의 욕설과 함께 개머리판이 날아들었다. 살기등등한 헌병들에게 아무 영문도 모르고 얻어맞고 걷어차인 다음에야 그들은 통변(通辯)을 통해 그 나무에 얽힌 사연을 듣게 되었다. 의병 출신인 그들은 비감하고 참담한 심정으로 '사쿠라'를 심어나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중에서

이 도로가 건설되고 나서 매년 추수철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은 이 도로를 통해 운반되었으며, 이로 인해 1909년 조선의 전체 쌀 반출량의 32.4%가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빠져나갔다. 이 도로 건설 이후 일본은 1911년까지 조선에 총 741km에 이르는 신작로를 건설했다. 이 때문에 농민들의 생활은 더욱 피폐해졌는데, 남원 지역에서 불리던 민요인 길쌈노래에는 "치마 끈 졸라매고 논 사노니 신작로 복판에 다 들어가네"라는 가사가 들어갈 정도였다.[1]

  • 2009년 7월 10일 : 2개 이상 시·군에 걸쳐 있는 도로로 번영로를 고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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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유지

전북특별자치도

노선

자세한 정보 이름, 접속 노선 ...

주요 건물 및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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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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