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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과학 출판물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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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과학 출판물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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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은 20세기 저명한 이론물리학자로, 특수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아인슈타인은 또한 통계역학에 중요한 공헌을 했는데 특히 브라운 운동에 대한 그의 연구, 비열역설에 대한 그의 해결, 그리고 변동과 소산연결을 통해서였다. 해석에 대한 그의 유보에도 불구하고 아인슈타인은 주로 광자에 대한 이론적 연구를 통해 양자역학과 간접적으로 양자장론에도 중요한 공헌을 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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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네덜란드 레이던에 있는 파울 에렌페스트의 자택 서재에 있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의 과학 출판물을 포함한 저작들은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프린스턴 대학교 출판부, 그리고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의 컨소시엄인 아인슈타인 논문 프로젝트에 의해 디지털화되어 영어 번역과 함께 인터넷에 공개되었다.[2][3]

아인슈타인의 과학 출판물은 아래 네 개의 표에 나열되어 있다: 학술지 논문, 책 장, 책 및 공인 번역본. 각 출판물은 첫 번째 열에 실립(Schilpp) 참고문헌(Albert Einstein: Philosopher–Scientist, pp. 694–730)에 따른 번호와 아인슈타인의 전집의 논문 번호로 색인되어 있다. 이 두 참고문헌의 완전한 인용은 아래 참고 문헌 섹션에서 찾을 수 있다. 실립 번호는 현재 아인슈타인 생애의 더 긴 기간을 다루기 때문에 노트(각 표의 마지막 열)에서 상호 참조로 사용된다. 제목의 영어 번역은 일반적으로 출판된 전집에서 가져왔다. 그러나 일부 출판물의 경우 이러한 공식 번역을 사용할 수 없으며, 비공식 번역은 § 위첨자로 표시된다. 아인슈타인의 공동 작업은 라벤더색으로 강조 표시되어 있으며, 공동 저자는 표의 마지막 열에 제공된다.

아인슈타인 전집 중 그의 서신에 할애된 다섯 권(1, 5, 8–10권)도 있었는데, 이 중 상당수는 과학적 질문과 관련이 있었지만 출판을 위해 준비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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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기 및 주요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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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6월 물리학 연보(Annalen der Physik)의 목차. 광전 효과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논문은 이 목록에서 여섯 번째이다.

아인슈타인의 과학적 발견에 대한 다음 연대기는 아래 나열된 출판물에 대한 맥락을 제공하고 그의 작업 전반에 걸쳐 흐르는 주요 주제를 명확히 한다. 아인슈타인의 과학 경력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시기(1901년부터 1933년까지) 동안 아인슈타인은 주로 독일어 학술지, 특히 물리학 연보에 논문을 발표했으며, 전문 물리학자가 된 후 베를린의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를 포함하여 유럽의 다양한 독일어권 기관에서 일했다. 1933년 미국으로 영구 이주한 후, 아인슈타인은 1955년 사망할 때까지 뉴저지주 프린스턴의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두 번째 시기 동안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논문을 영어로 피지컬 리뷰와 같은 북미 학술지에 제출했다.[4] 아인슈타인은 1905년, 그의 기적의 해 또는 물리학의 기적적인 해에 제출한 논문으로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의 경력의 이 단계에서 나온 그의 획기적인 공헌은 방사선 공동 내에 섬세하게 매달린 거울의 요동이라는 단일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그가 빛의 본질, 요동의 통계역학, 그리고 움직이는 물체의 전자기학을 탐구하게 했다.[5]

  • 1901년부터 1904년까지 아인슈타인은 열역학통계역학 문제를 다루는 그의 첫 과학 논문을 제출했다.[6]
  • 1905년, 아인슈타인은 1926년 화학자 길버트 루이스광자라고 명명한 빛 양자의 존재가 광전 효과를 설명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7] 그는 전자기 복사를 기체로 취급하고 그의 "발견적" 처리에 열역학적 추론을 적용하여 광자의 에너지 가 플랑크 관계식, 로 주어지며, 여기서 는 새로운 자연 상수(플랑크 상수)이고 (뉴)는 광자의 주파수라고 주장했다. 막스 플랑크는 양자 가설을 단순히 흑체 복사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얻기 위한 수학적 속임수로 도입했지만(플랑크 법칙), 아인슈타인은 이를 물리적 실재의 한 측면으로 간주했다.[8](pp. 94–101) 1905년 그의 계산 중 하나에서 아인슈타인은 방정식 도 사용했지만 정당화하거나 설명하지는 않았다. 여기서 는 광자의 운동량이고 는 진공에서의 빛의 속력이다.[9] 1909년, 아인슈타인은 광자가 에너지뿐만 아니라 운동량도 전달하며, 플랑크의 흑체 복사 법칙이 성립한다면 전자기 복사는 입자-유사 및 파동-유사 특성을 모두 가져야 함을 보여주었다. 이는 파동-입자 이중성 원리의 선구자였다.[10] 그는 빛 양자에 대한 연구로 192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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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프레드 클라이너의 지도 아래 취리히 대학교에 제출된 아인슈타인의 분자 차원박사 학위 논문 (1905년)
    1905년, 지도 교수인 알프레드 클라이너와의 분쟁을 피하기 위해 아인슈타인은 박사 학위 논문으로 고전 유체역학을 사용하여 분자 차원을 결정하는 비교적 전통적인 문제를 선택했다.[11] 이러한 계산은 이미 기체를 사용하여 수행되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액체를 사용하여 이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아인슈타인은 더 나은 실험 데이터를 통합한 후 아보가드로 상수에 대한 상당한 추정치를 얻었다.[8](pp. 101–103) 아인슈타인은 1906년 1월 취리히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6] 아인슈타인의 박사 학위 논문은 콘크리트 혼합 및 유제품 생산과 같은 다양한 공학 분야에 응용되어 지금까지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중 하나로 남아 있다.[8](p. 103)
  • 1905년, 박사 학위 논문을 제출한 다음 달에 아인슈타인은 식물학자 로버트 브라운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브라운 운동 이론을 물체와의 분자 충돌 횟수 변화의 관점에서 발표했다.[12][13](pp. 142-45) 그는 액체에 떠 있는 꽃가루 입자가 출발점으로부터 이동한 거리가 경과 시간의 제곱근에 비례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아보가드로 상수를 결정했다.[8](pp. 103–106) 몇 주 전, 그는 일반적인 변동 소산 정리의 첫 번째 예시이자 아보가드로 상수의 추정치를 제공한 확산에 대한 아인슈타인 관계식을 도출했다.[14] 몇 달 안에 아인슈타인의 브라운 운동 설명은 헨리 지덴토프에 의해 실험적으로 검증되었다.[8](pp. 103–106) 아인슈타인 연구의 놀랍도록 시각적인 특성은 과학자들에게 원자의 실재를 확신시켰다.[6][13](pp. 142-45)
  • 1905년, 아인슈타인은 갈릴레이 상대성과 관찰된 빛의 속력의 일정성(19세기 물리학의 역설)을 조화시킨 특수 상대성이론을 개발했다.[15] 특수 상대성이론은 현재 현대 물리학의 기초로 간주된다. 움직이는 시계는 더 느리게 작동하고,[16] 움직이는 물체는 운동 방향으로 짧아지며, 사건의 순서는 절대적이지 않다는 그들의 반직관적인 예측은 실험적으로 확인되었다. 특수 상대성이론으로 아인슈타인은 에테르의 개념을 구식으로 만들었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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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2년 원고에 있는 아인슈타인의 질량-에너지 방정식. 그는 원래 에너지를 나타내기 위해 대신 을, 빛의 속력을 나타내기 위해 대신 를 사용했다.[18](p. 139)
    1905년, 아인슈타인은 "물체의 질량은 그 에너지 함량의 척도"라고 결론지었다. 현대적인 형태로, 그가 쓴 방정식은 이며, 여기서 는 물체의 에너지이고, 은 그 물체의 질량이며, 는 진공에서의 빛의 속력이다. 그는 그의 새로운 방정식을 테스트하기 위해 "에너지 함량이 높은 정도로 변동하는 물체, 예를 들어 라듐 염"을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18](pp. 137–139) 아인슈타인의 질량-에너지 등가는 나중에 원자핵질량 결손 연구를 통해 검증되었다. 핵반응에서 방출되는 에너지[19]—이는 원자력핵무기에 필수적이다—는 이러한 질량 결손으로부터 추정할 수 있다.[20]
  • 1907년과 1911년에 다시, 아인슈타인은 플랑크 관계식을 일반화하여 고체의 비열에 대한 최초의 양자 이론을 개발했다.[21] 그의 이론은 비열이 에너지의 에너지 등분배법칙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보다 종종 작다는 19세기 물리학의 역설을 해결했다. 그의 작업은 또한 플랑크 관계식, 가 물리학의 근본 법칙이며, 단순히 흑체 복사에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처음으로 보여주었다.[22] 아인슈타인 고체 모형의 예측을 검증하기 위해 수행된 실험은 새로운 냉동 기술, 저온 물리학,[13](pp. 152-4) 그리고 발터 네른스트에 의한 열역학 제3법칙의 발견으로 이어졌다.[13](p. 162) 아인슈타인의 비열 공식은 높은 온도에서는 잘 작동하여 뒬롱-프티 법칙을 재현했지만, 극히 낮은 온도에서는 실패했다. 아인슈타인 자신도 이것이 고체의 모든 원자가 동일한 주파수로 진동한다고 가정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피터 디바이그의 모형에서 이 가정을 완화했고, 막스 보른테오도르 폰 카르만그들의 주기적 경계 조건에서 그랬듯이, 낮은 온도에서 실험과 더 잘 일치하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23](pp. 58-9)
  • 1907년과 1916년 사이에 아인슈타인은 현대 천체물리학우주론의 초석을 제공하는 중력의 고전적인 장 이론인 일반 상대성이론을 개발했다.[24][25] 지금까지 모든 실험적 검증을 통과한 일반 상대성이론은 스티븐 와인버그가 예측한 것과 같이 여러 가지 놀라운 예측을 한다.[26] 예를 들어 중력에 의한 빛의 휘어짐,[27][28] 물질이 시간의 흐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29] 중력으로 인한 빛의 늘어남 또는 적색편이,[30][31][32] 그리고 프레임 드래깅.[33] 아인슈타인은 1939년에 자신의 견해를 설명하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블랙홀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다.[34][35] 하지만 전파 망원경과 같은 관측 천문학의 발전 덕분에 1960년대 이후로 블랙홀의 존재를 시사하는 증거가 축적되었다.[36][34][37] 게다가 일반 상대성이론의 기초가 되는 관성 질량과 중력 질량의 등가 원리 역시 고안된 모든 검증을 통과했다.[38][39][40]
  • 1914년과 1915년 사이에 아인슈타인과 반더르 요하네스 더 하스는 자유 물체의 자기 모멘트 변화가 이 물체를 회전시킨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에 대한 일련의 논문을 발표했다. 아인슈타인-더 하스 효과는 각운동량 보존의 결과이며, 당시에는 아직 이해되지 않았던 양자 스핀의 시연이다. 아인슈타인과 더 하스는 그들의 결과가 앙드레마리 앙페르의 "분자 전류"가 자석의 장을 담당한다는 가설을 지지하며, 본질적으로 전자의 존재를 시사한다고 주장했다.[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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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 상대성이론을 설명하는 아인슈타인의 원고 첫 페이지 (1915년에서 1916년)
    1916년, 아인슈타인은 중력파의 존재를 예측했다. 그러나 이 논문은 오류와 오해로 가득했다. 그는 1918년에 발표된 다른 논문에서 대부분을 수정했지만, 느리게 움직이는 소스에서 방출되는 에너지 흐름에 대한 그의 공식은 여전히 두 배의 오차가 있었다. 아서 스탠리 에딩턴이 나중에 이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했다.[43] 아인슈타인은 1936년 그의 조수인 나탄 로젠과 함께 중력파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이 문제로 돌아왔다. 익명의 검토자는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좌표의 본질을 오해했다고 언급했다.[4] 아인슈타인과 로젠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 반대 결론에 도달하여, 원통형 중력파를 설명하는 아인슈타인 장 방정식의 정확한 해인 아인슈타인-로젠 계량을 제시했다.[4][43] 중력파는 헐스-테일러 펄서를 관측하여[44] 그리고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 (LIGO)에 의해 직접 감지되었다.[45]
  • 1917년, 아인슈타인은 양자 역학 시스템의 고유값을 계산하기 위한 반고전적 아인슈타인-브릴루앵-켈러 방법을 제시했다.[46][47] 이는 보어-조머펠트 양자화 조건의 개선으로,[48] 다양한 문제 해결을 가능하게 한다.[47] 수소 원자의 보어 모형은 간단한 예시이지만, EBK 방법은 이핵 양이온 H2+ 및 HeH2+와 같은 더 복잡한 시스템에 대해서도 정확한 예측을 제공한다.[49] 아인슈타인의 불변 양자화 조건은 루이 드 브로이물질파를 발견하고 에르빈 슈뢰딩거슈뢰딩거 방정식을 발견하도록 이끌었다.[50]
  • 1917년, 아인슈타인은 우주론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시작했다. 그의 장 방정식이 당시 일반적으로 생각되었던 정적 우주를 예측하도록 하기 위해 아인슈타인은 우주상수 (대문자 람다)를 도입했다. 1930년대 초, 에드윈 허블우주의 팽창 확인을 알게 된 후, 아인슈타인은 를 철회했다.[51](pp. 355–6)현재의 이해는 가 0이 아니라는 것이다. 스티븐 와인버그가 설명했듯이, "우주상수를 단순히 없애는 것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진공의 에너지 밀도에 기여하는 모든 것이 우주상수와 똑같이 작용하기 때문이다."[52]
  • 1918년, 아인슈타인은 원자가 전자기 복사를 방출하고 흡수하는 과정(아인슈타인 계수)에 대한 일반 이론을 개발했다. 이는 레이저 (광증폭 자극 방출 복사)의 기초이며, 현재 가장 잘 검증된 물리 이론인 현대 양자 전기역학의 발전을 형성했다.[53]
  • 1924년, 아인슈타인은 사티엔드라 나트 보스의 논문을 읽고 광자에 대한 새로운 통계적 방법을 사용하여 플랑크 법칙을 도출했다. 그는 이 아이디어를 보스-아인슈타인 통계로 더욱 발전시키고 원자와 같은 질량을 가진 입자들의 앙상블에 적용하여 새로운 물질 상태인 보스-아인슈타인 응축을 예측했다.[54](pp. 327–329) 보스-아인슈타인 응축은 1995년 칼 위먼에릭 얼린 코넬루비듐-87을 사용하여 처음으로 달성했다. 그 이후로 보스-아인슈타인 응축은 액체 헬륨-4와 같은 다른 물질을 사용하여도 달성되었는데, 이는 2.17 K 이하의 온도에서 초유체가 된다.[55] 보스와 아인슈타인의 논문은 초유체, 초전도 현상 및 기타 현상의 기초를 형성하는 양자통계역학에 대한 획기적인 공헌이다.[56]
  • 1935년, 보리스 포돌스키나탄 로젠과 함께 아인슈타인은 현재 EPR 역설로 알려진 것을 제안했다. 아인슈타인과 그의 동료들은 양자 역학적 파동 함수가 물리적 세계에 대한 불완전한 설명이어야 하며, 표준 양자 역학에서 설명되지 않은 "숨은 변수"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57] 이 논문은 같은 해에 출판된 에르빈 슈뢰딩거의 논문에서 슈뢰딩거가 고양이 역설을 언급하며 만든 용어인 양자 얽힘 현상을 설명한다.[58] 이는 아인슈타인의 가장 논란이 많은 논문이며,[4] 그가 미국으로 이주한 후 발표한 가장 중요한 논문이다.[58] 1951년, 데이비드 봄은 원래의 사고 실험을 스핀으로 재구성했고, 1964년 존 스튜어트 벨은 그가 도출한 부등식을 테스트하기 위한 실험을 제안했다. 1970년대 이후 끊임없이 신뢰도를 향상시키며 수행된 다양한 실험들은 양자 얽힘의 실재성을 입증하고 아인슈타인의 국소적 실재론 개념을 반증했다.[58][59]
  • 1935년, 아인슈타인과 로젠은 특이점과 관련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예를 들어 슈바르츠실트 해의 중심 특이점과 사건의 지평선상의 특이점) 동일한 우주의 다른 영역을 연결하는 가설적인 터널인 아인슈타인-로젠 다리를 제안했다. 그러나 후속 연구는 사건의 지평선이 물리적인 특이점이 아니라 좌표 특이점임을 입증했다.[60] (이는 에딩턴-핀켈슈타인 좌표 또는 크러스컬-세케레시 좌표로 제거할 수 있다.) 더욱이 존 아치볼드 휠러로버트 W. 풀러는 1962년에 이 가설적인 구조인 웜홀이 불안정하여 광자가 통과하기도 전에 붕괴할 것이라고 보여주었다.[61] 오늘날 웜홀은 공상 과학 소설에서 우주 및 시간 여행을 위한 플롯 장치로 남아 있다.[60]
  • 그의 생애 마지막 30년 동안 아인슈타인은 다양한 고전 통일장 이론전자기학중력, 그리고 가능하게는 양자역학을 점점 더 정교한 수학, 예를 들어 원거리 평행을 사용하여 설명할 수 있는지 탐구했다. 그는 헤르만 바일, 테오도어 칼루차, 오스카르 클레인과 같은 소수의 연구자들과 함께했다.[51] 그러나 이러한 이론들이 실험 결과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노력은 궁극적으로 실패했다.[62]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이 잠시 추구했던 칼루차-클레인 이론은 전자의 질량을 약 1018배만큼 틀리게 예측했다.[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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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논문

요약
관점

아인슈타인의 원본 과학 연구 대부분은 학술지 논문으로 발표되었다. 아인슈타인이 다른 과학자들과 협력한 논문은 라벤더색으로 강조 표시되어 있으며, 공동 저자는 "분류 및 주석" 열에 나열되어 있다. 총 272편의 과학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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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장

요약
관점

#288 출판물을 제외하고 다음 책 장들은 아인슈타인이 단독으로 저술했다. 대부분의 장이 이미 영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영어 번역은 별도의 열에 제공되지 않고 원본 제목 뒤에 괄호로 제공된다. 이는 표가 페이지 여백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 총 31개의 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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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관점

다음 책들은 아인슈타인이 저술했다. #278 출판물을 제외하고는 공동 저자가 없었다. 총 16권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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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된 번역본

요약
관점

다음은 아인슈타인이 승인한 그의 저작 번역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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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내용주

  1. 이 색인 번호는 다음에서 가져왔다: 1. 참고 문헌에 인용된 Schilpp 참조, pp. 694–730. 2. 프린스턴 대학교 출판부에서 발행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전집으로, 기울임꼴 CP, 굵은 글씨의 권 번호, 그리고 해당 권 내의 논문 번호로 표시된다. 3. 에른스트 와일(Ernst Weil)의 Albert Einstein: A Bibliography of His Scientific Papers, 1901–1954로, "Weil #"으로 표시되며, 여기서 #는 해당 참조 내의 논문 번호이다. "주요 저작"은 별표(*)로 표시된다(예: Weil *235).
  2. 논문 제목의 번역은 일반적으로 아인슈타인의 전집의 출판된 권에서 가져왔다. 그러나 일부 논문의 경우 그러한 공식 번역을 사용할 수 없다. 비공식 번역은 § 위 첨자로 표시된다.
  3. 권 번호는 굵은 글씨로 표시된다. 학술지 이름에 "ser. 4"와 같은 용어는 학술지의 시리즈를 의미하며, 이는 여러 권의 묶음이다. 예를 들어, 학술지는 60년 동안 연간 권으로 나타나다가(1–60권), 두 번째 시리즈에서 다시 권 번호를 시작할 수 있다.
  4. 아인슈타인 논문의 주제 분류는 첫 번째 항목이며, 굵은 글씨로 표시된다. 공동 저자는 항상 두 번째 항목으로 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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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참고 자료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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