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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안동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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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안동 김씨(新 安東 金氏)는 경상북도 안동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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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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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김선평(金宣平)은 경순왕(敬順王)의 방계승통으로 진골이자 효공왕(孝恭王)의 왕자이며 고창녕국(古昌寧國)의 성주이다. 930년(고려 태조 13년) 김선평(金宣平), 권행(權幸), 장길(張吉) 삼사는 군사들을 이끌고 전쟁에서 승리하여 고려 태조를 도운 공로로 최고위 귀족 태사 작위를 받았다.[1] 공수부정 김습돈(金習敦)을 중시조로 한다.
조선조에 들어와 후손 비안현감 김삼근(金三近, 1390. ~ 1465.)이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 부근에 살다가 소산리으로 옮겨 정착한 이래 크게 번성하였다. 장자 김계권(金係權, 1410. ~ 1458.)은 한성판관이고, 차자 김계행(金係行, 1413. ~ 1517.)은 대사헌으로 재임하였다.
김계권(金係權, 1410. ~ 1458.)은 5형제를 두었는데 큰아들은 세조의 국사를 지낸 명승 학조대사(學組大師)이고, 둘째 김영전(金永詮, 1837.)은 사헌부감찰, 셋째 김영균(金永勻, 1822. ~ 1872.)은 진사, 넷째 김영추(金永錘, 1443.)는 수원부사, 다섯째 김영수(金永銖, 1716. ~ 1786.)는 사헌부장령으로 재임하였다.
다섯째 사헌장령 김영수는 3형제를 두었는데 큰아들 김영(金瑛, 1475. ~ 1582.)은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의으로 재임하였고, 둘째 김번(金璠, 1479. ~ 1544.)도 문과에 급제하여 평양서윤으로 재임하였고, 셋째 김순(金珣, ~ 1623.)은 진사시에 합격하여 형조좌랑으로 재임하였다.
평양서윤을 역임한 김번(金璠, 1479. ~ 1544.)의 후손들이 분파하였는데, 왕비 3명, 후궁 1명, 부마도위 2명, 종묘공신 6명, 판서 35명, 당상관(정3품 이상) 140여 명 등 조선 후기에 가장 많은 고관대작을 배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손자 동지돈녕부사 김극효(金克孝, 1542. ~ 1618.)와 그의 아들 김상용(金尙容, 1561. ~ 1637.), 김상헌(金尙憲, 1570. ~ 1652.) 형제가 현달하여 인조 때 상신에 올랐다. 김상헌(金尙憲, 1570. ~ 1652.)의 손자 김수항(金壽恒, 1629. ~ 1689.) 영의정의 자제들인 김창집(金昌集, 1648. ~ 1722.) 영의정, 김창협(金昌協, 1651. ~ 1708.) 대제학, 김창흡(金昌翕, 1653. ~ 1722.) 사헌부집의, 김창업(金昌業, 1658. ~ 1722.) 이조참의, 김창즙(金昌緝, 1662. ~ 1713.) 왕자사부, 김창립(金昌立, 1666. ~ 1683.) 형제는 덕망과 명망으로 높게 현달하고 당대를 지배하였던 인물들로 서인 노론 세력의 중추가 되었다.
김창집(金昌集, 1648. ~ 1722.) 영의정의 현손 김조순(金祖淳, 1765. ~ 1832.) 부원군의 딸이 순조의 왕비 순원왕후(純元王后, 1789. ~ 1857.)가 되면서 김조순(金祖淳, 1765. ~ 1832.)은 국구로서 영안부원군에 봉해졌고, 헌종의 왕비 효현왕후(孝顯王后, 1828. ~ 1843.), 철종의 왕비 철인왕후(哲仁王后, 1837. ~ 1878.)에 이르기까지 세도 가문이 되었다. 이들 후손들은 한양 백악산 아래 장의동에 세거하여 장동 김씨(壯洞 金氏)라고 하였다. “금관자(金貫子)가 서 말인 집안”이라고 말하며, 17세기 이후 국반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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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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