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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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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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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尹錫悅, 1960년 12월 18일 ~ )은 대한민국 정치인이자 법조인, 전직 검사로, 2022년부터 2025년 4월 4일까지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역임했다.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국민의힘 소속이었던 윤석열은 비상계엄으로 인해 헌정사상 두 번째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어 1987년 이후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상 가장 짧게 재임한 직선제 대통령이 되었다.[3]윤석열은 대통령이 되기 이전 2019년부터 2021년까지 검찰총장을 지냈다. 호는 율산(律山).

간략 정보 윤석열, 대한민국의 제20대 대통령 ...
간략 정보 윤석열 ...

사법연수원 23기를 수료하고, 1994년 검사로 임용되어 27년 동안 근무하였다. 2013년 박근혜 정부 때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으로서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았고, 국정감사에서 수사 외압을 폭로하였으나, 2014년 대구고검 검사로 좌천되었다. 2016년 12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에서 수사팀장을 맡았다.[4][5][6] 2017년 3월 10일 박근혜파면되고 제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후 문재인 정부에서 제59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을 지냈으며, 2019년 7월 25일에 제43대 검찰총장으로 임명되었다. 윤석열의 지휘 하에 대검찰청은 문재인 정부의 유력 인사였던 조국에 대한 논란이 많은 수사를 진행했고, 이는 조국은 법무부 장관직에서 사임하는 결과를 낳았다.[7][8] 2021년 검찰총장직에서 사임하기 전 문재인 행정부와의 충돌은 윤석열을 보수 유권자들 사이에서 잠재적인 대선 후보로 부상시켰다. 법무부의 인사 지시 거부로 인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게 직무정지와 징계를 받다가 2021년 3월 4일 잔여 임기 4개월 여를 남겨두고 검찰총장직에서 사임하였다.

2021년 6월 29일, 윤석열은 2022년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2021년 7월에 국민의힘 입당하여 11월에 당 후보로 지명되었다. 보수적이고 경제적으로 자유주의적인 정치인으로 평가받는 윤석열은 경제 규제 완화여성가족부 폐지 등의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윤석열은 2022년 3월 9일, 더불어민주당 후보 이재명을 0.73%p(247,077표)의 차이로 꺾고 5월 10일 대통령직에 취임하여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였으며, 6.25 전쟁 종전 이후에 태어난 첫 직선 대통령이 되었다. 재임 기간 동안 윤석열의 외교 정책은 이전 한국 대통령들에 비해 북한에 대해 강경하고 일본에 우호적이라고 평가되었다. 또, 2022년 이태원 압사 사고[9]와 의료 정책에 반대한 전공의 사직 사태에 따른 2024년 대한민국 의정 갈등으로 발생한 의료 위기에 비판을 받았다.[10] 결국 2024년 총선에서 여당인 국민의힘이 패배하여 윤석열의 정치적 영향력이 약화되었다.[11][12] 대통령 재임 기간에 발표된 디 이코노미스트 민주주의 지수에서 정부 기능과 정치문화 부문 감점으로 대한민국은 프랑스 미국과 함께 '결함있는 민주주의'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야권에서 주로 비판한 언론의 자유가 포함된 시민 자유 영역에선 변화가 없었고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정치적 기반이 없던 윤석열은 국회에서 과반수 이상 의석을 가진 정당 후보를 상대하여 심상정 후보가 80만 표를 가져가면서 힘겹게 대통령에 당선되어 국정 운영에 어려움이 예상되었으나 김한길을 위원장으로 임명한 국민통합위원회를 만들었음에도 야당과의 갈등으로 임기 초반부터 낮은 지지율을 받았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은 '반국가 세력 처단' 등을 명분으로 위헌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계엄령을 선포했는데, 이는 대한민국에서 전두환 군사 독재 시대인 1979년 12월 12일 이후 44년 11개월 12일 만에 처음으로 선포된 것이었다. 윤석열은 경찰청의 지휘를 받는 국회경비대를 통해 국회를 폐쇄하고 병력을 동원해 "국회의원을 체포 시도했다"는 논란이 있었던 비상계엄이 선포된지 6시간여 만에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국무회의를 거쳐 4시30분에 계엄령을 해제했다.[13]

계엄령 해제 직후 광범위한 비판과 대규모 시위 속에서 탄핵 소추안이 발의되었으나,[14]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에 나타나지 않아 탄핵소추안 통과에 필요한 200표에는 미치지 못했다.[15][16][17] 10일 후인 12월 14일, 두 번째 표결에서 국민의힘 소속 의원 12명을 포함하여 204명의 찬성으로 탄핵되어 대통령 권한이 정지되었고[18] 2025년 1월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체포ㆍ구속된 현직 대통령이 되었다.[19][20]

대통령 탄핵 심판 과정에서 윤석열은 국방부 장관 김용현과 함께 몇 달 동안 계엄령 선포를 계획하거나 헌법재판소법에서 금지한 진행 중인 형사소송 기록을 송부받고 증인으로 출석한 군인이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했다"고 한 발언이 논란이 있은 가운데 국회와 다수의 지방의회에서 파면을 촉구하는 결의안과 민주노총이 "기각하면 총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를 만장일치로 인용하여 파면하였다.[21] 대통령에서 물러난 5월에 국민의힘을 탈당하였으며[22] 극우 목사라는 평가를 받는 전광훈 목사가 담임목사인 사랑제일교회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운동본부 집회에 참석해 김문수 후보 지지하는 발언하여 논란이 되었다.

2025년 1월 15일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체포되어 2025년 1월 26일 구속 기소되었다가 2025년 3월 8일 서울중앙지방법원구속 취소 요청 인용에 따라 석방되었으며,[23] 불구속 상태로 윤석열 비상계엄 재판 진행 중에 조은석 특별검사에 의해 체포영장 집행 방해 혐의로 출석하여 조사를 받았으나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2025년 7월 10일 재구속되었다 이후 서울구치소에서 특별검사의 출석 요구를 거부하다 체포영장이 발부되었으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서울구치소에 방문하여 "교도관이 끌어내라"고 요구했으나 강제력 행사할 대상이 아니어서 추가 조사없이 공소 제기하여 내란죄와 함께 사건이 병합되어 지귀연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2024년 대한민국 비상계엄 1년이 되면서 요미우리신문과의 옥중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의 헌정질서 붕괴와 국가위기 상황에서 내린 국가비상사태 선언이자 주권자인 국민들에게 알렸다"고 하면서 "국민을 억압하는 과거의 계엄과는 다르다. 몇 시간에 국회의 해제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했다.

2024년 대한민국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이재명 대통령이 '12ㆍ3 민주주의 기념일 제정'을 말하는 등 각 언론매체가 사실상 '내란죄 유죄'를 확정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데 드러난 사실은 '계엄령을 내리고 국가기관 시설을 폐쇄하면서 국회경비대가 심야 시각에 국회를 폐쇄'했는데 "출입을 보장해야 하지 않냐"고 항의를 하면서 '신분 확인을 거쳐 출입을 할 수 있게 했고 그렇게 출입한 국회의원이 본회의장에 모여 계성해제를 요구하여 정부가 계엄 해제를 했다'는 것인데 여기선 특별히 문제가 될 것은 없는데 이후 수사 과정에서 "국회의원 체포 지시를 받았다"는 곽종근 홍장원의 발언과 관련해 재판 과정에서 시간이 맞지않는 곽종근이나 공작금 횡령 의혹 과 "메모지 필체가 박선원과 동일하다" 거나 원본 메모가 없고 "인터넷에서 다운로드했다" 고 하는 등 논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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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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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1976년)

1960년 12월 18일 서울특별시 성북구 삼선동에서 아버지 윤기중(尹起重)과 어머니 최성자(崔成子)[주해 2] 사이에서 태어났다.

소정공 윤곤의 20대손으로, 그의 선대는 경기도 파주에 살다가 14대조 윤돈 대에 충청남도 논산 노성으로 이주했다. 이후 충청남도 논산군 노성면 죽림리, 노성면 장구리 일대에 대대로 살았으며 아버지 윤기중이 다시 서울로 이주하였다. 12대조 윤황은 우계 성혼의 사위였고, 종11대조는 윤선거이고, 재종10대조 윤증서인 분열 시 소론당의 영수가 됐다. 그는 윤선거의 형 윤문거의 11대손이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논산군 노성면 죽림리에서 거주했고, 외가는 강릉시 금학동·중앙동 일대이다. 서울 대광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랑중학교에 다니다가 2학년 말에 충암중학교로 전학하였다. 1979년에 충암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였다.

대학 재학 중인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과 관련한 모의재판에서 검사로 출연해 대통령 전두환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이 모의재판 이야기가 교내외로 퍼지면서 한동안 강원도로 피신하기도 했다.[25]

1980년과 1981년 두 차례 병역 검사를 연기했다가, 1982년 양쪽 눈의 시력 차가 큰 부동시로 병역 면제인 전시근로역 처분을 받았다.

검사 활동

대학 4학년 때 사법시험 1차에 합격하였으나 2차에서 떨어진 후 9년 동안 합격하지 못하고, 9수 끝에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기에 다른 사법연수원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았다.

사법연수원 23기로 수료한 후, 1994년 검사로 임용되었다.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장[26]으로서 근무 중 2013년 4월부터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으로 활동하면서[27] 검찰 수뇌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압수수색을 단행하고 직원을 체포했다.

특별수사팀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과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2014년 2월 검찰 인사에서 대구고등검찰청 검사로 좌천됐다.

2017년 5월 19일 문재인 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되었다.

2019년 6월 17일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되었다.[28]

검찰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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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 (2019년)

2019년 7월 검찰총장 취임사에서 “이제는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질서의 본질을 지키는 데 역량을 더 집중시켜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대검찰청 대변인실을 통해 “신임 총장은 시카고학파밀턴 프리드먼과 1947년 스위스에서 자유주의 학자들의 모임인 몽펠르랭소사이어티(MPS)를 결성해 자유주의 가치를 지키고 확산하는 데 힘을 쏟은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사상에 깊이 공감하고 있고, 자유시장경제와 형사 법집행 문제에 관해 고민해 왔다”며 “시장경제와 가격기구, 자유로운 기업 활동이 인류의 번영과 행복을 증진해 왔고, 이는 역사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29]

2020년 1월 31일 발표한 ‘세계일보 창간 31주년 차기 대선주자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새보수·무당층 지지 업고 급부상…’ 응답자 10.8%의 지지를 얻어 이낙연 대표에 이어 2위이자 황교안을 오차범위 내에서 따돌리며 처음으로 두자릿 수의 지지율을 기록했다.[30]

2020년 8월 신임 검사 임관식에서 “자유민주주의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29]

2020년 11월 24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 의해 검찰총장 직무가 정지되었으나, 법원의 집행정지 인용으로 12월 1일 직무에 복귀했다.[31][32]

2020년 12월 4일 윤석열은 법무부 장관이 검사징계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게 한 검사징계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과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하여 전원재판부에 회부되었고 이용구 차관 등에 대한 기피신청은 기각되었다.

2020년 12월 14일 시작된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 2차 심의는 자정을 넘겨 다음 날 오전4시에 마무리했으며 정직 2개월 처분을 했다.

2020년 12월 24일 오후 10시경 서울행정법원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정직 2개월 징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 결정하였다.[33]

행정소송과는 별개로 헌법재판소법무부 장관이 징계위원회 다수의 위원을 임명하는 검사징계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청구했으나 2021년 6월 25일에 각하되었다.

2020년 12월 25일 낮 12시경 윤석열 검찰총장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정직 2개월 징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이 전날(2020년 12월 24일 오후10시 경) 인용됨에 따라서 윤석열 검찰총장은 다시 대검찰청으로 출근하였다.[34]

2021년 3월 4일 검찰총장직에서 사임했다. 사퇴 입장문을 발표하고, “앞으로도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보호하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라고 했다.[35]

검찰총장 사임 이후

검찰총장에서 사임한 이후 야권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국민을 위한 봉사"만을 언급한 채 구체적인 정치 활동이 없는 상태에 있던 윤석열은 국민의힘의 입당 요구와 장모 비리를 담은 X파일 논란으로 어수선 한 가운데 주변 지인에게 "더불어민주당 강령과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치 등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민주당 강령에서 자유를 취급하는 것만 봐도 자유를 바라보는 관점이 나와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고 윤석열 측 관계자가 2021년 6월 26일 전했다.[29]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을 하는 기자회견을 하루 앞두고 천안함 기념 모자를 착용하고 주거지 근처 공원에서 산책을 했던 윤석열은 2021년 6월 29일 오후1시 윤봉길기념관에서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보고대회'라는 기자회견을 열고 "거대 의석과 이권 카르텔의 호위를 받는 이 정권 막강하다”며 “열가지 중 아홉 가지 생각이 달라도 한가지 ‘정권교체'로 나라 정상화시키고 국민이 진짜 주인인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같이 하는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하면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을 때 우리는 더 강해진다”며 “그래야만 이길 수 있다. 그러면 빼앗긴 국민의 주권을 되찾아 올 수 있다"고 했다.[36][37]

이재명미군정을 점령군이라고 표현하자 윤석열은 "저를 포함해 국민들께서 큰 충격을 받고 있다"며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라는 황당무계한 망언을 집권세력의 차기 유력후보 이 지사도 이어받았다. 온 국민의 귀를 의심하게 하는 주장"이라고 밝혔다.[38]

윤석열이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사드 철회를 주장하려면 레이더를 먼저 철수하라"고 말한 걸 두고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같은 신문에 반론 기고문을 보내 "중국 레이더 관련 발언을 이해할 수 없다" "중국 레이더가 한국에 위협이 된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다"고 했다[39]

한편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가 윤석열에 대하여 '지지율이 위험하다, 마치 19대 대선 당시 간만 보던 안철수와 비슷하게 갈팡질팡하고 있다'고 평하자 국민의힘 당 내 친윤 세력으로 분류되는 정진석, 권성동, 장제원 등은 이준석을 공격하고, 이에 홍준표가 다시 이준석을 보호하는 모양새를 띠면서 국민의힘 내 중진 의원들 간 대립했다.[40]

2021년 7월 30일,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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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30일 당원 가입 및 입당을 위해 국민의힘 당사로 향하는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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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저녁 회동 중인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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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대통령 예비후보 활동 중인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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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국회부의장을 예방하는 윤석열 대선 후보.

2021년 6월 2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하였고, 동년 7월 30일 국민의힘에 입당하며 정계에 발을 내디뎠다. 이후 자신의 선거캠프인 국민캠프를 조직해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하여 2021년 11월 5일 국민의힘 제2차 전당대회에서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2022년 2월 15일에 공개한 윤석열 대통령 후보의 10대 공약은 다음과 같다.[41]

  • 코로나 극복 긴급구조 및 포스트 코로나 플랜
  • 지속가능한 좋은 일자리 창출
  • 수요에 부응하는 주택 250만호 이상 공급
  • 스마트하고 공정하게 봉사하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구현과 대통령실 개혁
  • 과학기술 추격국가에서 원천기술 선도국가로
  • 출산 준비부터 산후조리·양육까지 국가책임 강화
  • 청년이 내일을 꿈꾸고 국민이 공감하는 공정한 사회
  • 여성가족부 폐지
  • 당당한 외교, 튼튼한 안보
  • 실현 가능한 탄소중립과 원전 최강국 건설
  • 공정한 교육과 미래인재 육성, 모두가 누리는 문화복지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해 이재명 후보에 0.73%p 앞선 48.56%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더불어민주당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2.37%, 80만 3358표를 득표하면서 대통령 선거 역사상 최초로 개표 진행 99%를 넘긴 후에 당선이 확정되었으며, 2위인 이재명 후보와 가장 낮은 차이인 0.73%p 차이로 당선되었다.[42]

첫 공직선거를, 제1야당 후보로서 대선으로 치렀으며, 제6공화국 사상 최초로 첫 공직선거 도전에 바로 대통령에 당선되는 기록을 세웠다. 대한민국 헌정사 전체로 보면 박정희(5대 대선), 전두환(11대 대선),최규하(10대 대선)이후 네 번째이며, 비군인 출신으로는 최초이다.

제20대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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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선서하는 윤석열, 2022년 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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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10일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오른쪽)과 악수하고 있는 윤석열 차기 대통령.

2022년 5월 10일 제20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서울대학교 출신으로는 김영삼 대통령 이후 두 번째이다. 헌정 사상 최초의 서울특별시 출신, 검찰총장 출신이다. 김대중, 이명박,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4번째로 정권교체를 통해 집권한 대통령이다.

정치적 기반과 경험이 없던 윤석열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했던 한덕수를 국무총리, 국민의힘 현직 국회의원인 추경호를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검사 후배였던 한동훈을 법무부 장관, 신설한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에 김한길을 임명하면서 국정 운영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였으나 한국사회에서 극우 진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들에 기울면서[43]스스로 몰락을 자초하다 2024년 12월 3일 "반국가 세력 처단"을 명분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지만, 6시간여 만에 국회가 해제를 요구하면서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계엄을 해제했다.

그리고 윤석열은 비상계엄이 원인이 되어 직무정지 상태가 되었으며 이후 탄핵심판에 회부되었다.

탄핵과 파면

12월 14일 대한민국 헌정역사상 세 번째로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어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었다. 2024년 대한민국 비상계엄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세 번의 소환에 모두 불응하자 1월 15일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체포되었다.[44] 2025년 1월 26일 오후 6시 55분경, 검찰이 당시 직무정지 상태였지만 대통령이었던 윤석열을 내란우두머리 혐의로 구속 기소윤석열 비상계엄 재판이 열리게 되었다.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에 8:0 만장일치로 파면되었다.

파면 이후

계엄사태와 파면 이후 국민의힘 내부 일각에서 조기 대선 국면을 앞두고 중도층 확보를 위해 대통령과의 절연을 요구하였다.[45] 이에 2025년 5월 17일, 윤석열은 국민의힘을 자진 탈당했다.[46]

내란ㆍ외환죄 특별검사 조은석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체포영장을 청구했으나 "피의자가 출석 의사를 밝혔다"는 이유로 기각된 이후 출석하여 조사에 응하였으나 2025년 7월 10일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다시 구속되었으며 이후 김건희 주가조작 등 의혹에 대한 특별검사 민중기의 출석 요구에 불응하자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특검보가 서울구치소에 방문하여 체포를 시도했으나 거실에서 나오는 것을 거부하면서 체포를 할 수 없었다.

이에 특검 수사팀은 "윤석열이 포함된 박영수 특검팀이 구속된 최순실을 체포했다"는 사실을 거론하며 체포 의지를 밝혔으며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법적 근거 규정이 없어 협조하지 않은 서울구치소장에 "체포에 협조하라"고 지시를 하였다.

7월 10일, 내란 특검에 의해 4개월 만에 재구속되며 서울구치소로 수감되었으며 3617번이라는 수용복으로 갈아입고 머그샷까지 찍은 후 독방으로 들어갔다. 지난번과의 차이점이라면 대통령 신분을 잃은 상태로 특혜와 경호는 물론 에어컨마저 없는 비좁은 2평대 독방으로 갇혀버리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

이후 조은석 내란 특검의 대면조사를 온갖 핑계를 대며 거부하고, 지병으로 거동이 불편해 출석도 이동도 불가능하다는 와중에 부정선거 음모론자인 모스 탄을 접견해 자신의 억울함을 담은 편지를 전달하려 하는 등 어떻게든 시간을 끌고 비협조로 일관하기로 맘먹은 모양이다. 이 와중에 당뇨가 심해 구속되어 있을 건강 상태가 아니라며 구속적부심을 청구했다.

7월 18일, 내내 특검 조사에 출석 시간으로 기싸움을 벌이던 때와는 달리 심사 시간보다 1시간 이상 일찍 출석하는 놀라운 성실함을 보였으나, 6시간의 구속적부심사 종료 이후 얼마 되지 않아 구속적부심 청구가 기각되었다.

결국 19일 오후 2시, 특검이 윤석열을 추가조사 없이 구속 기소하면서 법기술을 부리며 발악한 대가를 단단히 치르게 되었다. 또한 이번 구속 기소는 시작에 불과하며, 지금부터 외환죄 수사를 개시할 것을 특검팀이 밝혔고 기소까지 이루어지는 과정 내내 조사에 대한 불응 및 법꾸라지 행위를 전부 기록으로 남겨 양형에 참고시키도록 하겠다고 압박을 넣었으며 이후에도 외환 관련 수사에서 내란 관련 수사에서 했던 법꾸라지 행위와 발악을 하려 들면 테이저건을 동반한 물리적인 강제 구인을 조사일마다 상시로 할 것을 통보하여 전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를 일절 갖추지 않을 것이란 통보를 내렸다.

7월 22일, 옥중서신으로 '말도 안 되는 정치 탄압은 나 하나로도 충분하다'라고 밝혔다. 이에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現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라디오에서 "윤석열이 대체 언제 정치 탄압을 받았냐"라는 말과 함께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특검 측은 논할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또한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로 출마한 정청래는 아예 SNS에 "찌질한 비겁쟁이 내란수괴 윤석열 씨는 감옥 안에서 여생이나 보내라"며 저격했다. 즉 사면 따위는 평생 기대하지 말라는 의미다.

7월 31일, 지속된 특검 수사 거부 및 재판 미출석에 대해 김건희 특검 측에서 체포 영장을 발부받아 조사실로 강제로 구인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인 8월 1일, 체포영장 집행은 실패했다. 사유는 윤석열이 속옷 차림으로 감방에 드러누워 완강히 거부했다는 것. 외부인들, 그것도 검사들이 들어와서 영장 집행을 요구하고 대놓고 바라보는 와중에 겉옷을 벗고 민소매와 팬티 차림으로 따라나가기 싫다며 드러누웠다는 소식이 나오고 나날이 윤석열의 이미지는 나락을 갱신하며 추락하는 중이다. 심지어 더 충격적인 것은 처음 특검팀이 올 때에는 수의를 멀쩡히 입었으나 특검팀이 체포 영장 집행을 시도하자 수의를 벗었다가 특검팀이 나가자 바로 다시 입었다는 점이다.

8월 7일, 특검이 2차 체포를 시도, 교도관들을 통해 물리적인 수단을 쓰기까지 했지만 이번엔 격렬하게 저항하면서 체포에 실패했다. 전날 특검에 자진 출석한 아내 김건희와 대비되는 태도이다.

8월 14일, 지속된 특혜와 조사거부 끝에 법무부로부터 접견실 단독 사용을 금지당했으며, 구속 당시 강의구 부속실장이 휴대폰을 반입해 접견실에 가지고 들어간 것이 확인되었다. 그 책임을 물어 김현우 서울구치소장이 경질당했고, 앞으로는 일절 특혜를 누릴 일이 없을 것이라는 정성호 법무부 장관의 공지까지 뒤따랐다.

8월 15일, 끝내 건강악화로 병원을 찾았다. 휠체어에 마스크를 쓰고 병원 안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동영상으로 찍혔다. 이 모습을 본 나경원 의원은 "병원 치료에도 전자발찌를 채워 망신주기 바쁘다!"며 비판했는데, 정작 외부진료시 재소자가 전자발찌를 착용할 의무는 윤석열 정부 시절인 2023년에 한동훈 장관의 법무부에서 생겼다.이는 특수강도범 김길수가 병원 치료 중 달아나 63시간 만에 붙잡힌 사건 이후로 만들어진 규정이다. 본인이 만든 방침에 본인이 얻어걸린 해프닝인 셈이다.

9월 1일, 영치금을 2억 7천만 원을 모았으며, 49일 동안 73번에 걸쳐 영치금을 외부 개인 계좌 등에 옮긴 걸로 확인됐다.

9월 26일 공개된 재판 현장에서 두 달만에 모습이 공개됐는데 이발을 해서 머리숱이 줄어들어 보였고, 새치도 늘어난데다가 체중이 줄어들어 수척한 모습으로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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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재임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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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20일,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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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21일, 대통령실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접견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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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22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 펀드 관련 행사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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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6일,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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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27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접견하는 윤석열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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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27일, 카말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안토니 블링켄 국무장관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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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21일, 제49회 G7 정상회의에서의 윤석열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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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12일, 빌뉴스 NATO 정상회의에서의 윤석열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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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9일, 방글라데시 셰이크 하시나 총리(왼쪽)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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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30일,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오른쪽)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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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27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왼쪽),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오른쪽)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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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1일, 워싱턴 NATO 정상회의에서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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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7일, 필리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오른쪽)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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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15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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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18~19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각 정상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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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경력

요약
관점

수사 경력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검사, 대검 중수부 검찰연구관, 대검 중수부 1‧2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등을 거친 정통 특수 검사로서, 언론 보도에 의하면, 서울지검 특수부 검사 시절 경찰청 정보국장을 수뢰혐의로 구속하여 파란을 일으킨 바 있고, 중수부 연구관 시절 불법대선자금 사건,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 삼성 비자금 사건 수사 등 굵직한 사건 수사에 참여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48]

대검 중수부 과장 시절에는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맡았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시절에는 LIG그룹 기업어음 사건을 맡아 회장, 사장 등 대주주 일가를 기소하여 유죄가 확정되었다.[49]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 이후 국가정보원 대선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아 약 8개월간의 수사를 통해 2012년 제18대 대선에서 국가정보원이 조직적으로 SNS 상에서 야당 대선 후보를 비방하고 여당 후보를 지지하는 여론조작을 실행한 사실을 밝혀냈다. 수사 도중 국가정보원 직원들의 대대적인 트위터 활동과 관련한 결정적인 증거를 포착하고 국가정보원 직원들에 대한 체포와 압수수색을 집행하였는데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조영곤 검사장에게 보고했지만 동의받지 못하자 자신의 책임으로 체포를 강행하였다. 이후 특별수사팀장에서 경질되었다는 견해가 있다.[50]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과 시민단체는 특별수사팀장 경질이 수사 방해 행위라 하면서 특별수사팀장의 즉각적인 복귀와 특검 실시를 주장했다.[5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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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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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훈

  • 2023년 : 폴란드 흰독수리 훈장
  • 2023년 : 바스 대십자 훈장
  • 2024년 : JFK 용기 있는 사람들 상
  • 2024년 : 페루 태양대훈장

저서

  • 《윤석열의 길》, 엘컴퍼니(2022) ISBN 9791185408347

공저

  • 《87체제를 넘어 새로운 대한민국》, 양문출판사(2025) ISBN 9791198670267

평가

긍정적

제39대 검찰총장이었던 채동욱은 '검사 윤석열'을 '치밀하고 해박한 법률 이론가이자 자기헌신적 용기를 가진 예리한 칼잡이'라고 평가했다.[53]

부정적

제19대 대통령이었던 문재인은 윤석열이 조국과 관련해서 전방위적인 수사를 벌이는 반면, 일부 사건에 대해 검찰이 수사를 하지 않는 것을 두고 “(검찰이) 어떤 사건에 대해 선택적으로 열심히 수사하고 어떤 사건은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다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54]

국민들의 평가도 좋지 않다. 임기 초까지만 해도, 지지율 50%에 달하는 듯 높은 수치를 보여주었으나[55] 수많은 발언 논란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회담 후 막말 논란, 영부인 김건희의 뇌물수수 의혹, 주가조작 논란 등의 수많은 논란 방관, 채 상병 사건 관련 논란, MBC 뉴스 탄압, 골프 관련 논란, 의정갈등, 명태균 게이트 등의 많은 논란과 사건사고에 임기가 시작된지 2년도 안 되어서 지지율이 30% 아래로 떨어졌다.[56]

2024년 대한민국 비상계엄 이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더 안 좋아졌다. 나라에 비상계엄을 선포했으며, 국회에 군대를 보내고 포고령으로 국회의 활동을 금지해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안 가결을 막으려는 행동을 해 전국민의 공분을 샀다.[57]

이에 국회에선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의결되었고, 탄핵 촉구 집회에 참여해 모인 국민들이 순간 27만 명[58]에 달할 만큼 윤석열에 대한 평가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다. 또한 탄핵심판 변론 중에도 부하 탓을 하고,[59] 39명이 다치고 경제가 추락하는 등 계엄 당시 뿐만 아니라 후유증으로 인해 충격이 엄청났음에도 “아무 일도 없었다.”라고 발언해 지지율이 폭락하게 되었다.[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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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역대 선거 결과

자세한 정보 실시년도, 선거 ...

소속 정당

자세한 정보 소속 정당, 소속 기간 ...

가족 관계

  • 아버지: 윤기중(1931 ~ 2023)
  • 어머니: 최성자(1934 ~ )
    • 배우자: 김건희(1972 ~ )
    • 여동생: 윤신원(1964 ~ )

같이 보기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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