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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한국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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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는 9월 30일부터 10월 9일까지 모두 7차전을 치러서, 롯데 자이언츠가 삼성 라이온즈를 4승 3패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시리즈 MVP는 최종전에서 역전 3점 홈런을 친 롯데의 유두열이 차지했다. 최동원이 1차전 4-0 완봉승, 3차전 3-2 완투승에 이어, 5차전 완투패, 6차전에서 구원 등판해 5이닝을 던져 3승째를 따낸 뒤, 7차전에서 6-4 완투승을 거두는 등[1] 시리즈에서 혼자 4승(5경기 출전 4승 1패)을 기록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한편, 최다 선발승(15선발승) 투수 김시진과 타격 3관왕(타율 홈런 타점)[2] 이만수를 주축으로 한 전기리그 우승팀 삼성이 우세했음에도 후기리그 막판 롯데를 시리즈 상대로 선택하기 위해 일부러 '져주기' 행태를 벌인 데다[3] 같은 시기 이만수 타격 3관왕 만들어주기 행태[4] 탓인지 2승 2패 뒤 5차전 승리로 앞서나갔지만 6차전 이후 2패로 준우승에 머물렀는데 이만수 장효조를 제외하곤 믿을만한 타자가[5] 없었던 것이 컸으며 그나마 홈런 10위권에 든 타자는 이만수(23개로 1위) 밖에 없었다. 아울러, 삼성은 에이스 김시진이 1차전을 앞두고 경기장으로 향하기 위해 차를 몰던 중 동네에서 놀던 어린이와 접촉사고가 나자 이를 수습하기 위해 경기장에 늦게 도착했는데 다행히 그 어린이는 크게 다치지 않았으나 큰 경기에 앞서 마음을 여유롭게 먹을 겨를이 없었다는 게 문제가 됐으며 이 탓인지 김시진은 1차전에서 3이닝 4실점(3자책)으로 패전투수가 된 뒤 3차전 선발등판했지만 2-2 동점이던 8회말 2사 후 홍문종의 강한 타구에 왼쪽 발목을 맞고 병원에 실려나가는 부상을 당했으며[6] 6차전에 재등판했으나(선발) 집중 7안타 6실점으로 무너져[7] 패전투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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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시즌
경기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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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경기 결과
요약
관점
1차전
- 롯데 최동원, 한국시리즈 사상 첫 완봉승
양 팀의 에이스 투수들이 맞붙어 투수전이 예상되었으나, 경기의 양상은 예상을 벗어났다. 김시진은 2회 초 박용성에게 투런 홈런을 허용한 데 이어, 4회 초에는 김용희에게 적시타를 맞고 박용성의 번트 타구 처리 과정에서 실책을 범하며 총 4실점을 기록하고 강판되었다.
김시진은 한국시리즈 1차전을 앞두고 경기장으로 향하던 중 동네에서 놀던 어린아이와 접촉사고를 일으켰다. 다행히 아이는 크게 다치지 않았으나, 사고를 수습하느라 경기장에 늦게 도착하였고, 이로 인해 큰 경기를 앞두고 마음의 여유를 잃은 채 경기에 임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결국 경기는 최동원이 7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한국시리즈 사상 최초의 완봉승을 거두는 결과로 마무리되었다. 김시진의 뒤를 이어 등판한 권영호는 6이닝 동안 3피안타의 호투를 펼쳤다. 삼성 역시 최동원의 공을 공략하기 위해 7안타를 기록하며 분전했으나, 득점으로 연결하지 못한 채 무득점에 그쳤다. 권영호는 이후에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안정적인 투구를 이어갔다.
이 경기는 훗날 김시진의 한국시리즈 불운의 시작점으로 평가된다. 그는 통산 124승을 기록한 뛰어난 투수였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단 한 번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0승 7패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겼다.
2차전
- 삼성 김일융, 완투승
롯데의 2차전 선발 투수는 신인 안창완이었다. 그는 1984년 프로 무대에 데뷔한 이후 불펜 요원으로 27경기 70이닝을 소화하며 평균자책점 1.67의 우수한 성적을 기록한 바 있다. 당시 불펜 투수들이 대체로 2~3이닝씩 던졌던 것을 감안하면, 안창완 또한 이닝 소화 능력이 충분히 검증된 선수였다. 다만, 삼성의 선발이 팀의 에이스 김일융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경기의 결과는 어느 정도 예견된 측면이 있었다.
경기는 초반까지만 해도 팽팽하게 전개되었다. 3회 말 이전까지 1대 1의 균형이 유지되었으나, 장효조가 투런 홈런을 터뜨리며 흐름을 단숨에 가져왔다. 이후 롯데의 강병철 감독은 좌우 투수를 번갈아 기용하며 임호균, 천창호, 배경환 등을 차례로 등판시켰지만, 7회 말 삼성이 4점을 추가하며 승부의 추를 완전히 기울였다.
3회 이후 점수가 벌어지자 강병철 감독은 승부를 과감히 정리하고, 임호균을 짧게 등판시킨 뒤 내려보내는 등 남은 시리즈를 대비하는 전략적인 운영을 보였다.
3차전
| 팀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
|---|---|---|---|---|---|---|---|---|---|---|---|---|---|---|---|---|---|---|---|---|---|---|---|---|---|
| 삼성 라이온즈 | 0 | 0 | 0 | 1 | 0 | 0 | 1 | 0 | 0 | 2 | - | - | |||||||||||||
| 롯데 자이언츠 | 0 | 1 | 1 | 0 | 0 | 0 | 0 | 0 | 1 | 3 | - | - | |||||||||||||
| 승리 투수: 최동원 패전 투수: 권영호 | |||||||||||||||||||||||||
1차전의 리턴 매치였다. 롯데는 삼성 수비진의 잇따른 실책을 틈타 2회 말과 3회 말에 각각 1점씩을 올리며 기선을 제압했다. 최동원은 4회에 한 점을 내주었으나 이후 안정감을 되찾아 호투를 이어갔다. 7회 득점권 위기에서 장효조에게 적시타를 허용해 추가 실점을 했지만, 그 외의 타자들을 철저히 봉쇄하며 위력을 발휘했다.
김시진은 1차전과 달리 산발적인 5피안타만을 허용하며 7회까지 2실점으로 호투를 이어갔다. 그러나 8회 말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홍문종의 강한 타구에 왼쪽 발목을 맞고 쓰러지는 불운을 겪었다. 이후 긴급 등판한 권영호가 8회를 무실점으로 막았으나, 9회 말 1사 2루 상황에서 정영기에게 끝내기 안타를 허용하며 경기는 롯데의 승리로 끝났다.
1차전에서 완봉승을 거둔 뒤 이틀 만에 다시 등판한 최동원은 이날 12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당시 한국시리즈 한 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을 세웠다. 그는 완투승으로 시리즈 2승째를 올리며 팀의 중심 투수로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입증했다.
4차전
| 팀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
|---|---|---|---|---|---|---|---|---|---|---|---|---|---|---|---|---|---|---|---|---|---|---|---|---|---|
| 삼성 라이온즈 | 1 | 0 | 0 | 1 | 1 | 0 | 4 | 0 | 0 | 7 | - | - | |||||||||||||
| 롯데 자이언츠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 | - | |||||||||||||
| 승리 투수: 김일융 패전 투수: 임호균 홈런: 삼성 – 송일수(7회 1점), 정현발(7회 2점) | |||||||||||||||||||||||||
최동원의 활약에 가려졌지만, 임호균 역시 1984년 롯데에서 제2선발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후기리그 우승에 기여한 투수였다. 그는 그해 롯데 소속 투수 중 최동원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하며 안정적인 피칭을 선보였다.
그러나 이날 맞상대 선발은 삼성의 에이스 김일융이었다. 김일융은 시즌 동안 222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2.27을 기록한 압도적인 투수로, 리그 정상급의 구위를 자랑했다. 경기 초반부터 삼성은 투타 양면에서 우세를 보였다. 5회까지 3점을 선취한 뒤, 정현발과 송일수의 홈런이 연이어 터지며 추가 득점을 올렸고, 결국 7대 0의 완승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삼성의 김일융은 이날 8이닝 동안 4피안타 8탈삼진을 기록하며 롯데 타선을 완벽히 제압했고, 팀에 시리즈 2승째를 안겼다.
5차전
- 롯데 최동원, 완투패
당초 삼성은 김시진을 선발로 내세울 예정이었으나, 3차전에서 입은 부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데다 시리즈 내내 부진한 모습을 보여 권영호가 대신 선발로 등판하게 되었다.
경기 초반은 롯데가 주도했다. 최동원은 5회까지 단 3안타만을 허용하며 무실점 피칭을 이어갔고, 롯데는 2대 0으로 앞서 나갔다. 그러나 연투로 인한 피로가 누적된 최동원은 6회 들어 흔들리기 시작했다. 홍승규의 3루타와 장효조의 적시타로 한 점을 내주었고, 이어 장효조의 도루와 수비 실책이 겹치며 경기는 2대 2 동점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데에는 그를 대신할 마땅한 투수가 없었고, 최동원은 결국 8회까지 책임지며 완투를 이어갔다.
삼성은 7회에 승부수를 띄웠다. 원래 6차전 선발로 예정되어 있던 김일융을 불펜에서 투입한 것이다. 김일융은 기대에 부응하듯 이후 3이닝을 완벽히 막아냈고, 그 사이 7회 말 대타 정현발이 솔로 홈런을 터뜨리며 승부를 결정지었다. 김일융은 구원 등판으로 시리즈 3승째를 기록했고, 최동원은 6피안타 6탈삼진의 호투에도 불구하고 완투패를 당했다.
이로써 롯데는 벼랑 끝에 몰리게 되었다. 사실상 최동원 한 명에게 전력을 의존한 시리즈였기에, 다른 투수를 신뢰할 여유는 처음부터 없었다. 반면 삼성은 여유로웠다. 다음 경기에는 김시진이 등판 대기 중이었고, 그 뒤로는 황규봉이 혈투로 버티고 있었다. 필요하다면 전날 3이닝을 던진 김일융을 다시 투입하는 것도 가능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의 우승은 이미 기정사실처럼 여겨졌다. 1차전, 3차전, 5차전을 모두 완투한 투수가 하루 만에 다시 마운드에 오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6차전
삼성의 선발 투수는 부상으로 5차전을 건너뛴 김시진이었다. 그러나 그는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운드에 올랐다. 훗날 김시진은 당시를 회상하며 “진통제를 먹고 던졌지만, 공을 던질 때 통증이 진통제로도 가라앉지 않았다. 그래도 자존심 때문에 참고 던졌다”고 말한 바 있다. 특히 한국시리즈 내내 김일융이 호투를 이어가며 최동원과의 맞대결 구도가 형성되자, 김시진은 동료이자 라이벌인 김일융에게 자극을 받은 상태였다. 롯데는 예정대로 2선발 임호균을 내세웠다.
경기의 첫 득점은 삼성이 기록했다. 4회 초 이만수와 장효조의 연속 적시타로 한 점을 올리며 앞서 나갔다. 김시진이 제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초반까지는 버티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4회 말 1사 후 롯데의 조성옥이 볼넷으로 출루하자, 이어 클린업 트리오인 홍문종, 김용철, 김용희가 연속 안타를 터뜨리며 단숨에 역전에 성공했다. 이어 김민호의 땅볼 타구로 추가 득점을 올리며 점수는 3대 1로 뒤집혔다.
이 시점에서 롯데의 선발 임호균이 마운드를 내려왔다. 훗날 강병철 감독은 방송 인터뷰를 통해 “임호균의 손가락 살이 벗겨져 더 이상 공을 던질 수 없었다”고 밝혔다. 문제는 마땅히 이어 던질 투수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결국 벼랑 끝에 몰린 롯데는 전날 완투를 소화한 최동원을 5회부터 다시 투입하는 강수를 선택했다. 최동원은 등판 직후부터 압도적인 투구를 펼쳤고, 삼성 타선은 그의 공 앞에서 단 3안타에 그치며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롯데는 8회에 추가로 3점을 올리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고, 경기는 6대 1로 롯데의 승리로 끝났다.
김시진은 끝까지 버텨 완투를 기록했지만, 결국 한국시리즈 두 번째 패전을 안았다. 반면 5회부터 구원 등판한 최동원은 5이닝 3피안타 무실점, 6탈삼진의 완벽한 피칭으로 구원승을 거두며 시리즈 3승째를 챙겼다.
시리즈는 3대 3의 균형을 이루었지만, 양 팀의 상황은 대조적이었다. 롯데는 최동원과 임호균, 두 주축 투수를 모두 소진한 상태였고, 삼성은 5차전에서 3이닝만 던진 김일융을 7차전에 선발로 내세울 수 있었다. 전력상 삼성이 여전히 유리한 국면이었다.
경기 후 강병철 감독은 “7차전에서도 최동원을 투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다른 투수들이 짧게 시간을 끌어주고, 최동원이 구원으로 등판해 경기를 마무리한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는 무리한 계획이었다. 최동원은 이미 이틀 동안 13이닝을 던진 상태였고, 그 외의 투수들은 시리즈 내내 단 한 번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이 계획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7차전
| 팀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
|---|---|---|---|---|---|---|---|---|---|---|---|---|---|---|---|---|---|---|---|---|---|---|---|---|---|
| 롯데 자이언츠 | 0 | 0 | 1 | 0 | 0 | 0 | 2 | 3 | 0 | 6 | - | - | |||||||||||||
| 삼성 라이온즈 | 0 | 3 | 0 | 0 | 0 | 1 | 0 | 0 | 0 | 4 | - | - | |||||||||||||
| 승리 투수: 최동원 패전 투수: 김일융 홈런: 롯데 – 유두열(8회 3점) 삼성 – 오대석(6회 1점) | |||||||||||||||||||||||||
- 롯데 최동원, 완투승
당시 한글날은 공휴일이었고[8], 사상 최초로 한국시리즈가 7차전까지 이어진 대접전이었던 만큼 전국적인 관심이 폭발적으로 집중되었다. 경기 시간도 이례적으로 오후 6시, 저녁 시간대에 편성되어 더 많은 국민이 TV 앞에서 관전할 수 있도록 조정되었다.
KBS 1TV와 MBC TV가 동시에 생중계를 진행했으며, 이는 한국시리즈 역사상 손꼽히는 특별한 사례였다. 두 공영방송사가 나란히 중계에 나선 것은 그만큼 시리즈의 국민적 관심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이번 시리즈는 개막 전부터 "져주기 논란"으로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모았고, 운명의 7차전은 그 열기를 증명하듯 잠실구장을 가득 메운 35,000여 관중의 함성 속에 진행되었다.
이 하루의 공백 덕분에 최동원은 하루를 더 쉴 수 있었고, 강병철 감독이 말했던 “최동원의 7차전 등판 가능성”이 현실이 되었다. 만약 6차전 다음 날 바로 경기가 열렸다면, 5차전과 6차전에서 13이닝을 던진 최동원이 다시 마운드에 오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더욱이 7차전은 공휴일인 한글날 저녁 6시에 열리며, 시리즈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경기 전, KBS가 진행한 짧은 인터뷰에서 김일융은 "컨디션이 좋습니까?"라는 질문에 담담히 "안 좋습니다"라고 답했다. 이는 훗날까지 회자된 명장면으로 남았다. 사실 김일융 역시 초인적인 등판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는 2차전, 4차전 선발 등판에 이어 5차전 구원 등판까지 포함해 약 20이닝을 던진 상태였다. 이후 다큐멘터리에서 그는 “7차전을 던질 수 없다고 감독에게 말했지만, ‘네가 아니면 나설 선수가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고 회고했다. 반면 최동원은 하루를 쉬었지만, 연이은 등판으로 인해 체력과 구위 모두 한계에 가까웠다.
2회 말, 삼성은 1사 만루 상황에서 배대웅의 땅볼과 송일수의 적시타로 먼저 3점을 올리며 주도권을 잡았다. 3회 초, 롯데는 김재상의 적시타로 한 점을 만회하며 추격의 불씨를 지폈다. 6회 말, 삼성은 오대석의 솔로 홈런으로 점수를 4대 1로 벌리며 승기를 굳히는 듯했다.
그러나 7회 초, 경기의 흐름이 완전히 뒤집혔다. 시리즈 내내 부진하던 유두열이 중전 안타로 출루한 뒤, 한문연의 타구를 우익수 장효조가 낙구 지점을 잘못 판단하는 치명적인 실책을 범했다. 타구는 머리 위를 넘어 3루타가 되었고, 유두열이 홈을 밟으며 2대 4로 따라붙었다. 이어 정영기의 우전 적시타로 한문연이 득점해 점수는 3대 4. 롯데의 분위기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장효조는 직전 수비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7회 말 안타를 기록하고 최동원의 견제 실책을 틈타 3루까지 진루했으나, 이만수가 3루 땅볼에 그치며 추가 득점 기회를 놓쳤다.
8회 초, 롯데의 공격. 홍문종이 중견수 뜬공으로 물러났지만 김용희와 김용철이 연속 안타로 출루하며 1사 1, 3루의 절호의 찬스를 맞았다. 김일융은 이미 체력이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고, 덕아웃을 향해 교체를 요청했으나 김영덕 감독은 끝내 그를 믿기로 했다.
이때 타석에 선 타자는 유두열이었다. 볼카운트 1-1, 잠실구장 롯데 응원석에서는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김일융은 1루로 가볍게 견제구를 던진 뒤, 병살타를 유도하기 위해 몸쪽 낮은 패스트볼을 선택했다. 그러나 유두열은 이를 완벽히 퍼올렸다.
MBC 김용 캐스터의 중계에 따르면, "쳤습니다! 좌측! 높게 날아갑니다! 높게 가느냐, 넘어가느냐, 홈런이냐… 홈런!", KBS 이장우 캐스터 중계에 따르면 "레프트 큽니다! 크다! 크다! 홈런입니다! 석 점 홈런!"라고 외쳤다.
그 타구는 백스핀이 걸리며 왼쪽 담장을 훌쩍 넘어 폴대 오른쪽을 스치고 관중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유두열의 극적인 역전 3점 홈런이었다. 점수는 6대 4, 롯데가 마침내 드라마 같은 역전에 성공했다. 이 순간 경기장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롯데 쪽으로 완전히 뒤바뀌었다. 김일융은 결국 강판되었고, 황규봉이 구원 등판했지만 이미 흐름은 돌이킬 수 없었다.
8회 말, 유두열의 홈런으로 사기가 오른 최동원은 오히려 구위가 되살아났다. 포수 한문연은 훗날 “공이 점점 더 빠르고 묵직해지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했고, 상대팀의 박영길은 “마치 10일 정도 휴식을 취한 투수가 던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삼성은 1사 3루의 기회를 잡았지만, 오대석의 깊숙한 2루수 플라이 때 3루 주자 함학수가 홈으로 뛰다 정확한 송구에 잡히며 득점 기회를 놓쳤다.
9회 말, 삼성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1사 1루에서 박승호가 좌중간 안타를 쳤으나, 선행 주자인 송일수가 3루로 향하는 사이 박승호가 무리하게 2루를 노리다 아웃되며 찬스를 스스로 끊었다. 마지막 타자 장태수는 풀카운트 승부 끝에 최동원의 라이징 패스트볼에 체크스윙을 시도했지만, 주심의 삼진 판정이 내려지며 경기는 그대로 종료되었다.
최동원은 포수 한문연과 뜨겁게 포옹했고, 롯데 선수단은 환호 속에 그라운드로 뛰어나왔다. 이날의 승리로 롯데 자이언츠는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으며, 최동원은 '가을의 전설'이라는 별명과 함께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잠실구장은 35,000여 명의 관중으로 가득 찼고, TV 앞에서도 수많은 시청자들이 숨을 죽이며 운명의 승부를 지켜보았다. 당시 KBS에서는 이장우 캐스터, MBC에서는 김용 캐스터가 각각 마이크를 잡고 7차전의 긴장과 감동을 생생하게 전했다.
그날의 경기는 '한글날의 명승부'로 불리며, 지금도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길이 남은 순간으로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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